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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민20:1-13)

주하인 2011. 5. 10. 12:12

제 20 장 ( Chapter 20, Numbers )

 


1.  정월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서 백성이 가데스에 거하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 장사하니라 
 미리암이 죽었다.

가까운 사람이 죽는 다는 것.

굉장한 스트레스인데..


 
2.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회중.

하나님의 기적을 아무리 체험해도

그들 입에 들어갈 '물'이 없으니

지도자를 공박한다.

그들은 지도자를 공박하지만 그들의 힘없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사람을 공박하되 '하나님'을 원망함이 아니겠던가?
  

 미리암을 잃은 모세의 입장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참으로 야속하고 미운 자, 회중이다.

역겨울 것 같다.

나 같으면....

                                                                                                                       
  
 
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 여호와의 총회'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잘 드러내지만

그들의 어휘는 참 드세다.


  
6.  모세와 아론이 총회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모세와 아론은 '그냥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었다'

그들에게 대꾸도 하지 않았다.

늘 느끼지만 모세는 사람이 뭐라하면 우선 하나님께 아뢰고 하소연한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아론'이 함께 했다는 사실이다.

'형'이다.

인생의 동반자.

더구나, 신앙의 동반자는 참으로 중요하다.

힘이 된다.

 

 그러면서 생각되어지는 부분들이 있다.

 가면서 둘은 무슨 대화를 했을까?

회중을 질타했을까?

그들을 미워하는 소리를 했을까?

아니면, 거룩한 양...^^;.. 신앙적 소리만 했을까?

형인데..

상상해볼 부분이다.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같이 가 기도 했지만 아론 보다는 모세님에게 만 '일러가라사대' 하셨다.

옆에 있는 아론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의 가끔의 돌발적 '죄'는

이러한 부분에 있지는 않을까?

 산다는거...

생각하여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자주 자주 느낀다.

 '하나님의 뜻'

그 분은 분명코 전지한 이유로 모세에게만 이야기 하셨을 것이다.

가끔은 아론에게도 같이 하시고..

그러하면서도 '소외' 받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 ..

'훌륭한 동역자'의 깊은 상처도 배려는 해야 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10.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너무도 유명한 이 구절.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하나님이 진정으로 경계하시는 부분.

하나님의 영광을 앞서는 '자아'의 가림.

모세는

끝없는 광야의 리더로서의 외로움에

미리암이 죽는 정서적 충격도 모자라

순간 표변하는 회중의 그 어이없는 지독한 '언사'들을 동반한 반항.... 등으로

아무리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만

그의 인간적인 본성적 결점은 그로 하여금 '자아'가 드러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생각지도 못한' 소리를 입으로 뱉어내는 것이다.

아마 속으로..

'이 자식들........' 이란 미움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까?

 

 

아침에 일어나니 여전히 눅눅하다.

비가 온다.

당직을 바꿔달라는 부탁으로 인하여

목요일 당직 대신 금일 당직을 서게 되어 있다.

아침 아홉시 부터 외래 진료가 있기에

잠시의 묵상을 마치고 여성병원으로 향했다.

묵상 구절은 '모세의 인생 여정'을 느끼게 하여 주신다.

 

 리더로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인도하심을 받지만

그에게도 ' 누나 미리암'의 죽음이

노년의 힘없는 자의 외로움을 자극 하듯 불현듯 다가오고

거기에 마음을 추스릴 길도 없이 어이없는 '회중',

그 미련한 군중의 공격이

그 마음을 갈기 갈기 찢어 놓으며 다가온다.

그래도 그는 이제 그정도에 자신의 본분을 잊을 사람이 아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같이 짊어질 영적인 동역자도 있다.

같이 늘 그렇듯,

옳은 선택을 한다.

그들을 혼내고 대꾸하고 물리치고 원망하기 보다는

여호와의 성전에 또 나아와 '기도'를 한다.

그리고는 말씀을 받는다.

같이 기도 했지만 혼자만 편애 받는,

- 마치 이럴 때 하나님은 작은 배려는 안하시는 분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그런 '쿨'한 명령을 하시며 - 그런 응답을 받고

지친 마음을 끌고는 다시

인생의 과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정체,

광야의 리더자로서 올바른 지도를 하려

회중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는 그 뛰어난 영성의 리더 모세님이

혼란한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고

그 분의 뜻을 잘 아는 자로서는

담지 못할 언행을 펼쳐냈다.

아마도 순간은 '쾌감'을 느꼈을 지 모른다.

'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어찌 그들인가?

하나님이 아니시던가?

...

이 어이없는 실착.

 

묵상을 보면서 어찌 이렇게 나의 삶의 굴곡과 비슷한가 생각했다.

누구는 안그럴 까?

그러면 굳이 흔들릴 세상의 일은 별로 없을 듯 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길을 나섰다.

 

 출근하여 진료실에 들어오니

밤새 당직을 서고 퇴근 해야 하는 'KBS' 선생이 눈이 피곤한 듯

내리 깔린채 아직 진료실에 앉아 있다.

열심히 다니던 산모가 아직 분만을 하지 않아 대기 하고 있다신다.

비슷한 연배로 이름 마저 KBC인 나의 이름과

마지막 한자 만 다르다 하여 '형님'이란 친근한 단어로

이 주모에게 다가오는 선생이시다.

한참을 이야기 하다 보니

나름 금전적으로 성공한 이 중년의 선생님도

인생 후반에 대하여 느끼는 갈증은 비슷한 마음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누가 아닐 것인가?

인생.

산다는 것.

젊을 때는 젊어서 참으로 열심히 살려 노력하지만

나이 들어 문득 자신을 돌아보면 흔들릴 때 많게 된다.

진심으로 '무엇 때문에 살던가.. ' 고뇌할 때가 많아 진다.

 

 모세님.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께 저토록 열심히 보호 받으며 살아오고

심지어는 너무나 친하고 깊은 영적 동지와 동행한다 해도

그 삶이 굴곡 투성이고

정말 하나님이 아니면 머리속 혈관이 터져 죽을

가슴 아픔, 상실감, 분노, 어이없음, .. 은

지속적으로 되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같이 동행하는 자들과도

실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이해와 공감은 불가능할 수 있음도 알게 된다.

아론을 믿고 의지해도

아론의 가슴 한 가운데 모락모락 피어나는 속상함과

그로 인한

인간 본연의 외로움은 그 어찌 해결할까?

 

 KBS 선생님도 아침에 그 소리다.

친구, 동료. 가까운 식구들..........모두 먼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아는 장로님이 고백하셨다.

LG의 높은 자리에 계시다 은퇴하시니

세 부류로 딱 나누어지더라...

' 모르는 체 하는 사람'

' 그저 인사 정도로 스치는 사람'

' 진정으로 아파 해주는 사람'

후자는 정말 적음이 안타까웠다고 하셨다.

참 인간성 좋으신 분이신데..

 

그렇다.

모세님의 관점에서 대입헤 바라본 '인생'이다.

산다는 것.

어쩌면 다 그렇다.

그런 다 그러함이 무서울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무서움이 '하나님 ' 잘 모르는 현 세대의 허약한 사람들에게

'자살'이 유행처럼 벌어지는 본질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러함에도 배울 것이 있다.

모세님의 대처다.

그 분의 하나님 앞에 고착됨이다.

비록 영이신 주님이시니

회중 속에 삼켜져 그럭저럭 세상의 재미를 누리며

우정을 눈 앞에서 실체 처럼 느끼며

아기자기 살지는 못하지만

그런 그들 보다 훨씬 '누림'이 크시고

흔들리심이 덜하심이시다.

그렇다고 모세님이 세상을 포기하고 살지 않지 않던가?

 

세상 속에서 영성

'삶속의 영성'

 

 그리고 그 안에서의 '동역자'

 

KBS선생님은 처음 입사할 때 별로 신앙심이 없었다.

그러나 입을 뗄때마다 '하나님' 이야기를 먼저하고

그런 자들의 '평안함'을 노래한다.

그 중에 ' 몇 몇 분과 나'까지 포함되어 있음이 감사하다.

그분의 입에서 나오시는 말씀이 조금은 과장되어 있을 지 몰라도

난.. 최소한 내가 느끼는 하나님 안에서의 이 놀라운 평강이

저들에게도 조금은 증거로서 영향을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감사함으로 솔솔 올라왔다.

그러시면서 자신도 그 평안을 누리고 싶다 하신다.

그렇다.

그게 정답이다.

모세님을 보며 난 조금 더 부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분의 그 삶속,

그 모진 광야 같은 세상에서

주님을 누리는 그 삶의 행태를 흉내내고 싶다.

 아프면 아픔을 인정하고

어이없는 고난도 주님 안에서 인정하고

그것을 주님 앞에 더 다가가는 기회로 인정하고

그래서....

 가끔은 '므리바의 기적'도 나누어 받았으면 좋겠다.

^^*

 

 

주님.

산다는 것.

너무 어렵습니다.

예기치 못한 이별과

혹독한 질타,

반항...

외로움..

그래도 주님을 보면

다시 힘이 나고

주님의 뜻을 마음에 담으면

우주가 한가득 제 영혼에 들어옴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그 분 모세님을 묵상하여

이 혼란의 인생을 잘 마무리 하고

나와 내 아론 같은 아내와

영적 동료들과

나에게 맡겨진 내 살붙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고

정말 주님을 깊이 인정하고 살아가는 자의 삶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삶인가를

그들에게 깊이 체험되어

하나님을 더 깊이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그런 계기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오늘 저... 당직입니다.

사고 나지 않게 하소서.

너무 힘들지 않게 하시되

너무 한가하지도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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