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오늘 이후를 위한 허락하심[삼하23:1-17] 본문
2009년
한참
말씀으로 인한
성령 감전의 시절 ^^*
출근하던 발길을 붙들던
2월 어느 아침
감동으로 찍어낸 사진.
계절을 이겨내고
녹색 생기를 뿌려대는
저 작은 보랏빛 풀꽃과
그에게 내려 앉은
아침 햇살이
사뭇 감동의 전율로 다가왔다
주님께서
말씀에 감동하는
나를
그리 보실 개연성이 많다
할렐루야...
2.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난
분명코 안다.
'여호와의 영' 즉, '성령' 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다'는 그 의미를..
그것도 확실히 ...
그러함은 내가 그런 표현으로 표현해내고 싶었던 현상들이
이러한 표현과 동일 한 것임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사'한... 것임을
그래서 내 혀에 말씀이 있다는 것의 의미를 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다윗님의 저표현은 저러한 영적 수준에 있는 분의 너무도 정확한 표현이고
실제이시겠지만
성령 충만할 때의 어떠함,
나도 모르게 '방언'이 나올 때의 기분...............
은혜 때의 기분...을 통하여서
'공감'이 되어진다는 이야기다.
이제
오늘 말씀하시는 대로
"그날에 염려하지 말라.
성령께서 네 할말을 .. " 이란 표현되시는 수준까지의
오늘 표현을 보면서
성령이 충만하여
은혜에 감전하여
온통
심지어는 혀끝까지그 분의 말씀으로 넘치는 상태가 된다는 것...
그 기분의 어떠함..
그 때의 내 영혼의 자유로움의 어떠함을
사모하게 하신다.
그렇다.
사모다.
'성령을 사모함'
'성령이 내주합일 되어 온통 내 전 영혼을 횡행하셔서
내 혀까지 주님의 말씀으로 사로잡혀 나오는 상황을 기대함.. 간구함'이
오늘 말씀의 주제가 아닌가 싶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아니 더 정확히는 '생각'과 '감정'의 흐름 마져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
'사람을 바라볼 때
'내 안에서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대로
내 비틀렸던 마음과는 상관없이
다르게 바라보게 되는 현상...
너무도 많이 나오고 자주 뵈어 당연한 듯싶지만
'경외'라 함의 상황이 매일 우리를 사로 잡는 다면
'공포'와 구분이 가지 않는 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고
'경외'하는 것,
그 분 안에서의 하루가 왕궁에서의 천날보다 낫음을
진정 기쁨으로 체휼하여
그냥 '하나님 안에 있는 것' 자체가
그 어떠한 규제나 규격안의 답답함 보다 커져
'공의'와 '경외'가
딱딱함보다
오히려 전율의 기쁨,
감사의 기쁨
안도의 기쁨자부심의 기쁨...이 너무도 커져
내 일상을 사로잡는 상황이 되어 버리는 자 되는 것... 말이다.
4.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자연스레이도
아침 돋는 햇빛같고
맑은 구름한점 없는 아침과
녹색의 생기 푸르릇한 새 순에 내리 쬐는 비 걷힌 아침 광선 같은
그런 자의 상황이
내 매일이 되길
정말 기대한다.
오늘 도 여지없이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집중이 안된다.
하지만 그래도 일어나서 말씀을 묵상했다. .
잠시 찬양을 틀어 놓고 하나님 말씀을 붙들려 노력했다.
요즈음..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라는 생각들이
또 나를 사로 잡으려 한다.
한번 도 가보지 않은 시간들을 살아가며
또다시 익숙한 레파토리들이 나를 흔들려 한다.
'이것이 .. 이렇게... 괜찮아?.. ' 라는 듯...
그런데 이제는 안다.
'주께서 모를 일이 없으시다.
그냥 늙어가며 뒷방 늙은이로 늙어감의 방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시다.
그러함에도 변함없는 이러함과 늙어감의 허락되어짐은
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의 허락되어진 상황이며
따라서 흔들릴이 없음'이
내게 정립되어진 '작은 믿음'이다 .
그래서 덜흔들리긴 하지만
가끔... 많은 시간이 점점더 내게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들에
나도 모르는 초조함이 들어오려 한다.
그러면서 알아진게 있다.
아.. 매일 말씀으로 날 붙드는 과정에서
은혜로.. ^^*
허락되어진 이 상황.
이 상황이 내게 가장 '선한 결과'의 과정이라면
꼭 필요한 게 있다.
점점 더 나아짐.
그렇지 않고 지금 처럼 변화없이 늙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심이 아니심이 당연히 맞을 것이며
그것이야 말로
'내가 내 자가 당착 안에 머무는 ' 퇴보 아닐까 싶다.ㅠ.ㅠ
그게 아니라면
내가 무엇을 어찌 해야 하는가.. 가 남은 질문이다.
이렇게 외적으로는 그냥 늙어가는 과정의 흐름이지만
내 안에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
더.. .
성장.
성화.. 말이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허락되어진 이 환경에서
말씀대로 내 마음이 흘러야 한다.
쉽지 않지만 '더 안되어서 허락되어진 지금'이다.
말씀대로 변해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못했던..
'내가 이러니..
내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아픔이 있었으니.... ' 뒤로 숨어
그냥 도피해버리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과 다름 아니던가?
' 성령'을 더 사모해야 한다.
성령이 내 혀끝까지 임하실 정도로
조금더 주님 전으로 다가가야 한다.
다행이도 위에 고백했지만
난.. 그러한 의미를 잘 아는 영적 체험들을
이 긴 시간 동안 자주 체험을 했고
그 경험의 기록들이 이 블로그에 잘 올려져 있다.
더욱 깊이 성령께서 내안에 내주 합일되어
내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그래서 혀끝까지 주님의 성령으로 주장되실 수 있길 기대해야 한다.
그게
내 허락되어진 이 삶의 행태에서
나가야할 '지표'다.
또 하나...
깨달음을 '말씀'에서 '문자화'하여 주신것..
'공의로 주변을 바라볼 ' 마음의 흐름...
다행히 '내 현재'를 허락하셔서
외적 자극이 덜하다.
아픔이 덜 건드려지니 안주하지 말고
공의의 연습을 하여야 한다.
그들을 덜 미워할 결심을 하고
그들을 용서하며
그들을 더 '긍휼'히 바라볼 수 있도록
사모하고 연습해야 한다.
성령을 사모하고
말씀이 있으시니 더 기대해야 한다.
그리고 자주 뛰쳐 들어오는
내 안의 어이없는 움직임들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내려 놓아야 한다.
그렇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결심과 깨달음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막연함들이
'정체'하고 있으면 '옳지 않음이요'
'발전'하고 고민하고 회개하고 주 앞에 눈물로 가져올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 잘 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성장'
'성화'의 간단한 지표가 아닐겐가?
나..
내 그러함에 대하여
주님께서
'비없는 아침 광선'과
'풋풋한 새싹에 내려쬐이는 광선'의 아침의
그 기쁨으로 보신다니
확실히 느껴진다.
아...
그런 느낌들..
지나온 시간동안 이 블로그에
사진으로 찍혀있고
글로 올려져 있다.
정말.. 감사하다.
정확히도 주님께서 내게
말씀해주셨다.
주님.
오늘도 역시
말씀이 힘들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점점더 깨달아 지는 바가 있던 부분..
이렇게 문자화하여
뚜렷이 깨닫게 하십니다.
제 막연한 생각들을 정리해서 밝혀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더구나 그 모든 것 ..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게 하심으로
성령의 인도와 은혜대로
자연스레이 이루어질 개연성을 예언하시는 듯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저로 하여금
이 허락되어진 현재의 상황에서
당황하거나 답답해 하기보다는
새로운 목표를 뚜렷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발전하게 도와주소서.
내적으로 부딪쳐오는
그동안 자주 넘어지고 잘 넘지 못하던 문제들
주님께서 하나씩
붙들어 이겨내고 넘어갈 수 있도록
도우실 줄 믿습니다.
말씀이 있으시니
말씀 앞에 끌고 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씩 터뜨려
극복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때 주어지는
내 영혼의 쾌감이 얼마나 큰지
마치 새싹위에 내려 앉는 햇빛의 상쾌함으로
확실히 또한번 느껴지고
이리 가도 저리가도
심지어는 제 혀끝까지 주장하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또 하루 살게 하소서.
주여.
제 나아갈 방향을 뚜렷이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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