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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타리 천국 꽃(눅14:15-24) 본문

신약 QT

산울타리 천국 꽃(눅14:15-24)

주하인 2012. 3. 6. 11:04

(눅14:15-24)

주님

산 울타리에

주님의 부르심 임하니

이토록 아름답습니다

 

주님

어지러운

제 이름 부르시니

 제 영혼

한폭의 그림이 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내 모든 의미이신

내 하나님

내 주시여

 

 
15.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당연하다.

천국의 떡.

영생, 거기에다 영생의 축복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그러나, 천국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인가?

 

18.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다 '일치하게' 사양한다.

 

그런데 그 사양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 아무래도'

' 청컨데'

' 그러므로'

 

모두 정말 절박한 일이 맞다.

저들의 말을 들으니 마치 '내 사정' 같다.

누가 잔치 초빙한다고

밭을 사는 중요한 일을 하는데 가며

재산의 전부인 '소' 사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가겠으며

장가들어야 하는데 또 그것을 포기하고 얼른 가겠는가?

하나도 중요치 않은 게 없다.

 이 '삶'을 유지하기 위한 너무나도 중요한......

그래서 정중하게 들.. 사양한다.

 

문제는 정중한데 있다.

그들은 초청 받음이 중요한 것은 아는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는 것이다.

 

 이 땅의 삶에 너무 빠져

 '천국'의 초청 잔치를 사양하는 데 문제가 있지만.......

21.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3.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초청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아는 자들이었고

이 들은 모르는 자들 - 주님이 모르시지는 않겠지만 관심 덜한 존재-이었다.

'거리' 와 '골목'에서 떠돌던 자들이다.

'길'에 노숙하던 자들 같은 사람들이다.

'산울타리' 외진 곳에 살던 자들이다.

 

마치... 현대에서 조금 후진국의 ' 노숙자'나 ' 사회 소외 계층 ' 같이

문명과 관심 밖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자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그들이 '천국' 잔치에 초청을 받았다.

 선민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들 만의 세상에서

현재의 삶 속에만 열심하느라

본질이신 하나님을 잊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탓에

'이방'이 구원을 받은 것을 상징하는 사건이시긴 하지만

이 말씀을 읽으면서

몇 가지 나에게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첫째는 '나는 정말 절박하고 소중하게 매일 매일을 아주 소중히 산다고 하고 있지만

 그 삶이 진정 하나님을 잊은 삶은 아니었는가" 하는 것이다.

 현대에 만연하고 있는 종교 다원 주의 뿐 아니라

 교회에는 나가지만 하나님 따로 '삶' 따로 사는 '이원론 적' 삶이

 진정 '위험'한 불신의 것이 맞다는 것이며,

 나의 삶의 태도에서는 '하나님'과 ' 내문제'와 양립시키는 것은 없는지 하는 것이다.

 

둘째, 천국, 하나님 이란 단어나 의미들이

 나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던 가 하는 것이다.

 위의 물음에 이어지는 것이지만

 어쩌면 난 반신 반의 하고 있을 줄 모른다.

 실은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껏 살아보니 52년이란 세월이

 진정으로 영원에 비하며 한줌 '순식간', 눈깜박일 시간의 허무한 것임에도

 아직도 하나님의 곁,  천국에서

영생의 떡

생명을 누리며 산다는 것의 위대하고 절박한 것을

왜 인정하고 있지 못하냐 하는 것이다.

 

셋째,

'산울타리' 가 주는 묘한 가슴 떨림이다.

현실은 마치 필리핀 쓰레기 더미 속의 빈민가 같은 의미이고

어쩌면 신학공부는 안했지만 '문둥병 환자' 들이 모여살듯한

산기슭가의 아주 처참한 환경의 동네일지도 모르지만

그 단어가 주는

산과 울타리의 이미지는

마치 시와 음악과 예술.....등을 사모는 하지만

배운 바 없고

현실에서 그냥 적응해서 살기 위해

허덕허덕 거리며 여기까지 살아온

내 스스로의 이미지가 거기에 투영되어 공감되는 것인 듯한 느낌이다.

 가진 것 별로 없고

그러면서 고향의 울타리가 주는 허허로운 그리움.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던 그런 '외로움'이 느껴지는........

 

넷째,  의미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너무나도 유명한 '詩'가 떠오른다.

그가 다가와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제야 '의미'가 되었다는 이야기.......

 하나님께서 의미를 두고 수천년을 다독이고 이끌어오던

그들, 하나님의 사랑에 배부른 '이스라엘 ' 백성들은

자신들이 '선민'임을 인정하고 살면서

교만해지고 더불어 게을러 졌다.

하나님의 관심으로 인한 '의미'인 '선민의식'이

하나님을 귀찮아 하고있다.

하나님 보다 썩어질 소유의 흔들림을 두려워 하고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내 모습은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그들에서

주님은 시선을 '산 울타리'까지 돌리신다.

아무도 찾지 않던 길, 골목을 지나

'산울타리'까지 돌리신다.

그 관심과 더불어 그 곳에 거하는 거민들의 '이름'을 불러 주신다.

그들을 잔치에 초청하신다.

그제서야 그들은 '크리스쳔'이라는 이름을 지니게 된다.

드디어 그 이름 불러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천국의 꽃'이 되었다.

 

 나.

요새 흔들린다.

안다.

내 어려움의 이유도,

현실도..........

그러나 알면서도 흔들릴 때는 어지럽다.

물~론, 이전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상황은 어쩌면 그렇지 않으면서도 덜 흔들린다.

그럴 때 , 난

내가 산울타리에 거하는 자 같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내가 '천국' 백성임은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음에도

가끔 가끔

이 인생이 주는 연단과

내 영혼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인한 흔들림에 의한

내 모습이 '산 울타리 ' 같다는 이야기다.

 

그런 나에게

오늘 주님은 다시 한번 확인시키시는 듯하다.

'주하인아.

난 오늘도 네게 다가온다.

말씀으로 다가온다.

성령으로 다가온다.

넌 천국의 떡을 먹을 자격이 있는 자이고

그런 잔치에 오늘 다시 초청한다.

그러니 힘을 내라.

네가 누구인지

네 외로움과 허전함이 사실인지 돌아보라.

네 분주함을 과감히 누르고

하늘 한번 다시보라..........' 시는 듯 하다.

감사하다.

 

오늘 '여성 유방센터' 에 '회식'을 마련했다.

새로우신 의사들이 오셔 보강되시고

수술이 늘어나며 전담하던 '수술방' 직원들을 초빙하여

잔치..^^* 를 벌인다.

부디 이 잔치를 통하여도

주님의 영광을 조금이라도 드러낼 수 있다면 좋겠다.

 

 

기도

 

주님

놀라우신 내 주님

제 삶.

아시지요?

산울타리 같은 느낌.

거기에 의미를 불어 넣어주시고

매일 매일 그리하시는 내 주님께

영광과 존귀와 찬미를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달란트만으로 찬양을 녹화해서 올리고는 있습니다.

주님.

그리해서 인지 마음은 뜨겁습니다.

주여.

의미를 찾아가는 제 인생을 살다가

지치지 않도록 하소서.

무기력하지 않게 하시고

오늘처럼

영생의 떡을

주님 곁 천국에서

먹을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살게 하소서.

그것을 누구보다,

아니 다른 어떤 가치보다

더욱 현실감있고 뚜렷하게 자부하게 하소서.

그리 되게

성령으로 도우소서.

지옥의 백성에서 구하여 내시고

이리 매일 같이 말씀으로 불러

천국의 시민임을 깨닫게 하시고

의미로 세워주시는

내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올 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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