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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가까운 곳 에브라임(요11:45-5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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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가까운 곳 에브라임(요11:45-57)

주하인 2006. 2. 10. 09:33

 

 

48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주님은 한번도 민족을 빼앗아갈 언행을 행하신 적이 없다.

 

주님은 하늘의 것을 계속 말씀해오셨지만..

인간들은 끝까지 땅의 것을 얘기한다.

( 개 밥... 사람이 먹고 싶은가? ..........   이 땅의 것.. 개밥그릇 )

 

 

 나는 어떤가?

주님의 그 고귀한 십자가 보혈 사건에도 불구하고

땅의 것을 왜 놓지 못하고 있는가?

 

 땅의 것에 대한 집착은 눈에 보이고 세상 물질계에서 살아가며 그 물질을 통하여 연단을 허락하신 주님의 뜻을 비추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땅의 것에 대한 집착은 한계가 있다.

주님이 허락하신 이상은 '오해'의 단초가 된다.

 

 "(히13: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

 

 결국은 주님 예수님에 대하여 물려 덤빌 것이다.

 

강아지가 밥먹다가 손대는 주인 물러 뎀비는 꼴이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잔인한 금자씨 !! )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이것이 자신에게 향할 때는 세상에 다시 없을 영웅이다.

주님의 가장 사랑하실 자녀의 모습이다.

 

그런데..

남을 향하여 저런 말을 하게 될 때는 가장 무서운 악인이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 골고다 언덕 올라가기 전날 밤..

'마음은 있으나 육신이 원이로다'라 하신 말씀..

남에게 향하면 귀한 자가 되는 첩경이나...

자신에게 향하면 나약과 변명이 되는 것과 너무나도 같은 이치다 .

 

 모든 손가락질을 자신에게로 향하고 그럼을 기쁨으로 알아야 한다.

 

 나는 그런 적이 없는가?

 

 

 

 

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주님 뜻대로 하소서...)

 

 

 기득권 층의 최고 수뇌에서 저리 무서운 심성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가?

 

 사랑이 없는 자가 가진 권력은 너무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심지어 하늘 날다가 갑자기 날개에 근육경련이 일어나서 '툭~'하고 떨어져 내리는 참새 한마리의 일까지도 주님의 섭리하에 있다고 하셨다.

 

오늘 묵상 중에도 틀림없이 나온다.

"스스로 함이 아니요"

 

 속으로 '휴~'하고 있다.

 

가끔..

신앙생활 하면서

'오늘 네가 이리 사는 것은 다 네 잘못 탓야.

 평시에 인간관계도 부족하고....

 공부도 제대로 안하고.. ' 

하는 의혹이 아주 잠시 휙~스칠 때가 있었었다..

아주 과거에..ㅎㅎㅎ

 

그러면.. 속이 좀 상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엉터리 같은 일 조차

더더구나 주님을 대적하는 이러한 일조차

스스로 하는 것 같지만

스스로 하지 못한다고 하신다.

 

 인간이 아무리 잘나도..

아무리 혼자 자수성가 한 것같아도

그 모든 성사는 우리 주님의 계획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인식은

그 분이 모두 선한 방식대로 이룰 것이라는 믿음과

쓸데 없이 하였던 좌절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해 두팔 벌리고 이리 외칠 일이다.

 

 '주님..

오늘

나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이니이까?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제가

이것을 하려 하는데

주님

허락하시렵니까?'

 

 

 

 

 

54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유하시니라

( 빈들 가까운 곳 )

 

 빈들이란 표현이 참 절묘하다.

영어로는 '사막'이다.

 

 삭막한 곳.

소출도 부족하고

황량한 곳.

 

 주님은 주님 뜻대로 빈들 가까운 '에브라임'에 가 계셨다.

제자들과 ..

 

분명코 인간의 눈으로 볼때는 '도피'이고 '파멸'이고 '끝장'이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워도 완전한 사막은 아니다.

사막 가까운 곳이다.

 

 힘들어도 돌아보면 우리의 고통 중에도 감당할 어떤 꺼리가 있다 .

 

사막 가까이를 허락하신 주님의 이유가 이제 서서히 분명해 진다.

 

 

분명히 주님의 뜻이라고 방금 선언하셨다.

 

 

 지금의 '현상'이 힘들고 고통스럽고 까만 것 같아도 주님의 뜻 가운데 있고...사막의 고통은 느껴져도 실은 사막 가까이의 에브라임 일 뿐이고 아직은 의지할 동료 내지 어떤 것이 있는 감당할 만한 시험이라는 사실이다.

 

문제는 고통이 있으면 그 고통을 너무 두려워 하고 좌절하는 게 고통 자체 보다 더 무서운 고통이다.

 

 주님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 고통은 시원한 '해산'의 고통으로 바뀌는 것이다.

 

알면서...

따르지 못하는 주하인을 용서하소서 주님.. ㅎㅎ

 

 

 

기도

 

주님 예수님

 

여러 모습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시는 그 사랑과 주님의 지혜에 다시금 경배와 찬양올립니다.

 

 수도 없이 보고 있는 인간의 잔인하고 구역질 나는 그 심성을 통하여서도

좌절되는 많은 고통 속에서도

우리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또 주님은 역사하고 계심을 선언하고 계십니다.

 

그게 위안이 됩니다.

 

끝없이 찾아오는 의혹 들이 있어도

실은 다 주님이 일어나시고

말씀 한마디면 없어질 것들임을 가르쳐 주셨기에 감사드립니다.

 

알고 있지만 헷갈릴 즈음

또다시 지시하고 가르치시고 확신을 더해주심 감사를 드립니다.

 

아침 큐티를 사랑하시는 주님.

 

사막 근처에 있는 모든 분들을 위안하소서.

그들이 모두

감당할 만한 시험임을 가르치시고

사막이 아님을 알게 하시고

모두 주께서 가지고 계신 계획 속에서 나타난  단편적인 현상일 뿐임을 알게하소서.

 

그 가르치심이

내 정욕에 의해

내 교만에 의해

내 결점에 의해

흐려지고 왜곡되지 않도록

성령이여 인도하소서.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 인생을 통제할 어떤 의지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

모든 능력과 사랑의 주인이신 주님... 

당신께서 인도하시고 고치시고 낫게 하시고 도우시고 회복시키리라 압니다.

 

 당신의 고통이 이제 슬 슬 시작되려 하고 있는 시점입니다.

당신의 고통을 통해 우리의 고통이 하나 둘씩 나음 받고 고침 받음을 생각할 때에

가슴에 넘치는 감격과 눈물을 금할 길이 없나이다.

 

이제 ..

이 감격과 깨달음을

잊지 말고

기다리게 하소서.

기도하게 하소서.

찬양하게 하소서.

감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희생에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희생이 크면 클수록 그 힘도 커진다.

- 존 윔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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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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