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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과 바울(행9:1-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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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과 바울(행9:1-19)

주하인 2011. 9. 4. 16:17

제 9 장 ( Chapter 9, Acts )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 제사장에게 가서 
  한사람인 사울이

위협과 살기가 그 육신 안에 그득했었는데
  
 
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하늘의 빛이 비취고 나니

  
 
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이전에 보던 것을 보지 못하고

먹던 것을 먹지 못한다.

그의 내부에 '성령의 빛' 이 비취이니

그가 곤란을 겪는다.

하나님으로 비록 가장은 되었지만

왜곡된 기세등등한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의 가치가 

그 작은 육신 안에서 충돌한다.

 그는 육신의 눈으로 보지도 못하지만

마음에서도 갈등이 일어나 이전에 본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보여지지 않았어야 했던 것임을 알고는 갈등한다.

갈등이 얼마나 심한지

식음을 전폐까지..........

 

 한사람인 사울 안에

바울의 가치가 들어왔다.

주님으로 인하여.. 
  
  
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문제는 '그',

아직 사울의 정체성으로 사는 그도

'기도'한다.

 

기도하는 자가 다 착한 자이던가?

착하지 않은 자는 기도할 가치도 없던가?

물음을 물을 가치도 없을 이것이

어쩌면 나 스스로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예수님 믿는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아직 내 속에 기세 등등한 가치가 많이 남아 있다.

아직도 '욱' 하는.........

그리고 그 밑에 스치는 소리들...

사울의 그 살기등등한 모습을 보면서

내 속에도 그런 기세가 남아 있는 데도

난 잘 믿는 자 인양 해왔을 수 도 있고

가끔은 좌절할 때 그런 자처가 스스로 역겨울 때도 있었단 말이다.

 이제 사울의 모습을 본다.

그 역시 아주 열심히 하나님을 믿는 자로 자처하며

사람을 죽이러 다니는 것 마져 신앙적인 일로 착각하던 자다.

그 역시.........그러면서도 '기도'하는 자다.

기도하는 자가 죄 크게 지으면 그거

아주 혐오스러울 일처럼 느껴지는데

하나님은 그래도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로 말씀하시는 거 처럼

아침에 나에게 느껴져 오는 것이다.

 

   그렇다.

나.. 조금 흔들렸던 것이다.

그것을 주님은 아시고 저리 희망을 주시는 것이다.

사울..

아직 바울님이 아니신 사울도

기도를 놓치지 않으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그의 눈에 씌여졌던 악한 살기가 나가고

그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의 조건을 가지게 된다.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그렇다.

흔들리고 현재 자신이 그리 옳아 보이지 않아도

기도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때가 되면 오래 주님을 붙들고 기도하는 자들에게 임하신다.

그리고 그들을 쓰신다.

과정에서 겪는 '고통'이나 고난은

세상의 불신자들이 받는 희망없는 절망의 나락과는 다르다.

그것은 희망이다.

이전의 가치의 껍질이 벗겨지고

새살이 살아나오는 회복의 쑤심이다.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주안에서의 회복은

강건한 회복이다.

온전한 회복이다.

 

 

주일.

몇가지 더 준비할 일이 남아

늦은 시간까지 인터넷에 매달리다가

예배시간 가까이 되어서 늦지 않게는 일어났지만

피곤하다.

피곤하니 짜증이 일어나려 한다.

주님의 일로서 매달리는 것은 피곤 조차도 상쾌하지만

같은 시간이라도 세상 일은 불쾌한 피곤을 초래한다.

 이럴 때는 내가 '두 사람' 같다. ㅜ.ㅜ;;

강하지는 않지만..

누가 톡하고 자극하면 콱.. 하고 튈 것만 같은..

아시나...?

주님께서?

다행이도 아직 과정 중에 있는 나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의 힘을 주시려 아침 부터 이런 말씀 허락하신다.

사실이 아니던가?

세상의 세력 속에서 세상을 살면서

연단의 과정을 밟고

정금같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얻어

사단의 유혹과 매일 싸워야 하지 않던가?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사울이 바울님이 되기 위하여

살기 등등한 기세와 성령의 충만함과 싸워야 하지 않던가?

그래서 내 의지로 주님의 도우심을 선택하면

그 자유의지를 기뻐하시며

단번에 눈의 거풀을 벗겨 주시는 것이시다.

이제 남은 것이 그것이다.

기도하고 '바울'이 수년간을 광야에서 내적 싸움을 벌였던 것처럼

주님께서 허락하신 이 '사울과 바울의 전투'를 이겨내야 한다.

 

아침과 오후 예배 .

모두 피곤으로 멍하려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비록 온전히는 아니지만 승리를 이루고 나왔다.

감사하다.

 

 

주님

귀하신 내 주님이시여

비록 바울님과 비교할 승리와 스케일은 아니어도

주님의 말씀을 제 인생에 초빙해

영적 전투에서 승리의 기조를 유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주님.

오늘은 거룩한 주일입니다. 

지난 여름 그 지루한 장마비 이후의 계속적인 맑은 하늘

오늘은 더욱 빛났습니다.

다행이도 흉작예상을 넘어 풍년의 기대까지 한다는

그런 맑은 하늘입니다.

주님의 기뻐하심이 이 주일에 더욱 높이 드러나는 것 같아 기쁩니다.

죄송한 피곤함 가운데서도

주님의 말씀 가운데 불완전하나마 승리를 이루어내고 있사오니

오늘 하루 더욱 지키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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