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도 흔들렸었다[살전2:17-3:13] 본문
늘 변화없는 일상이
나를 숨막히듯 눌러와
지루와 연민으로 힘겹게 하려 하여도
난
그래도 나로 인하여
곧오실 주님 앞에 서게 될 그들
주님 살아계신 증거로
내 안에 이루어진 변화들로 인하여
또다시
일어서게 되리라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다시한번 더
큰 기쁨과 소망으로 채우시며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그러니 일어나라 하시니
난
그리되리라
할렐루야
2장
19.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 이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에게도 '소망'과 '기쁨'이 필요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하심으로
거의 항상 충만하였을거라 알지만
그도 사람인 이상
이땅의 지루한 삶을 이어가는 데
어떠한 자극이나 표징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메마름'이나 답답함을 이겨나갈
어떤 표적 말이다.
그게
'곧 강림하실'(아.. 세월이 급하다 )
'우리 주예수 앞'의 '너희'다.
나.
나에겐
이땅을 지속하게하는
어떠한 '소망'이나 '기쁨'이 있을까?
표징 ...
3장
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보라.
위의 가정과 결론이 잘못이 아님을 ...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 라 한다 .
조금 더 의도를 강하게 나타내려는 문학적 수사라 볼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
'기쁨'과 '소망'..
그를 흔들리지 않게 하고
그의 삶의 목표가 사단의 공격으로 부터 흔들리지 않게
스스로를 붙들어맬
강력한 내적 전쟁의 외적 표현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제 말씀...
' 많은 싸움'에 이기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 말이다.
그것을 '참다 못하여'라며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강하고 거칠고 날것으로..말이다.
8.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그러므로' .. '이러므로' .. '그러므로'.. 한다.
그리고는
그 결론이
'이제는 살리라'다.
'주 안에 굳게 선즉'
주 안에 지금.. 나.. 우리는 굳게섰으니
그러하기에 당연히도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오늘 말씀의 주제는 분명하다.
그 분 ,사도 바울님도 흔들린다.
당연히 가지 많은 큰나무는 더 흔들린다.
더 센 태풍으로 더 크게 흔들릴 개연성이 많다.
그러나 분명코 서 있다 .
그 서 있기 위한 몸부림의 독백처럼 들린다.
편지로 써서 타인에게 보내지만
자신에 대한 '각오'와 '다짐'의 글이기도 하며
그러하기에 내면의 흔들림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이다가
마침내
다시한번 결론에 이른다.
"이제는 살리라"
그게 소망이고
그게 기쁨이다.
감사하다.
어제
미리 예언처럼 '많은 싸움'을 '하나님을 힘입어' 하여야 할 것을 말씀하신 후
내 잘못해온 행동 들이 하나하나 다 싸움처럼 느껴졌고
그 안에서 반은 참고 반은 못 참았다.
그리고는
퇴근시에 둘째와 저녁 약속을 하고 걸어퇴근하는 길 내내
심한 '허기'와 더불어 이제는 자주도 몰려오는 '저혈당증' 비슷한 증상들이 몰려와
겨우 겨우 많은 식사를 하고는 ^^;
거처로 돌아와 잠시 기도를 하고는 (초저녁인데 나도 모르게 그리 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ㅜ.ㅜ;)
기절하듯 쓰려져서 잠이 들어
아침 알람 울릴 때야 되서는 겨우 몸을 지탱하며 일어났다.
너무 피곤하다.
여러 일을 가정할 수 있겠지만
싸움이 피곤했던 것이 맞다.
내내 자면서도 반의식이 들려 할 때마다
'예수님' 하고 되뇌이다 선잠이 들고 깨고를 되풀이 했다.
그리 오래 잤으면서도 눈이 잘 안떠진다.
피곤하다.
결국... 난...'영적싸움'에서
날 놓기 싫어하는
오래된 존재들이 이제 모습을 드러내는 가 싶다.
그 깊은 곳의 존재들은
날... 아쉬워 하는 것 같다.
'낙심과 절망'으로
날 포장하려 자꾸 그러는 거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것봐.. 너는"..하는 것 같았다.
정말..
하지만 난 '십자가'를 묵상하고
어제 말씀 가운데 '많은 싸움'을
다 이기진 못했지만
'하나님을 힘입'으려는 시도 ^^;를 계속하니
그들도 당혹하는 것 같고
나도 힘든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기도잠시 후
빨~리 묵상의 말씀을 읽었다.
이때 말씀으로 날 붙들어 일으켜 세워야 할 것 같았다 .
'우리의 소망과 기쁨'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
바울님도 '소망과 가쁨'이 더 뚜렷해져야할
잠시의 흔들림에 있는 게 분명하였다.
우리..
믿는 자들
좁은 길을 선택한 소수들....모두는
하나님으로 인한
'소망과 기쁨'을 깊이 아는 자들이다 .
그러기에 살아가야할 목적도 이유도 뚜렷하다.
그러하지만 그 삶에도
혼돈과 흔들림이 없진 않다.
사도 바울님도 그러시지 않은가?
그게 홀로라면 혼란이고 괴로움 뿐이고 좌절이겠지만
이렇게 말씀으로 또 다가오셔서
"주하인아
나도 그러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소망과 기쁨의 이유가 뚜렷하지 않던가?
우리가 살아가야할 원동력 말이다.
'우리 주 예수 앞에 ' 그들...
그러므로
오늘도 다시 다 잡고 나가자.. " 하시는 것 같다 .
그렇다면
우리 주 예수 앞에 '그들'은
난 누군가?
나름 열심히
내 삶의 터전에서
내게 허락되어진 한계 안에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증거해왔다.
그들은 내 앞에 이들처럼 표징으로 나타나진 못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앞으로도 지금의 그들처럼 또 그들이 될 것인가?
그것도 맞다면 더 열심히 하나님을 일상에서 증거해야겟지만...
흔들림의 붙드는 표징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내 테두리 안의 그들은?
......
더 기도하고 살아야할 이유
그들로 인하여 내가 살 이유.
소망과 기쁨이 될 표징으로서의 그들이
그들이 되게 하기 위하여
더 기도해야 할 당위성에 대하여서 말씀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
내 면의 많은 싸움에서 승리한 증거들도
그들이 될 수 잇을 것이다 .
많은 간증거리들.
어제의 반승리는 이전의 전혀 실패와 비교하여
두배는 승리함이다.
감사하다.
한편으로...
오늘 더 힘내어 살
소망과 기쁨이 되기로 하리라...
감사합니다.
주여.
큰 이벤트는 없었지만
나름 많은 싸움에서
전
지기도
또,반은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그게 많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곯아 떨어져 새벽에 겨우 일어났습니다.
에너지가 많이 빠지는 것 맞는 가 봅니다.
주여..
그러함에도 다시 일어납니다.
오직 '말씀'을 통하여
저를 읽어주시고
제게 또 다른 '소망과 기쁨'의 이유로
내가 살리라..하는 선언으로
저를 또 하루 붙들고 살게 하십니다.
힘을 주십니다.
주여.
제게 '사도 바울님의 그들'이 뚜렷이 나타나게 하소서.
주님 오실 때
예수 앞의 그들 말입니다.
힘을 주소서.
지혜를 주소서.
은혜를 허락하시사
나의 기쁨이
우리의 소망이 커지는 하루 되게 하소서.
내 주여
기대하나이다.
거룩하고 귀하시며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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