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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로 부터 멀어지는 지혜[삼하3:27-3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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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로 부터 멀어지는 지혜[삼하3:27-39]

주하인 2022. 9. 23. 07:21

 

 

28.그 후에 다윗이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요압이 일방적으로 아브넬을 죽이니

'다윗'이 '듣고' 즉시 '이르되'..

"아브넬의 피는 나와 상관없다"

'나와 내 나라 앞에 무죄'하다 선언해 버렸다. 

 

 무슨 이야기인가?

'죄罪'에 대한 대처 이야기다. 

 

 아브넬은 인간적으로 맘에 들지 않는 자다. 

그에 대한 개인적 원한으로 '요압'이 

리더인 '다윗'과 

하나님의 인도 받으시는 다윗의 결정임으로 '하나님의 뜻'이기도 한

'아브넬'의 정리에 대한 뜻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그를 죽였다. 

 

 그게 '죄'다. 

요압의 입장에서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갈수 있고 얼마든지 포용 가능할 

그의 그러한 돌발 한 행동은

하나님의 눈과

조직의 입장에서는 

'죄'다.

그것도 '큰 죄'.

 

 

33.왕이 아브넬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이르되 아브넬의 죽음이 어찌하여 미련한 자의 죽음 같은고
34.네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차꼬에 채이지 아니하였거늘 불의한 자식의 앞에 엎드러짐

    같이 네가 엎드러졌도다 하매 온 백성이 다시 그를 슬퍼하여 우니라

 그렇다면 그 '요압', 큰 장수인 그를

어찌 대해야 옳은가?

 

그리고 요압은 또 어찌 그게 '죄'일까?

어찌 '하나님 앞의 죄'이고 '조직 앞의 죄'일까?

 별 상관없고 어쩌면 인간이라면 그 모진 분노의 행위를 촉발한 아브넬이 죄고

그를  처리하는 게  소위 말하는 '사이다성 정의'일 것 같은데 (인간의 눈... 이 조급했던 자의 속내의 진실...그러고 보니 죄가 죄임이 오늘 말씀을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

하나님 앞에 죄.. 인게 어찐 일인가?

 

 이제 

조금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나님 앞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하나님의 치리 방식에 대한 

이 일상에서 조율함에 대하여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사이다'....는 아니다. 

아.. 사이다로 표현되는 많은 일들이

대부분 옳은 결과가 오는 행위는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다.^^;

  죄는 처음엔 보통 시원하다. 

그러나 감당치 못할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 하나님께서는 매사를 여쭙기를 기대하신다. 

감당하지 못할 일이있을 때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오늘 내가 하는 것을 지켜보라'시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그것은 아무 것도 하지말라심이 아니고 

'우선 하나님께 여쭙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같으면 하는 게 좋다는 것이며

최소한 우선.. 그렇다 우선이다.. 우선 하나님께 여쭙는 사실 자체가 

'죄'가 아닌 기본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만일 요압이 자신의 그러한 아픔을 

주님 앞에 아뢰고 행하였다면

오늘 같은 '다윗'의 격변과 분노의 반대적 매몰참(요압의 시선으로 볼 때)은 없게 되었으리라.

 

 분은 있더라도 '노'는 참게 되며

그렇다면 '다윗'의 왕국은 좀더 견고해지지 않았을까? 

 

 '다윗'은 

현실로 강력한 장수인 '요압'을 직접 징계하기도 그렇고

리더로서의 권위의 문제도 그러한 충돌의 갈등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지혜로운 자.

하나님 앞에서 뛰어난 자.

어쩌면 인간적인 눈으로도 교활한자.

어찌 그라고 아브넬이 인간적으로 밉지않고 요압의 그러함이 시원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한 '요압'을 

아까운 신하나 용사로서의 두려움 ...등을 넘어서는 

확실한 '선'이 필요했으리라.

그.. 해결책을 순간적으로 떠올리고 

차갑고 놀랍고 온전한 '탈죄'를 선택한게

하나님 앞에 서

'아브넬을 애도함'이었다. 

 

 보라.

아브넬 죽음이 왜 그에게 슬퍼야 할까?

아쉬운 게 맞지만... 

그는 그 상황에서 울었다. 

그게 교활하고 

그게 지혜롭고

그게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이기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감정'의 흐름이 되었을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

 

 보라.

그는 '무죄'를 선언해버린다. 

 

 하나님 앞에서의 무죄 

 

36.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
37.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아니라

 그러자 같이 울던 모든 백성들이 

같이 기뻐한다 .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라고 나오지 않던가?

 

 울다 웃으면 어디에 '털'이 난다는 .ㅎㅎ. .. 그러함이 

현대의 감성으로,

하나님 모르는 자들의 시선으로 이해가 가지 않게..ㅎ

 

'죄'로 부터 거리를 두게 됨

갈등과 혼돈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해결된 '속시원함'이 

그 울다 웃는 정체 아닐까?


39.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 하니라

.

 

주여

너무 시간이 촉박합니다. 

오늘 도 붙들고 살 지혜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나머지의 하루의 시간을 지키소서.

죄로 부터 멀리하는 지혜를 주소서.

내 주여.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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