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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든 모든 이들에게(요6:16-33) 본문

신약 QT

삶이 힘든 모든 이들에게(요6:16-33)

주하인 2006. 1. 19. 10:06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날이 저물면 사람들은 서서히 집으로 갈 준비한다.

제자들이 날이 저물어서 바닷가로 내려가서 어디 가버나움으로 갈 준비를 한다.

내려간다.

 

열정적인 주님의 사역에 뒤따르다가 어두워 지자 쉴 마음으로 산에서 내려와 바닷가에 터벅터벅 내려가 나른 해진  몸으로 배에 몸을 싣는 모습이 연상이 된다.

 

 

우리 인생도 38이후면 저물어 중년이란 얘기가 있다.

남자들, 그 열정적이고 테스토스테론이란 남성홀몬이 넘쳐서 주체를 못하고 밖을 향하던 열정들이 안으로 향하게 된다.

 성격적으로도 점차 여성화되어 부인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 사회적으로도 자신감을 잃는 시대이다.

 

 책들도 '인생 후반전', '하프타임' 등의 제목으로 중년을 위해 많이 출간되어 있다.

교회에도 세미나의 상당 부분에 중년을 대상으로 개설이 되어 있고 그 많은 강좌마다 사람들이 몰린다.

 

칼융이란 심리학자는 중년기의 남성을 안으로 회귀하고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 영적인 부분에 관심을 많이 갖는다고 하여 '영적세대'라는 표현을 했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다.

 

어찌 되었든..

 

저물매'와 '바다에 내려가서'라는 단어는 어딘가 허전하고 무엇인가..정리해야할 분위기다.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지쳤지만...갈 목표가 있다.

가버나움에...

 

피곤하지만 노를 젓는다.

그러나..

 

점차로 날은 어두워졌다.

 

 어두워진 밤바다에 .. 들리는 소리라고는 '삐걱 삐걱' 노젓는 소리 밖에 없다.

몸은 피곤하여 잠시 대화를 나누던 제자들은 침묵하고 있다.

 

분명히 목표를 잡아 가버나움으로 가고 있으나..

어둠밖에 보이질 않으니... 답답하다.

 

계셨으면 힘날 우리 주님 예수께서 보이질 않는다.

그냥.. 어둠 뿐이다.

 

 

 우리의 현상과 참으로 비슷하다.

 

열정적으로 주님을 믿고 나아왔으며..

주님이 도울 실 걸 아나..

 

잠시 주님은 보이시지 아니하고..

몸은 기력을 잃어간다.

어디로 가야할지 불빛하나 보이지 않는다.

 

서서히 무기력에 빠지려한다.

답답해 지려 한다.

수많은 주님의 기적과 이적과 그분의 카리스마도

끝없을 듯한 깊어가는 어둠과 정적 앞에는

서서히 잊혀져 간다.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그러다가 ..

우리 중년의 인생에..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기 시작한다.

 

아들들은 공부를 못하고

반항한다.

사업은 엉망이다.

집사람은 온통 볼멘 소리만 들린다.

모처럼 만난 친구들의 발전은 눈이 부실 정도다.

그토록 열심이고

주님의 뜻이라 믿고 버리고 박찼던 모든 멋진 모습들이

혹시 나의 치기 어린 영웅심리는 아니었던가... 의혹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드디어는 '정체성'의 위기에까지 몰린다.

파도가 일기 시작한다.

 

주님.. 어디계시나이까?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주님이 날 위해 흘리신 그 피가 얼마인데...

주님이 십자가 위해서 찢기는 육신의 고통을 참으심 그 얼마나 감사한데....

그 분이 하나님으로 겪으신 그 수모가 얼마나 크신데...

그분이 맞으신 채찍은 또 얼마나 아프신었는데... 

 

내가 이쯤 흔들림이야...

억지로 억지로 참고...

힘을 내어 온 길이 '십여리'이다.

 

믿음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 얼마나 흔들렸는지..

이 끝도 없이 달라붙는 의혹은 또 얼마인지...

 

가만히 눈을 감고 주님을 묵상할 수만 있어도 좋으련만...

현실의 비바람과 폭풍우는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어둠은 두렵다.

흔들림은 어지럽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서서히 눈 앞에 달려들기 시작한다.

 

그래...

두렵다.

 

그러나.. 까짓거.. 죽기 밖에 더 하겠는가?

 

그러나..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

그토록 주님 예수님을 가까이 모셨것만...

내 믿음은 어찌 이리 약한고.. ?

 

이제는 그 분이 내 곁에 계셨던가.. 그 것마져 의심이 된다.

 

 

그 분은 계셨다.

 

비록 비바람은 불고

바다는 흔들리고

어두워서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도..

그분은 어둠 저편...

흔들리는 바다 위 바로 저편에

 

안타까운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계셨다.

 

문제는 ...

이런 주님을

이런 상황이라고

몰라보는

어리석음이 문제다.

 

그 분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절대로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었다.

 

그 분만의 철저히 계산된

엄청난

사랑의 이유로...

잠시 곁에

그냥 서계셨던 것 뿐이지...

 

 

 

문제는...

그 주님을

기뻐하고 환영하기 보다는

 

오히려

착각하고

무서워 하는

어리석은

우리의 인지체계가 문제지...

 

 

아니..

예수님을 반기기 보다는

두려워 하기는???????

 

 

후와..

세상을 너무 관심을 두면...

기뻐할 그 분이..

그토록 기다리던

해결사 예수님을

오히려 두려워 하는

이상한 현상을 보이다니..

 

주님이시여

용서하소서.

조금이라도

단 일순간 이라도

우리 주님 잊지 않도록 하소서.

마귀의 장란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20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그래도 멋진 우리 주님.

영원이 불변하시는 우리 주님..

 

우리의 어리석음과는 상관없이..

우리의 흔들리는 의혹과는 상관없이..

 

어둠 저편에서 안타까운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지켜보시던 그 분이 ..

우리가 넘어지기 직전

물에 빠지기 직전

우리의 믿음이 사라지기 직전

 

슬그머니 나타나셔서...

 

아직은 비바람 치고

아직은 어둡지만

그리고 아직은 전혀 현실의 벽이 굳건히 요동치지 않을 듯하던

그 비바람치는 밤바다의 한가운데서..

 

작지만

아주 큰

소음에 가려 들리지 않을 듯하지만

그럼에도 천둥소리 보다 더 크게...........

 

"내니 두려워 말라"

 

 

아......................

이게 믿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믿음의 묘미 아닌가?

 

망할 것 처럼 보이지만...

바보처럼 보이지만...

세상에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서 들리는 세미한 소리

"내니 두려워 말라"

 

그 한마디에

모든 어려움은 사라지고

폭풍우는 내 귀에서 멀리 들리고

갑자기

마음에는 고요가 찾아오며

알수없는 기쁨이

영혼 저 안쪽에서

슬그머니 피어올라...

 

눈에는 한줄기 따스한 액체가

또르르 굴러 내리며

그동안의 모든 고생은

한줄기 연기처럼  사라지어

 

대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천국의

그 기쁜 기쁨이..

우리의 전 영혼과 육신을 관통하며

 

입에선

커다란 탄식이 쏟아져 나오게 되는..

 

"할렐루야~~"

 

그리고 우리의 손은

누구의 지시도 없어도

하늘을 향해 번쩍 치켜져 올라가며..

 

"주님.. ~!!!!"

 

어떠한 약속이 없어도

어떠한 신비한 체험이 혹~~ 없어도

그 분의 세미한 음성

"내니 두려워 말라"

소리만 들리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은 그 비밀..

 

그게 '심령천국'의 비밀이다.

그게 천배 만배 커지는 것이

진짜 천국의 비밀이다.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이 아니 기쁜가?

 

배로 영접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누구라 할것도 없이 벌떡 일어나 조각배가 순간 '휘~청'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예수님이 오셨는데..

그렇게나 오랫동안 따라다녔던 예수님..

그분이 이 폭풍우 멈추리라는 사실은 누구도 예상을 할 능력이 없다.

그 증거는 .. 곧 나온다.

'기이히 여겼다.'는 제자들의 엉뚱한 반응이 성경에 나온다.

 

그러나..

 

그냥 막연히 안다.

예수님이 계시면 무엇인가..

어떤 일인가.. 벌어질 줄..

그것은 곧 우리 인생의 문제의 해결이고

어둠 속의 빛이 됨을 몸이 느낀다.

 

체득적으로...

 

 

아니나 다를까?

배는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가버나움에 갔지만..

그게 가려던 땅인가?

 

내 가려던 땅은?

난 내 삶의 방편을 가버나움 처럼 방향으로 삼았지만..

그게 진실로 내 깊은 곳에서 가려던 곳인가?

 

가려던 땅은 어디인가?

 

본문에서 답이 나오지 않은가?

예수님이 없이 노젓던 방향은 가버나움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시면 같은 방향이라도 '가려던 땅'이 된다.

 

 

 요며칠 많이 힘들었지만..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폭풍우 처럼

마귀들이 공격하려 하지만..

영혼 깊숙한 곳은 흔들림이 많이 없다.

아니 오히려 자주자주 편안하다.

 

그럴 때 ..

아주 가까운 갈멜산 기도원 -걸어서 20분이다.- 다녀오면..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쁠 때가 있다.

 

아니..

든든하다.

 

이게 .. .

아주 약간 만 주님의 은혜가 먹구름 사이에 잠시 비추는 햇빛처럼 만 비쳐도 이리 기쁜데..

내 인생 밤바다에 조각배 같은  현재의 상황일 지라도 ..

우리 주님이 함께 확실히 들어오시면..

그 얼마나 기쁠까?

 

아..

목적이 무엇이냐 물으면..

예전에는 머뭇거렷겠지만..

'음... 주님 나라요.  천국이 되어야 겠지요'...하고..

 

이제는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천국'입니다..하고 강하게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이게 확대되고 수천배 만배 커지면 그게 바로 천국이 아닐 것인가?

 

그렇다면..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하여

이 땅에서 취해야 할 삶의 방편은 너무나 뚜렷해진다.

 

이게..

 

단지 머리속의 합리적 판단을 벗어나..

뚜렷한 부담으로..

의미로 자리잡게 되면..

 

바로 그게..

삶의 목적이 된다.

 

세상에서 ..

가장 옳은..

 

 

이렇게 되면

이 땅의 삶은

아무리 힘들어도..

 

편안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남지 않은 거리를

삐걱거리면서라도 ..

아주 흥에겨워

노를 젓다보면..

 

우리 주님께서

자동적으로 인도하셔서..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는 현상이 곧 우리 앞에 오리라.

 

그때가 되면 난..

한줄기 눈물을 흘린 후

이리 할 것 같다.

 

 

" 아..

힘들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참.. 감사하다.

이제 곧 쉬리라."

 

 

 

 

기도

 

오늘은 주님..

폭풍우 치는 밤바다를 보이십니다.

 

인생길 험하고 곤고하여

주위에 보이던 육신의 의지처가

서서히 흐려지고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외롭고 힘들어 질 때

 

그 때 주님께서

불현듯 우리의 인생에

당신의 안타까운 눈빛과 더불어

나타나셔서

 

"애야.. 내니 두려워 마라'

할 때가 곧 오리라고 보여주십니다.

 

그때가 되면..

예전에

내 힘으로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며

온통 문제만 만들고

이웃을 힘들게 하였고

스스로의 영혼과 육신에

곤고와 피로만을 가중시키던

그 어리석은 삶에서 벗어나

 

우리 주님이 주시는

그 평안함과 기쁨으로

 

우리에게 예정된 가려던 땅에

자연스레이

도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

 

비록 현재의 삶이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것처럼 고민하게 만들고

 

앞으로도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고 해도

 

우리 주님.. 예수님.

당신을 믿고 의지만 하면..

당연히 예정되고 약속된 천국이

우리 앞에 곧 현실화 될 줄 믿습니다.

 

이 아침..

제 모든 것을 아시고 위로 해주시는

다정하시고 세심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감사와 존귀를 올립니다.

아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더 숭고한 것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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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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