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옳게 나이 들어가기[삼하19:16-39] 본문
잠시 있다 눈 떠보니
어느새
지금 ,여기다
그때도 조금 그랬는데
지금은 조금더 그렇다 .
이제 한번 더 눈감고 뜨면
이제 바르실래의 그나이가 되어 있겠지
그때 쯤 되면
난 어떠할까
정말
육신 안에 감금되어 유리된
절해고도의 외로움과 막막함만 있을까
지금이라도
말씀이 있으시니
은혜로 주어지시는
성령님의 임재가 형형하니
더 기도하고
더 감사하고
더 주변을 긍휼히 여겨야 겠다신다
감사하다.
내 살아계셔서
매일 이리 인도하시는
내 주님이..
.
35.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나이가 들어가니 정말 많은 부분이 쇠퇴하고 둔해진다.
젊을 적에는 많은 것들이 감동을 주고 흥분을 가져오며
조금의 자극에도 쉬이 울고 웃고 하였으며
별 필요없어 보이는 것들이 그때에는 어찌 그리 컸던지...
아마도 육신을 입고 이땅에 와서
육신과 영혼의 상호 작용하여 하나의 개체로 옳게 이루어짐을 보시고자
육신의 외피를 통하여 들어오는 여러 감각의 속도를 통하여
판단하여
내 영혼
'나',
자아의 성장을 이루도록 허락하신 이유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 ,
오늘 바르실래님의 고백처럼
모든 육신의 감각을 통해 '영혼'까지 들어오는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어
매사에 그리 감동이 없어지는 현상은 아닐까?
그래서 어쩌면 잘못 ..
육신을 마음대로 이끌고 살다가
육신이 감각만 의존하여 세상을 평가하고
자신의 허락되어진 삶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던
일차원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 영혼의 피폐로 점차로 '육신'이라는 '감옥'.. 틀에 갇혀버려
마치 절해고도에 방치되어 있는 것 같은...
아니.. 그보다는 '투명인간 처럼'
그 육신을 둘러 쌓고 있는 주변은 여전히 생생하나
그 육신 안에서 유배당한 자신이라 착각하는 영혼을
아무도 관심 갖지도 심지어 존재 자체도
그들 뿐 아니라 그 육신 속의 자신도 서로 교류할 수 없는
그 유배의 상태가 이루어지는 것 아니던가?
바르실래의 이 고백.
나이 80이 되니 그 어떤 것도
재미도 되지 못하고 감각 조차 흐려져 의미가 없어진다.........라는 것.
이제
80이 꼭 모두에게 동일한 육신의 쇠퇴와 그러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들어 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한번 돌이켜 보란게
오늘의 말씀 요지이신 듯하다.
36.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그런데
바르실래는
비교적 '옳은 선택'을 한 사람이다.
그가 바른 모습으로 성경에 올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꼭 하나님의 역사에 의하여 이루어진 행태는 아니지만
당연히도 '다윗'들의 행사에
이리 뚜렷이 쓰임을 받도록
그래서 '의미'있는 선택을 하여
옳게 쓰임을 받은 자임을 쉬이 알수 있다.
그러한 전제에서 '옳게 사는 것'
특별히 옳게 나이들어 가는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도
어이없는 젊은 시절의 흉내는 이제 내려 놓아야 함이다.
스러져 가는 육신을 붙들기 위하여
수많은 슬로건들이 난무하며
마치 천년 백년을 살듯 선전하는 것이 현대의 CF들이며
육신의 만족대로 살라고 부추켜 대는 게
어이없는 시대 사조 임은
이 육신 만이 전부인 것처럼 살다가 스러져 가면
그냥 버려져 버리게 하는 것이 그들 사단의 전략이다.
누구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나도 그렇다 .
나이가 들어가며 다른 자 하나도 없다 .
몸부림 칠 것은
'육신의 감각'을 유지하여 존재를 확인하려 애쓰는 미련함 대신
바르실래가 보이는 것처럼
'옳은 것'에 대하여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거침없이 행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어찌하는가?
시므이 같이 내면의 속삭임에 ,
과거의 경험 혹 상처에 근거하여되는 대로 성품을 발휘하는 것인가?
아니지 않은가?
옳고 그름의 기준은
절대로 '하나님'이외는 어디에도 없다 .
그 하나님의 뜻... 을 앎은 말씀에 근거하여야한다.
하지만, 말씀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면 왜곡 될 수 밖에 없다
늙어가는 자의 둔해짐과
늙어가는 자의 고집으로 바라보면
더더구나 그렇다.
매사 기도와
매사 은혜로
주님 앞에 매일 말씀을 사모함을 더 힘씀으로 얻어지는
옳은 판단.
그게.. 옳다.
그게 옳게 늙어가는
그게 곧 오실 '재림 예수님'을 마주하는
나이들어가는 자의 기본 태도이다.
천국을 향하여 좁은 길을 행하는 옳은 선택... 말이다.
36.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그리고
허락되어지면
내 자식, 내 주변을 위하여
중보하고
그들을 긍휼히 여겨
거침없이 행하는 태도.......가
오늘 내게 말씀하시는 바 이신 듯 싶다.
레마.
감사하다.
주님...
옳으신 내 하나님.
내 삶의 모든 것이신 주님.
오늘 .. 나이들어가는 자의 결국.
노추와 옹고집
그리고 그 안에 갇혀버려 살아있는 동안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육신 안의 지옥... 을 묵상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늙어가는 것이
죽어가는 것이 아니고
늙어가는 것이 절망만은 아님을
바르실래의 결심과 옳은 선택...
그리고 의미를 보게 하십니다.
그 분이 분명코 '하나님을 믿는 자'인지 여부는 뚜렷하지 않지만
어쨋든 '다윗'님의 행보에 선한 도움을 준
아주 아주 나이든 자.. 이고
그를 통하여 '다윗과 그 일행 ' 뿐 아니라
김함까지도
선한 영향을 받게 됨은여러가지 그 나이까지
'옳은 선택'을 하고
마지막까지
주 안에서 가장 선하게 이용되는
옳은 나이 든 자로서의 선택을 함을 보고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나이들어가며 당혹스러운 부분.. .
이제 감각이나 의욕.. .그 모든 것이
이전의 의욕적 시대
몸이 대체로 마음대로 움직이고
약간의 자극에도 쉬이 반응해 들어오는 육신과 정신의 교류가
이전 만큼 쉽지 않음입니다.
쉬이 지치고
쉬이 재미가 없어지며
쉬이 의욕이 내려 놓아지고
심드렁해지는 것입니다.
아.. 이러다 바르실래님의 고백처럼
완전 고립된 , 육신에 유기된 듯한 나이가 오면
그 어이없음과 고독과.. .어려움을 어찌 감당할 까요.. .
다행이도 주님이 그 나이 오기전
하나님 앞에 더 바로섬으로
옳은 의미.. 진정한 삶의 의미
그래도 이루어지는 '삶의 천국'을 바라보게 하시나이다.
제대로 나이듬.
옳은 나이듦에 대하여 묵상하게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오늘 가슴에 심고 다니겠습니다.
내 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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