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겨우 이땅이 관심의 끝이 아니다[삼하23:18-39] 본문
이 땅이
끝이고
전부라면
내게 남아 있을 건
그냥 절망 뿐이리라
하지만
나는 지금
주님 손을 붙들고 있다
내 시작과 끝은
그 분이 정하신다
난 지금
여기 서 있지만
영원을 보고 있다
내 영혼을 흔들려는
이땅에 고착된
주변 어두움의 소리는
답이 아니다
흔들릴 이유가 없다
그냥 그들은
그러라 하자
오직 정답은
선한 주님께서만 가지고 계신다
그게 믿어진다
그 사실을
잠시 망각했을 뿐이다
아직도 기세등등한
이 땅의 권세자들에
잠시 흔들렸을 뿐이다
아
말씀을 통하여
또 주께서
은혜를 허락하셨다.
이 아침.
난.. 지금
또
로고스 하나님 손을 잡고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다
할렐루야
18.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이니 그는 그 세 사람의 우두머리라 그가
그의 창을 들어 삼백 명을 죽이고 세 사람 중에 이름을 얻었으니
19.그는 세 사람 중에 가장 존귀한 자가 아니냐 그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그러나
첫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39.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총수가 삼십칠 명이었더라
당연하지만
난 '말씀'이 필요하다.
매일 매일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의 말씀,
로고스 하나님의 레마가 있어야 하루 살아낼 수 있다.
그러함은 당연하고 너무도 당연하지만
이 의미없는 세상에 어둡게 시선을 가지고 자라나온 내게는
유일한 끈이고 의미이고 힘이 맞다.
은혜로 표현되는 감정의 평온, 평강 , 샬롬의 상태일 때는
행복하고 감사하지만
때로 .. 허락되어진 시험 (주님의 더 큰 뜻을 위하여 허락되어진 현상태.. 가 맞으리라.. 당연히.. ^^;)의 시간에는
눈 뜨기가 힘들어지는 아침이 이어진다.
이럴 때 나를 붙들어 세우시고
하루 하루 지켜나가며
주님 부르실 그날까지 날 세우시는 힘은
'말씀 '을 통한 레마시다.
그런데...
그런 아침에
말씀이 어려운 오늘 같은 날...
특히 '이름'이 죽~ 나열되는 구약의 경우는
참 힘들다.
그러함에도 그러하신 이유를
분명코 알기에
묵상기도로 예수님을 연상하고 들여다 보기도
그래도 안되어 '말씀 해설' 을 보고... 하기도 한다 .
그래도 '레마'라 생각되는 부분은 없지만
새로운 것은 발견했다.
2 그룹의 '세사람'과
30두목 사이에
'요압'의 이름이 없다.
그리고.......죽은 '우리아'의 이름이 있다.
당연히도 이 체제는 '하나님 앞에 다시 바로 선' 다윗님의 의중을 주장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맞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요압...
이 대단한 용사.. .
지금 까지 많이도 이름이 들어난 자이지만
조금은 '반항'적 인물.
굉장히 중한 능력자 였지만
다윗의 명령을 조금씩 비틀어가는 자.........
비록 , 상황의 엄중함을 이유로
다윗이 드러내놓고 그의 잘못을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언젠가 분명코 도움이 되지 않을 인물..
그가 '이름'이 드디어 배제 되기 시작한다.
당연하지만 이 모든 것 하나님이 허락하신 배제가 맞을 것이다.
그 , 요압은
이땅의 뛰어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명령과 그 체제를 깊이 인정하기 보단
자신의 판단,
즉 이 땅에 국한 된 시선으로 행동을 하다가
저리 된게 맞다. ㅠㅠ
또, '우리아'
그렇게나 열심히 충성을 다하고
곳곳에서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보아도
이 땅의 능력자이기도 했지만
다윗에게 철저히 농락당하고 죽음을 당한 후
아내까지 빼앗긴 '불운'의 대명사.
두 사람이
다윗을 중심으로
묘하게 교차되어 드러난다.
한 사람은 이름이 드러나도 가장 수장으로 드러나야 함에도 그렇지 않고
한사람은 가려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름이 드러난다 .
아... '사람의 시선', 판단에서 말이다.
왜 일까?
무엇을 보이시려할까?
요압이야 위험한 인물,
다윗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야 하는데 지장이 되는 인물이라서
정세가 바로 잡히기 시작하고
하나님에 대한 바로섬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후 부터
배제되기 시작했다해도
우리아는 어떤 일인가?
어떤 영적 의미가 있으며
내게 어떠한 말씀을 주시려 이런 상황을 대비시켜 보이실까?
느껴짐은 이렇다 .
이 땅의 모든 것.......
당연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상급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요압이
그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비록 유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서 있지만
자신의 자아가 매사에 충만히 들어가 있는 자..
비록 세상적 능력이 뛰어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기억되지 않을 것이며
반대로
'우리아'
역시 '유다의 용사'로 능력자였지만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위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을 보이다가
자신도 모르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어떻게 보면 세상적으로 정말 미련한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이심이시다.
두 대비 모두 공통점은
'하나님 나라'는 '이 땅의 어떠함'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이고
그러기에
내게 그리 알라심이시다.
"주하인아.
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에 까지 연결되어 있는
현재가 사실이며
현재의 일로 흔들리고 여기가 마지막인듯 살지 않아도 된다" 심 같이 느껴진다.
정말..
깨달아와 진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레마를 주실 때 느껴지는 가슴 따뜻함과 나른한 평온함이 몰려온다.
정말 감사하다.
살아계신 내 하나님 앞에
매일 서게 하심이.. ...
아...
지구와 천국의 삶을 이어주는
가장 귀한 끈을
난 붙들고 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하나님.
겨우
이 땅에 살다가 죽어 썩어 버리는게 모두라면
얼마나 억울하고
의미를 찾지못하고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살다가
그냥 흥미를 잃었다 생각하면
벗어버릴 육신의 존재이니이까?
오늘
용사들 중 요압의 이름이 없음과
죽어버린 우리아를 대비시켜 주심을 통하여
역시.. 당연히
주님의 우리에 대한 의도하심이
겨우 이 땅에서 할일 만에 속함이 아니시고
우리의 영원까지 다 헤아리고 배려하시는 뜻을
살그머니나마 읽어볼 수 있게 하십니다.
주여.
너무도 잘난 요압이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지 못하고
너무도 어리석어 보이는 능력자 우리아의 충성이
그토록 배반으로 되갚아 지는 것이 끝이라면
정말 ... 속상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
그냥 오직 하나님 만 아시는 철저한 비밀..
이 미련한 자들은 그냥 .....이라는
어리석은 억압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비밀을
다시한번 깨닫게 하십니다.
주여.
주의 저희들에 대한 관심이
겨우 이 땅의 축복과 심판에서 끝나는 것이아니시고
주님은
저희의 바람을 넘어서는 기대를 가지시고
그렇게 '세상'을 운용하시고
저희로 같이 시선을 넓히기를 기대하심을 요..
그랬습니다.
우리아는 억울한 자만은 아니고
하나님 ,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영원까지 기억하실 용사로..
요압처럼
이땅에서 '믿는 자'의 이름은 가진 자지만
자신의 자아 충만하면
결국 .. 거기까지가 그의 상급의 한계임을 요.
아...
그러고 보니..
굳이 너무 좋아서 웃을 일도
실망해서 좌절할 일도 별.. 없었군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저의 , 저희의 상급이 ..
아.. 저의 관심의 폭이
겨우 이땅이 아님이 아니심을 제게 말씀하시는 군요.
감사하나이다.
주여.
변화없는 제 .. 세상 보편과 조금은 다른 행보에
알면서도 지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시선을 더 넓히는게 쉽지 아니하오니
주여
성령으로 이끄소서.
오늘 또.. 힘을 내
넓혀진 시선으로
또 말씀을 근거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모든 거..
주님이 다 아시고
주님이 다 판단하시고 인도하실 것..
그냥 기쁘게 기대하고 살아가겠습니다.
주여.
잊지 않게 하소서.
성령 충만으로 그리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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