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엽기 묵상 ( 삿 14:1-20) 본문
제 14 장 ( Chapter 14, Judges )
우리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눈 온 아침 풍경.
온실 안에서
가만히 만 있으면
추운 줄도 모르고
좋긴하겠는데
삼손의 급히 임하는 성령 체험은 불가능 하겠지...
5. 삼손이 그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서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어린 사자가 그를 맞아 소리 지르는
지라
6.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 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8.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취하려고 다시 가더니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떼와 꿀이 있는지라
삼손은 나실인이다.
삭도를 대지 않고
특별하게 '영적'으로 길러지는 사람.
그에게는
아버지 어머니가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달라는
비 영적이고
비 착한 아들적인..ㅎ
부모로서는
하나님의 사자를 직접 만나
대화를 통해 받은 아들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청천 벽력이지만
아들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들어준다.
그러나, 이것 조차
여호와의 베푸신 일이라 되어 있다.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내 삶에 펼쳐질
수많은 이벤트중
이해할 수 없고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고민하기 보다는
받아 들여 보려 노력하겠다.
전제는
주님 앞에 기도하고 물어보고..
아들 문제에서
특히...
어찌 되었던
아들에게 밀려
딤나에까지 왔고,
어떤 일이던
잠시 헤어져서
포도원에 온
삼손은
사자가 달려드는 '무서운 일'을 당하게 된다.
얼마나 놀랬을까?
그러나,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라고 나와 있는 것 처럼
그 짧은 순간에
성령이 순식간에 '빡세게'임하시는 탓에
그는 사자의 입을 찢어 버리게 된다.
그 순간의 몸짓이
눈 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입벌리고 달려드는 사자를
순간
눈에 불이 번쩍하는 삼손의 손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위로 치켜 올라가
아주 정확히
사자의 벌려진 입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위 아래로 잡아채서
양쪽 볼이 다 찢어질 만큼
크게 벌린다음
사자의 상악과 하악의 관절이 탈골이 되어 버릴 정도로
순식간에 회전 시켜
버렸을 것이다.
그 바람에
사자는 상체는 90도 이상 돌아가 버렸을 것이고
하체는 달려오는 관성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대신 삼손의 팔꿈치 쪽으로
잠깐 압축이 되는 바람에
사자의 척추가
'우지직'하며
일부분 압박골절과 디스크 탈출 현상이
동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자의 입에
양 손가락 2와 3번째를 집어넣어
북~하고 찢지는 않았을 것이다. ㅎㅎ
우선, 달려드는 사자의 속도를 감당할
counterforce(反對力)을 내기에는
너무 역부족이라서
그렇게 했다가는
삼손이
이빨에 찔리거나,
뒤로 나둥그러지는
민망한 형국이 되었을 것이고,
또한,
코미디 같은 장면으로
그 멋진 사자.. 하나님의 피조물이 죽는 것도
볼쌍 사납다.
어찌 되었던 간에
여기서 관심을 가질 것은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라는 점이다.
주님이
위급할 때
두려울 때
다리가 얼어 붙을 것 같을 때
순식간에 성령으로 임하시는 체험을
오늘 나에게 시킬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나실인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할 텐데
난
'영적인 나실인'의 가능성이 있을 것인가?
속으로
그렇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스스로 돌아보아도
내 삶은 평이하지는 않았다.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기뻐하는 믿음의 여정도 평범치 않다.
지금껏 그 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사라지지 않음도
특이하다.
난,
나실인으로서의 삶은 살지 못하지만
삼손도 그렇지 않은가?
장가 가겠다고 하고..
그렇지만
주님은 '순식간에 크게 감동하신 성령을 보내사' 사자를 찢어 죽이게 하신다.
아침에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해안가다.
우리나라는 아니다.
백사장 넓은 곳에
많은 사람들을 피해
멀리 뒤쪽으로 돌아보니
사람 하나도 보이지는 않되
멀리 금문교 다리 같은 다리가 끝없이 보이고
그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너무도 아름답다.
사진을 찍으려 하니
하늘을 가로 막은 전선 줄을 보는 듯 답답하여
오른 쪽으로 돌아다 보니
아,
저 멀리
마치 북극의 그것인 양
너른 바다 끝에
너무도 신선한
바다와 섬이 보이지 않지 않는가?
너무도 아름다왔다.
이 세상에서 본 적이 없는 듯...
바위 이 쪽 저쪽을 넘어 가며
사진 찍기에 좋은 지점을 찾으려 하다가
문득보니
멀리에 두마리 짐승이 대치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가만히 보니
커다란 멧돼지- 정확히 모르겠다- 처럼 보이는 짐승이 입을 벌리고
꼼짝을 하지 않고 서 있다 .
바로 맞은 편에는
다가서는 동물이 하나 있는데
희한하게도
그 멧돼지의 머리 정도 크기 밖에 되지 않는
'토끼'다.
그게 이러면서 다가간다.
'괜찮아.
걱정하지마
입벌리고 그대로 있어.'
이상하게 굉장히 무서웠다.
토끼가...
그 토끼가
그 무섭고 큰 야수의 입에 고개를 넣더니
혀를 씹어 먹는게 아닌가?
끔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깨어났다.
잠시 눈을 감고 십자가를 묵상하고서야 일어났다.
한편, 무서워 지려 하였다.
토할 것 같은 느낌도 일어났다.
다양한 생각이 났다.
그 두려움의 실체.
'토끼'이고
크기가 적은데
두려워 한다.
그냥 입 다물어 버리면
끝일 것을
아마도 그 야수가 어려서 부터
두려움에 길들여져 왔던 모양이다.
그러니, 그 엉터리 같은 상황을 당하지.. .
그 뒤로 보이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
'천년 왕국'
'천국'
내 시선을 사로 잡는,
아니
오랫동안
사로잡아 왔던..
그러면서 본질에서 정신을 돌리게 하는
두려움의 실체가
어리석게도 '두려움' 자체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을 다물어
먹어 버리고 ..
아니, 입으로 물고
오늘 삼손처럼
손으로 잡아 찢어 돌리면
간단할 것이 아닌가?
오늘 묵상에도
'어린 사자'라고 나온다.
사자가 입벌리면 무섭다.
그러나, 어린 사자 임을 알면 훨씬 더 쉽다.
그러 함에도 순간에는 가능치 않을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님께서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지게 하시었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으시면
두려울게 무엇인가?
위급한 순간에 '크게 감동시킬' 성령님이
오늘 내 묵상의
키 워드인 듯 싶다.
하지만 나실인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다시 생각한다.
난, 누구인가?
대충 믿는 자 인가?
아니면 특별한 믿음을 가지는 자인가?
특별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인가?
모든 사람에게 허락된 천국을 위해
영적 나실인이 되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뜻은 아닌 것인가?
영적 나실인이 되기 위하여서는
오늘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당연히도 주님의 뜻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삼손은
세속의 것,
힘을 잘씀에 대한 자만과
여성의 유혹에 빠져
주님의 동행하심에 의한 자신의 능력 발휘에 대하여는
매너리즘에 빠진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결국은 죽음으로 몰아져 간다.
실은
죽음 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리도 알아서 임하시는
성령의 임재가
전혀 없다는 사실.
그래서
주님께서 침묵하고 계시다는 사실이 더 무서운 것이 될 것이다.
주님과 동행하던 시절의
그 아름다운 기억.
저 멀리 보였던
그 아름다운 바다 저편의 천국의 아름다움이
바로 자기 것이었음을 알고 감동하고 살던 시절이
어느덧
육신의 세력에 갇혀
무뎌지고 말았다는
그 절망감이
가장 큰 고통이 될 것이다.
적용
1. 갑자기 크게 임하시는 '성령'님을 기대한다.
2. 난 영적 나실인이 맞는가?
3. 맞다면 어찌 오늘 해야 하는가?
4. 성경을 다섯 장 읽겠다.
5. 오늘 모임에서 '겸손'하겠다.
6. 모든 걸 주님께 맡기겠다.
특별히 아들 들을 이해하고 기다리겠다.
주님께 의지하고 맡긴다.
기도
주님.
아침 부터
꿈이 희한하더만
삼손의 엽기적 행동과
그 뒤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내가 누구인지
다시금
묵상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내가 맡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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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묵상
시체에 벌떼와 꿀.
희한한 현상.
옛날 이야기라면
무엇인가 설명이 있어야 함에도
성경은 다르다.
무엇인가 생각케 하고
무엇인가 말씀하시려 하시는 도구이다.
그렇다면
시체의 꿀은 무엇인가?
승리의 흔적.
두려움은
두려움이 아니고
성령이 크게 임하는
도구일 다름 아니다.
시련은
고통에 끝나지 않고
성장을 위한 도구이다.
아직
부족한 내 머리로는
어린 영혼으로는
그 정도의 생각 밖에는 주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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