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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과 나 ( 삿16:15-31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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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과 나 ( 삿16:15-31 )

주하인 2007. 12. 20. 12:42

 제 16 장 ( Chapter 16, Judges ) 
 

주님

주님의 십자가에

나의 옛사람을 못박고

주님

주님의 부활하심에

나의 새 모습을 걸렴니다.

주님

주님 만이 내 생명입니다.

 

 

 
16.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17.  삼손이 진정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삼손은

엉망진창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쓸데가 없는 자이다.

망나니다.

쓸데없이 힘만 쎄다.

 

그래도

주님의 사랑은 많이 받는다.

그는 '나실인'이다.

 삶은 엉망여도 주님의 사랑은 받는다.

혼나기 때문에

죽음의 위기까지 결국 몰리지만

그는 성경의 상당부분을 할애 받을 만큼 사랑 받는다.

난, 둘째가 엉터리 같이 공부를 못해서

 속은 상하지만

속 깊이 애가 사랑 스럽다.

 

웬일인가?

나실인이기 때문이다.

나실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존중하고 그렇게 키워진 아이다.

 

 삼손이 이런 존재란 것은 어떤 의미인가?

 

 주위 사람을 귀히 여겨야하고

주님을 사랑하여야 한다.

삼손은

주님은 사랑하되

이웃 보다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다.

 

그러기에 삶이 복잡하고 힘이 들다.

 

 

22.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그 엉터리가

눈이 빠지고

묶여서 놀림 받게 되었다 .

 주님께 혼난 것이다.

 

그래도,

머리털이 자라듯

하나님의 사랑은

늘 쉬지 않고 커지신다.

 캄캄한 것 같은 상황에서도

절해고도의 답답함이 있어도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듯

메마른 듯해도

주님은 늘 곁에 계시다.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그 엉터리 삼손.

이제야

진심으로 주를 찾는다.

 

'주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가슴이 아파오려 한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다시금 주를 찾는

그의 절박함이 가슴이 아프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라는 표현이 가슴이 아프다.

 

 주님 도우세요.

주님 주세요... 도 아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다.

그게 가슴이 아프다.

 

그는

그의 전성기 시절,

그의 손에 의해

수수깡처럼 떨구어져 나가던

그 블레셋 인들에 의하여

바닥까지 내려가

최고의 고통과 수모를 당하고 있다.

눈이 보이지도 않는 그 어두운 암흑 속에서

그는 얼마나

자신의 가슴을 치고

후회하고 통곡을 했을 것인가?

 얼마 동안은

블레셋 사람들을 향해

불처럼 분노했을 지도 모른다.

 얼마동안은

자신을 향해

수없이 자책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심한 절망감에 빠져

온통 전신의 근육이 무기력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서도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블레셋인들의 채찍과 조롱으로

혼란에 빠져

거의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정서 공황 상태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마음이 텅 비어 있는 상태.

 

 

 어느 순간

불현듯

주님이 생각났을 것이다.

그리고는

멍하니 입벌리고 있던

그의 눈동자 없는 눈에서

한방울 굵은 눈물이

주루륵~ 떨어졌을 것이다.

통곡이 이어졌을 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잠든

헛간 깊숙한 곳에서

혼자 하염없이 흐느꼈을지도 모른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하나님의 임재로

마음이 편안해졌을 것이다.

 

때가되자

그의 표현이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라고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을

상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그의 그 표현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가?

 

 '나를 생각하옵소서'

이걸 들으며 - 괜히 보는 글을 듣는 느낌으로 느껴질 때가 가끔있다.'- 그의 어린 심성이 다시한번

읽혀진다.

 이랬을 것 같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주님.. 제가...이런 것..이런 것.. 요것..조것..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주여 .. 제 기도 들어주세요.'

눈치를 살피며

말을 빙빙 돌리며 ..

아마 그것은

죄책감 탓에

혹시 주님이 아직도 화가 안풀렸으면 어쩌지..하는 ..

 

그럼에도

삼손의 '나를 생각하옵소서'라는 말은

어린 아이 같이

이런 저런 앞뒤 재지는 못하나

고생을 통해

조금은 무엇인가 다른 게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하나님께 구하는

절박한 심성이 느껴진다.

 

 삼손.

그를 보며

몇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주님이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당신의 뜻에 어떻게 맞추어 살기를 바라시는가?

과연

무엇이 주님의 뜻이신가..이다.

 

삼손은

틀림없이 주님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있는 자가 틀림이 없지만

그의 말로가 비참한 것은

그가

이기적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주님은

'주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더불어

'이웃에 대한 관심을 통한 나눔'을 원하시는 것이시다.

전도도 그렇다.

십자가에 피흘려까지

천국의 길을 열어놓으신

그 하나님의 거룩하고 온전한 방법이

우리 하나의

영달과 자리 차지함에 머물고 있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구제는 어떤가?

교육은?

모두, 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시다.

 당신 하나님은

그 고귀한 사랑을 이웃과 나누기를 원하는 것이시다.

 

오늘 묵상을 보면서

삼손이

죽지 않고 살아 나와서

십년 이상은 더 살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다.

 

 

적용

 

1. 성경 다섯 장 읽겠다.

 주님의 말씀 만이 살길이다.

 어리석은 나는

 내 속에 갇혀서

 나만의 기쁨을 위해서 얼마나 살았던가?

  주님의 뜻대로

 이웃을 위하여

 겸손한 삶을 원한다.

  주님의 말씀 만이 날 변화 시키신다.

 

2. 좋은 일 한가지 하겠다.

 

 

기도

 

하나님

오늘도

정신 없이 바쁘면서

주님의 일이 뒤로 밀리는 듯 했습니다.

이제야

묵상을 마무리 하면서

참으로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주여.

겸손하길 원합니다.

남들 앞에

좀더 나를 낮출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들을 위해

나를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들을 위해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과실을 덮어주고

그들의 미덕을 격려하고

그들의 번영을 기뻐하고

그들의 부족한 것을 도와주고

그들의 불친절을 묵과하고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들의 빈곤을 동정할 수 있길 원합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낮추어

가장 낮은 사람을 위한

가장 낮은 직무를 수행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실은

윌리엄 로우의 글이시지만

그게 오늘 주님이 저에게 원하시는 뜻이십니다.

주여,

아직도

마음은 거부를 합니다.

삼손이

자신의 뜻대로 마구잡이로 살던

그 거짓된 자유의 향수가 너무도 강합니다.

육신을 치고 올라옵니다.

낮추려면 어찌 속상한지요.

 

주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해주소서.

 

저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

저의 특별한 점을 기억하소서.

주여.

저의 아픔을 다 아시는 주여.

주여

기억하소서.

주여 잊지 마시고

이 어리석은 치밀어 올라옴...

주님께서

주의 뜻대로 녹이시어

이제 주님의 사람으로 써 주소서.

남을 위한 자로

그것에서 온전한 기쁨을 누리도록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여

구하옵나니

제발 저를 변케 하소서.

저를 사랑하게 하시고

저의 모든 것을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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