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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 덕분에[사35:1-1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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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 덕분에[사35:1-10]

주하인 2020. 8. 26. 10:11

 


1.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광야

사막

메마른 땅

 

 인생의 광야.

중국 누구가 고해의 바다라 표현할 만큼

누구에게나 인생은

고난과 절망 덩어리들....의 과정이다.

돌아보면 살아온 시간은

좋은 날은 정말 잠깐이고

어려움과 힘든 날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그 광야의 따가운 햇빛과

사막의 메마름에 만 매몰되면

인생은 '우울'한게 숙명일 수 밖에 없는 과정이다.

보라.

 무슨

사는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단 말이던가?

다 똑같지 않은가?

나고 크고 경쟁하고 힘들어 하고

그러다가 연애 결혼 자식 약간의 성공 .. 몇번하고

그냥 친구, 사람들과의 재미.....몇번 이외

사는 것을 즐겁게 하는 것보다

매사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하는 시간이

훨씬 많은 것 같다 .

그러다가 또 똑같이 '죽음'으로 사라져가고.....

 그거..

수천년을 돌아보아도

인생은 다 똑같다.

살고 죽고 고민하다가 조금 웃고.. 그러다가 죽고

또.. 또.. 또......

 

이 의미없는 삶에

별 재미없는 이 고난의 매일에

코로나로 ,

환경으로

AI,로봇과의 일자리 경제으로

국제적으로........

이젠

삶은 더욱 척박하여지며 힘들어져 가며

그나마의 관계의 기쁨과 재미마져 차단되어가

많은 절망들이 예상이 되어진다.

힘듦에 더욱 커다랗게 눌려오는 관계의 단절에 의한

 '외로움' .. 말이다.

인간..人間.. 사람 사이의 존재들에게

외로움은 더 절망으로 무게를 더하게 된다.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아..

광야

메마른 땅의 표현이

더욱 강하게 오는 아침이다.

그 표현.

'막막함' '메마름'

벗어나기 힘든 지루하고 끝없는 힘듦에 대하여

오늘 

표현해 주신다.

 

 나.

한동안...

'말씀 자체'만 가지고

정말 기쁘고 평안한 시간들을

꽤 오래

보냈었다.

그 말은

말씀이 살아계셔서

내 아버지가 , 내 육신의 친부가 아주 건강하고 부드럽고 자애롭게

나를 달래고 인도하시듯(^^; , 아.. 아버지..내 어릴적 좀 그래 주시지..ㅎ.. )

그런 느낌으로 수개월

말씀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평안 (상황은 상관없다.. 삶은 줄기차게 어렵고 지루하고.. 그랬지만.. ㅎ)을 누리며 살다가

최근에 다시

조금 (아.. 이전 보다는 많이 덜하지만.. )

막막하고 가끔은 이전의 흔들림들이 힘들게 하려 해온다.

그것.

허락되어진 인생 중 고난의 사이클임을 알고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은

인생의 광야의 여정 (출애굽후 광야 생활 처럼.)임을 알지만

그러할 때의 막막함은

마치

사막의 메마름 같고

광야의 어이없는 절망스러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

 

그 약한 흔들림.

그래도 주님은 아시고

날 읽어주시고 계시다 .

그 익숙한 막막함이 얼마나 막막하며 ,

끝이 없을 것 같은 절망이 얼마나 절망일지.. 말이다.

 감사하다.

그것만 가지고도 마음이 풀리는 것 같다 .

 

 그런데 그 분께서 그러신다.

마른 땅이 기뻐하고

사막에 백합화가 필 것이라고..

 

 그거.

불가능한 것 아닌가?

사막에 어찌..

그런데 믿어진다.

믿어지며

마음이 풀리려한다.

그래서 막막함이 사라지고

절망이 들려던 마음 한구석이 따스해짐은

말씀이 믿어짐 아니던가?

절망과 막막.. .

예수님 믿는 자로서 정말 죄송한 마음의 상태지만 (아.. . 믿음의 부족)

그거..

아직도 변치 않아 남아 있는

내 부족한 습관과 문제점일 뿐

더 성화되고 더 믿어지고 더 나아지면

나이질 것 아니던가?

 

 주님이 말씀하시니

내 사막같고 광야 같던 마음에

꽃이피고 기뻐지려 하는게

그것을 느끼는게

믿음의 발전의 증거 아닐까..

그게.. 깨달아지니 감사하다 .

 

 

2.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이어지는 말씀에

'무성하게 꽃이 핀다'시고

'기쁜 노래가 넘치며 즐겁게 되고'

이 늙어가는 얼굴에 '아름다움'을 말씀하신다.

 

 현실이라는 합리의 판단아래는

불가능하고 비아냥 대고플지 모를

단순한 묘사와 형용사로 느껴질지 모르며

내 홀로의

그 절박하고 막막하고 답답한 심사에

저런 단어들은 어이없음으로 느껴질 것이 당연함에도

조금의 기대가 더 커짐은

'하나님의 아름다움' 탓(아니다.   덕.. .그러나 이 탓이란 표현을 반어적 표현으로 쓰길 잘한다. .난..ㅎ)이다

그것도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 말이다.

 

 그렇다 .

절망과 막막함과 답답함과 어두움은

내 홀로만의 노력의 한계이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그 절망은 소망의 다른 표현이며

막막함은 잠시 허락되어진 연단의 도구이고

답답함은 곧 있을 더 큰 기쁨의 과정일 뿐인 것이다.

 

 하나님이 아름다우시니

나도 아름다움을 곧 보게 되리라.

그게

믿음의 결과의 표현이다.

할렐루야.

 


4.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그러니

이제는

답답함을 겁내지 않고

오히려 막막함에도 굳세게 될 것이다.

어이없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곧 오셔서

내 대신 다 해결하시고 갚아주실

하나님의 온전하신 구원..

그리고 그 결과 로 이루어지는

온전한 '성화'의 결국을

난 보게 되리라.

 

 

감사하다.

 

 

주님.

고백했지만

외로울 것이 두려웠고

답답한 것이 무서웠으며

늘 막막했었음이 되풀이 됨으로 인하여

제 마음은 또

사막같이 메마르려 했고

그토록 좋아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포기가 무서웠습니다.

주여.

그러한 절망되는 광야의 마음,

있으면 안되지만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사막같은 막막함을

주께서 읽어 주십니다.

그리고는

급히 깨우치십니다.

 

곧 광야에 기쁨이 넘치고

사막에 꽃이 필것이라고요.,

그게.. 믿어지고

마음이 평화로와 지며

따라서 자판을 움직이는 제 손가락이 춤을 추는것을 느낌으로

그 말씀이 사실임이 믿어집니다.

그 믿어짐이 사랑스럽습니다.

제 마음의 회복이 자연스럽습니다.

 

 주여.

아름다우신 내 하나님이시여.

홀로 하나이신 내 하나님의

그 아름다우신 인도하심으로

제가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것이 믿어지니

감사합니다.

 

이 막막하려던 하루가

또 꽃으로 피어나는 하루가 되려 합니다.

내 주여.

홀로 하나니이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찬양드리고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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