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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말씀, 그리고 선택 (요4:39-54)

주하인 2006. 1. 14. 09:27

 

3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전도의 시작은 우리의 전하는 말로 , 그것도 체험적인 증거로 전할 때 시작이 된다.

예수님의 사마리아에서의 역사는 '여인의 증거하는 말'로서 시작이 된다.

 

오늘 한사람이라도 더 증거해야 하겠다.

 

 

 

41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이후는 주님이 알아서 하신다.

우리가 하는 것 같아도 전혀 우리랑 상관 없는 것이 '주님의 일'이다.

 

 

 

 

42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 아기도 선택할 힘이 있다. )

 

 시작은 내가 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는 주님이 하신단 증거를 이천년 전 사마리아 사람들이 '증인'이 되고 있다.

 

 참으로 많은 일들이 '두려움'으로 , '자존심'으로, '체면'으로 , '욕심'으로  흐려지고 있다.

 

전도를 하는데..

좋은 일을 하는데 가장 큰 장애가... '설마 될까?    쪽팔려...  '의 두려움아닌가?

이런 필요없는 감정적인 이유가 장애가 되고 있다.

 

 우리가 '말씀'대로 기계처럼 준행하면 될 것을 왜 이리 문제가 내 안에 있을까?

 

아니 비단, 우리 주님의 일 만이 그런가?

주님께서 원하신 '선한 쪽'의 모든 일을 행하는데 얼마나 많은 감정의 이유로 해서 장애가 있는가?

 

예를 들면 다툼 후의 용서가 주님이 좋아하심을 알면서도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담과 이브로 인하여 들어온 '원죄'의 파생적 결과가 아닌가?

주님은 이 왜곡된 영혼들을 세상에서 삶으로  정화시켜 깨끗한 자를 만들어 '천국백성'의 자격을 주는 것이 이 세상 삶의 목적이자 이유가 아닌가?

 

옛 구약시대 마치 '초등학생'처럼 그리도 철저히 제사드리고 예언하고 지시함에도 불구하고 그 죄악성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안타까이 여기신 주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단번에 기회를 주셔서 쉽게 허락하신 것이 '예수님'이시고....

 

 그럼에도 아직 내부적으로 완전 성화의 길에 들어서지 못함으로 지속적인 '연단'을 허락하시고.. .

 

이제..

우리 주님께서 다시 한번 깨우침의 기회를 허락하신다.

 

 

이런 허탈하고 허탄한 감정의 소산은 모두 '마귀'의 소산이다.

느낌에 집중하지 말라.

느낌은 모두 '내'가 한다는 부담감에서 시작이 된다.

 

우리 주님 예수와 성령께서 바로 곁에 계시는데도 아직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영적 세력'들의 방해로 인한 오해의 소지가 아닌가?

 

그래서...

이 아침 묵상에 .. .이리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 절대로 이 '말'이 아닙니다..ㅎㅎㅎ)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하시는 것이다.

 

쪽팔릴 이유가 무엇인가?

부끄럴 이유가 어디 있는가?

내가 하는 것인가?

 

 난 단지

 

" 예수님 믿으세요?

난 이리 예수님 믿었답니다.

그러니 너무 좋아요.

같이 천국 갑시다. "

 

 

그리고 나서 나타나는 현상은 주님께 맡기면 된다.

반항하고 믿지 않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다.

 

주님께서도 갈릴리에서는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셨다.

그들이 예수님을 사람으로 밖에 보지 않는 '선택'을 하셨기에 그렇다 .

 

이제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 땅에서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는 선택을 하면 주님이 다 알아서 챙겨주신다.

   

   평강 , 평화, 화평, 기쁨...   축복.. ...천국..........

 

 

 

 

50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믿고 가더니

 

 

주님 예수께서는 또 다른 예를 통하여 이런 감정, 즉 느낌과 '말씀' 사이의 선택의 결과를 명확히 보여 주고 계시다.

 

 그 사람은 전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단지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시는 사람이니 혹시라도 믿으면 나을지도 모른다는 지푸라기 잡는 물에 빠진 사람 꼴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안될지도 몰라.   우리 자식이 죽으면 어찌해.. 불안해...'라는 의혹을 가지지 않았다.

 

그냥...

말씀을 선택해버렸다.

말씀하시니 난 믿는다.

 

그러니..

결과는 주님이 책임지셨다.

 

 

 

 

53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강아지까지..ㅎ)

 

 

온 집이 다 믿는 정도의 쾌거다.

 

말은 쉽지만 실은 쉽지 않다.

문제는 이 느낌이란게 ,

특히 마귀 쪽 감정은 심하게 달라붙고 잠도 없이 끝없는 특징을 지녔다 .

 

죄책감.

분노.

우울

불안

의혹.....

 

 사람들의 육신의 삶이 편해지고 풍족해지니 영적인 부분이 많이 약해졌다.

틈만 나면 허한 영혼을 채우기 위해 육신의 만족과 쾌락을 위한 부분으로 달려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영혼은 자꾸만 갈급해진다.

수도 없이 많은 갈증과 갈등이 괴롭힌다.

 

도피의 방법으로 택한 술, 담배, 마약, 도박, 불륜, ... 의 중독적 방법은 일시적으로 마취는 시키지만 더 큰 영혼의 허함을 가져오고 이 증상은 '마음 '부분에 위에서 언급한 느낌 상의 증폭을 가져온다.

 

급기야는 '우울'..........

 

병원에 있다보면 오는 환자의 상당수가 심리적인 불안정이 보인다.

 

옛날보다 진단의 폭이 심신장애쪽으로 넓어진 바도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이유가 훨씬 많다.

 

 

이제 우리 주님은 간단하고 쉬운 처방의 예를 보이신다.

 

 

우선 필요한 것이 '수가성 여인의 증거성 입술'이다.

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누르는 느낌의 압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고 주님이 천명하고 계신다.

 

주님의 말씀이 알아서 알아서.. .하신다.

부담이 덜하지 않은가?

 

 

더구나...

저 신하의 예를 보라..

그는 '말씀'을 '선택'하는 그 마음 가짐 하나로 기적을 이루고 영원을 얻었다.

 

 

쉽다.

그러나. ..

어려운지는 안다.

 

 

하지만.. .

행동을 시작하면 다르다.

 

 

지금 이시간 내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 한마디만 전하자.

" 예수님 믿어라"

 

이 한마디만 하고 그냥 잊자.

주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다.

 

그리고 기적은 내 주위에서 기다리게 될 것이다.

 

 

 

 

 

기도

 

주님..

감사해요.

 

잊으려 하면 상기시켜 주는 당신의 원리

 

' 내가 하리라'

 

여기에 어떤 이유가 필요하겠나이까?

 

 

어리석게 달라붙는 내가 한다는 부담과 두려움을 억제 시키시고

 

나랑 상관없이 진행하시는 우리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길 원합니다.

 

시작이 두려우면 ...

그것 마져 주님이 북돋우시고

도와주소서.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해주소서.

 

이 아침.

 

이 묵상으로 인하여

한사람의 영혼이라도

 

구원이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행하시는 평범한 일들이었다.

- 조지 맥도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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