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사는 동안의 평안을 위하여[삼하3:17-26] 본문
세상의 모든 칭송과 부를 가지고
가장 아름다운 치장을 하고
때로는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고요를 가질 만한 여유가 있을 지라도
그 평안은
곧 사라지는 젊음에 비례하여
어쩌면 공중에 날아가버릴
잠시의 '평안'일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인생은...
그리하여
일찌감치 그러한 모든 허무를 깨닫고
세상을 등지고
청빈과 낙도를 추구하며 떠돌아도
그에게 남을 것은
'허무와 허전' 뿐일 것이며
결국 돌아갈 곳은
누구나 갈 수 밖에 없는 영멸일게니
세상의 그 어떤 곳에서
'평안'을 찾고
실제의 도를 깨달을 수가 있을겐가
오직 평안은
하나님 안에서 밖에 없다
그게 진실이고 진리며
그게 사실이다
오직 샬롬
오직 평강
오직 평안
오직 감사
오직 안전함.......말이다
할렐루야
21.아브넬이 다윗에게 말하되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을 맺게 하고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하리이다 하니 이에 다윗이
아브넬을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가니라
누구나 다 알수 있듯
아브넬이 온전히 자기의 영달을 위하여
마음껏 ^^;;;;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잘 성공하려 하고 있다 .
바야흐로 '평안히' 마무리 되는 듯(이후에도 두번 더 '평안히'라는 구절이 되풀이된다. ) 하게
평안히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평안이 평안일까?
과연?
26. 이에 요압이 다윗에게서 나와 전령들을 보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시라 우물 가에서
그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
그는 모르고
다윗도 알지 못하였지만
'요압'의 내밀한 분노로
그의 평안은 곧 파멸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
지금의 '평안'이 꼭 평안일까?
태풍 안의 고요 아닐까?
잠시 허락되어진 하나님 뜻 안의 고요..........
곧 있으면 휘몰아칠 태풍을 곧 온몸으로 받아칠 줄도 모르고
희희낙락하는 모습이 사뭇 불쌍하고 혐오스럽기까지 않던가?
그 아브넬,
인간 관계를 무시하고 요압의 동생을 죽였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온전히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직진하고 있는 자로서
잠시 허락되어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저리 나쁜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
그 나쁜 도구의 잠시 쓰임을
온전히 자신의 잘남을 인함으로
기고 만장, 그렇다 .. 기고 만장하고 있음이다.
이땅.
지금.
현재는 안그런가?
J ..께서 (이구 직함을 붙히기도 *&^%$..)
마구 쓰임을 받으시고 있다.
그러함으로 백억대 ..재산과 명성으로 생각되는 것을 거머쥐고 있다.
그 전에도 그러한 목회자들 많았다.
거짓 선지자들.
계시록적 상황에 666 받으려 줄서는 자들......
아유..
비단 그러한 눈에 뜨이는 어리석은 자,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착각하며
세살 먹은 어린 아이도
그것 만큼은 틀림을 알수있는 원리를 잊어버리고 사는 자들.....
그거야 말로
이세상에 지혜로운자가 어디있느냐 찾아보라시던 성경의 말씀처럼
가장 뛰어나 인간의 술수가
가장 미련한 하나님 편의 그것으로 보아도
처참할 정도의 어리석음이 아니겠지 않던가?
그로 인한 '자신이만든 평화'는
과연 평화가 맞던가?
잠시 평화로와 보일지라도
결국 무너지고야 말 '모래성'이지 않은가?
설령,
죽을 때까지 안무너지는 기적적 행운이 있더라도
결국 죽으면 없어질 것 아니던가?
인생 오래살아야 '팔십'겨우 넘길 것...
그 후는... .
영생.. 영원한 시간 안에 겨우?.. 팔십?
그안에서 자신의 의지로 세운 '이스보셋 왕국 안의 실권자'로서의 시간은
과연 몇년될까?
성공하기 위하여 갖은 인생의 고초를 겪고
드디어 실권잡고 대통령이라도 되려면
독재자 ㅎㅎ.. 라도 되려면
아마 50-60년은 거짓 권력을 위하여 온 힘을 기울여 전력투구하는 일반적이지 않을것 아니던가?
그리하여 80년 인생의 나머지 시간 ............
겨우 2,30년 정도의 시간을
허락되어진 '마취'의 시간으로
거짓 평안을 누리는 시간일 텐데
정말 '사악'한 영혼이 아니고는
그 내면에 홀로만아는 두려움,
사울이 마지막 보였던 그 미친 행동을 유발하는
'악한 영'이 과연 그를 진정 평안히 둘까?
아 또.. 그 나이들어 평안을 누리면
젊음이 사라져 버린 노구 안의 추한 영혼이
과연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아주 특별한 요즈음의 소수 ...반짝 이는 인기인을 빼면?ㅎ
아.. 그들의 평안은 일단 '선택받은 백성' 을 대상이 아니니 제외하고... ㅜ.ㅜ;
각설하고
평안히.. 를 묵상하며
이땅의
하나님을 전제로 하지 않은 평안이 과연 어디있을까.. 싶다.
둘째.
이곳 직장을 잘 다니던게 7년 째다 .
그런데 여러 조건들이 힘이 부친가보다.
그래서 직장 이전을 노력하기 시작하며
기도하고 있지만
잘 안된다.
마음고생이 있는가 보다.
저녁에 퇴근하고 식사하러 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였다.
다행이도 아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려 노력하는 자..
이 아비를 닮아서 엉뚱한데는 많지만
하나님 앞에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선한' 중심이 바로 서있는 자.
그런 아들 앞에
디지털 세상의 유혹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젊음의 강한 육적 성향 역시..ㅜ.ㅜ;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긴장과 갈등에도
나름의 '성무일과'의 시간을 늘려 가고 있다한다 .
일상의 영성.
그것 아니고는 무엇인가?
고난이 유익.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의 고난의 의미.
그리고.....
그 고난의 쉽지 않음과 더불어
점점 더 그럴 때 하나님을 신경씀으로 허락되어지는
놀라운 '평화'의 시간.
아들의 어려움은
대화중 서로 많은 깨달음과
감사함이 차왔다.
아들이 돌아오는 차속에서 연신 '감사하다'.. '감사하다'... 탄신이 나온다 .
그렇다.
진정한 평화는
마음대로 되는것.
심지어는 하나님의 이름마져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이용되는
그 마음대로가 아니다.
그 거짓 평화는
자아의 망종이며
파멸의 지름길이고
사단의 궤계이고
허락되어진 하나님의 나쁜 도구 일 뿐이다.
오늘 하루
나
다시 돌아보자.
하나님.
알람이 울립니다.
가야겠습니다.
출근하려 가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평안'에 대하여 묵상케 하십니다.
하루 종일 붙들고 살려 하오니
은혜 허락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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