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삼년 되기전 주 앞에 서기[삼하21:1-14] 본문
1.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14.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
' 삼년기근'.
압살롬 사건과 더불어 얼마나 시간이 되셨다고
또 삼년의 기근이 올까...
다윗이 사울에게 그리 심한 고초를 당하면서
연단이란 연단을 다 마치고 겨우 왕이 되어서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되려나 했지만
'아들 압살롬 사건'으로 더불어
영혼과 육신의 강력한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시험을 통과한게
바로 어제까지의 묵상과정이었는데
또 시험은 그치지 않고 온다.
아...
인생이란.. .
이제 그만해도 될 것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다윗'님 까지도
저런 '인생의 고난,, 제련.. 연단'을 멈추기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아..
이땅은 '연단의 연속'이다.
천국에 도달하기 까지는
잠시 쉬고 또 잠시 .. 하면서
고난은 끝없이 오게 하시는게
그분의 원리이심이 맞는 것 같다 .
이정도면... 했음에도 또... 아.. 주여.
하지만 '연단, 고난, 제련, 인생의 고통'만을 집중하면
정말 소망이 없는 것 같지만
고난을 통하여 집중하게 하시는 부분이 있다.
압살롬 사건으로
'광야 나루터'를 통과하고 회복하는과정까지
어디에도 '기도'했다는 기록이 없는데
그 후의 연속되는 삼년의 '가뭄'에야
다윗이 하나님 앞에 '간구'하매.. 라고 나와있고
하나님이 응답하신 구절이 나온다.
'그 삼년 전과
그 삼년 동안
다윗은
무슨 의미 있을 일을
과연
하고 있었을까?'
그렇다.
당연하지만
'고난은 하나님 앞에 오라'라는 싸인이시고
고난은 아직 남은 죄,소소한 죄 자신이 짓지는 않았지만
허락되어진 위치에서 반드시 해결해야할..
더구나 상대의 아픔을 들으신 기도가 있으신 경우
그를 해결하시기 위한 싸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오늘 말씀은
고난은 하나님 앞에 다가오게 하시기 위한 도구이며
내 죽어 주님 앞에 갈 때까지는 주께서 원하시면 언제나
내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나
허락되어질 것이 이 고난이며
그러함을 더 빨리 통과하기 위하여서는
미리 기도 매사 더 기도
주님 앞, 주님 성전에 앉은 기도가 더 필요함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잊지 말자.
이 인생은 어쩌면
'기도'가 유일한 목적일 수 있다 .
눈을 들어
지구 밖, 태양계에 나가 조금 만 뒤돌아 봐도
수십년전 발사된 보이저1호 탐사선이
모든 실패를 무릅쓰고
태양계를 넘어서자 마자
맹렬히 달리던 주행 중
잠시 뒤돌아 찍은 지구의 사진...........^^*
태양계를 벗어나
지금도 끊임없이 우주 심처를 향해 달리고 있다.
수조광년을 넘어서는 우주에
겨우 17km/초 속도 지만...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지 않을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드신,
지금도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이 이루어지고 팽창되고 있는 ,
우주로만 눈을 돌려도
그 상상을 할 수 조차 없는 광활함 속에
이 티끌보다 적은 지구인데...
그 안에서 우리가 이룬것 못이룬것...
무엇이 그 분께 의미가 될 것인가?
오직 주님이 다윗이란 이름,
주하인이란 이름을 붙혀주시고
만나 주시니
겨우 내게 존재의 의미가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윗.
그 놀라운 하나님의 가장 지극한 관심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허락되어진 풍요와 권세를 누리게 되니
어느새 '하나님 앞에서'
그 분을 만나뵙는 그 절절함을 잊고 살다가
그 고난을 통하여
겨우 다시 기도를 회복한게 아니던가?
그리고는 다시 그에게 의미가 생긴 것이다 .
그렇다.
고난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시다.
기도를 회복하길 기대하시는 .. .
당연하지만 우리의 삶이 다시 의미가 생기게 하시고
저 천국의 삶을 위한
또 다시의 의미있는 행보를 위한 싸인 말이다.
주님.
아침 ... 집중이 잘 안되어 혼났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지는 바가 있습니다.
모든게 '주님'을 의식하지 않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요.
산다는 것.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저 사진에서 '태양계'를 겨우 벗어난 위치에서만 보아도
푸른 점으로 보이는 지구가
우주
,하나님의 피조물의 어마어마함,
주님의 광대하심의 끝간데 모를 위대함을 비교할 때
이 산다는 것..
이 살면서 움직거리고 고뇌하고 즐기고 자랑하고............사랑하고......
그 어떤 것도 당연히도 의미가 될 수 가 없을 것이
이 '벌레보다 못한' 저희임에도
주님의 철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근거로
의미가 되어 졌음이 너무도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오직.. .
오늘도 제 앞에 다다를 고난은
주님 전에 섬...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함.. 만을 위함이며
그를 통해서 의미가 생기고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확인이심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기도 이외
주님을 만나뵙는 것 이외
그 어떤 삶의 의미가 없음을 다시한번 확인합니다.
내주여.
오늘도 지치지 않고
주님 만을 의식하며 살 수 있길 원합니다.
내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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