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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12:9-19)

주하인 2006. 2. 12. 12:44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오늘 가까운 석수교회 예배를 드리러 갔다. (시무 : 김찬곤 P)

많은 사람들이 SGI (남미호랭갱교)에 끌려 미혹당하고 '가정사역 연구원'등의 명칭으로 통일교 등이 변신해서 미혹하는 마지막 세대의 현상에 대하여 정말 뜨거운 설교를 토하셨다.

 

 

 그중의 남미호랭갱교는 특별히 '화광신문' 등의 건강신문을 만들고 지역마다 '문화센터'를 가장하고 육체의 치료를 무기로 엄청나게 교세를 확장하는 것에 대한 경고를 거듭하셨다.

( 얼마 전 SBS에서도 심각하게 다뤘습니다.  )


 

 

 오늘 큰 무리가 예수님을 쫓아나왔다.

 

그런데..

 

예수님 뿐 아니다.

사람들의 모이는 이유는 '살아난 나사로'가 관심이 컸다.

 

우리 왜 예수님에 열광하나?

정말 예수님인가?

예수님의 기적인가?

 

예수님의 기적에 열광하는 것은 또다른 남미...교 아닌가?

 

 

어쨌든............................

 

화려하다.

멋지다.

힘이 넘친다.

웅성거림이 귀에 들린다.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화려한 군중의 모임 뒤에 '이단'은 음모를 꾸민다.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 와우... 화려하고 멋지지요? )

 

 

 맞다.

그 분은 "호산나~" 하고 칭송 받고 '종려나무 '가지를 마구 흔들어 온통 눈물 흘리고 콧물흘리고 그 중의 일부는 땅에 뒤 엎어 넘어져 성령충만의 은사를 보이고 ... 입에서 이해치 못할 방언을 하고 몸부림 쳐도 부족할 만큼 엄청난 분이시다.

 

 이 정도가 과분한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환영이다.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Jesus found a young donkey  예수께서 어린 나귀를 발견

   하시고) 타시니

 전혀 안 멋지지요?  ^^;;;)

 

 

 

 

 여기서 난 순간 당혹을 금할 길 없다.

 

그 이유로...

 

첫째

 마태복음 21장에 의하면 두 제자 보내어 매여져 있는 나귀를 주인에게 말하고 가져 오라  하셨는데 여기서는 다른 표현일까?

  우선은 수십년의 기록 터울을 두고 중치 않은 일에 대하여 관점이 다른 요한께서는 스쳐 지나

  가는 표현을 쓰신 것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성경을 읽지 않은 자들은 이런 고민 할 필요조차 못하니 그런 자들에 대하여 상급

차원에서 구분시킬 목적도 있을 뿐더러, 지식욕이나 자신 과시욕이 충만한 자들이 중심보다 지엽적인 문제에 대하여 논란의 여지를 확장시킴으로 진실로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도록 주님께서 허락하실 목적도 크다.

 곧 쓰겠지만... 성경은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는 부분이 많다.

이런 의혹과 논란도 다 주님의 고려에 들어 있으신 분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야 어찌 예수님이 이천년 넘게 진리이자 신이심이 확신 되어오고 있겠는가?

 

 

둘째.

 분명코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엄청 뜨거운 열기하에서 이루어진다.

느껴지지 않는가?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보이는 것 같지 않은가?

 

 살아난 나사로를 직접 보고

주님의 능력을 확인한

조국 독립을 확신하고

일부는 메시야임을 믿는 억눌렸던 이스라엘 인들의 엄청난 조국애의 응집이?

 

 그들은 곧 십자가 예수님을 보고 침뱉고 웃을 자들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잠시의 엄청난 흥분, 엑스터시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겨우

나귀다.

 그것도..

어린..

 

무언가 어울리지 않음이 보이지 않지 않는가?

 

아예.....

( 이러시면  얼마나... 멋졌겠습니까?     누구나 믿고 성장하려 하겠지요..ㅎㅎ )

 

 

깃털이 휘날리는 스가랴 환상 중의 '홍마'였거나...

기름기가 주르르 흐르는 '흑마'였더라면...

아니 예수님의 하얀 이미지에 맞도록 사람 키를 넘어서는 '백마'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주님은 비루한 어린 나귀 하나 타고 나가신다.

 

 이 얼마나 넌센스인가?

 

왜 그러신가?

왜?

왜?

 

 

 주님은 바로 전에 의혹을 허락한 이유에 대하여 추정한 것 같은 이유이시다.

그분은 외적이고

이 땅의 것에서 보다는

그 중에서도

이단의 음모 중에서도

중심을 보는 자들을 기다리시는 것이시다.

 

 땅위의 현란한 포요와 환호와 성공 보다는

그 뒤에 '고통'이 있고

그 다음에 '연단'이 있을 수 있는

어울리지 않는 감각적 불유쾌함을

오직 진실이고 중심이신 예수님을 끝까지 시선떼지 않고 바라볼 자들을 원하시는 것이시다.

 

 오늘 그 분은 나에게 그걸 말씀하신 것이시다.

 

석수교회 김목사님의 그 열렬한 설교 속에 '이땅의 것만 아름답게 포장하고'

삶이 지상에서의 아주 짧은 시간 만이 전부인 것처럼

남미 호랭갱교에 몰려 들어가는 자처럼 되지 말고

 

 조금은 부조화스럽지만

조금은 힘들수도 있지만

조금은 더 어려울 수 있지만

 진실이신 예수님을 기뻐하라는 메시지인 것으로

내 영혼에 느껴지도록 하락하셨다.

 

 

 

 

기도

 

주님 예수님

온통 세상이

쉽고

재밌고

멋지고

프로그램하에서

귀에 꿀바른 듯한

그런 예수님 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헌신과

봉사와

인내와

사랑과

연단과

성장과

하늘의 것과

천국과

눈물과

십자가... 는

쳐다보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감각적으로

호산나.. 호산나.. 소리만 지르고

자기 육적 만족에 취하여

기뻐하는 예수님 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십자가를 메고 가시는 하나님

어린 나귀를 타고 가시는 예수님을 볼 때

꺄우둥하고 있습니다.

등돌리고 있습니다.

아니..

침 뱉기 까지 하려 하고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어떤 환경 중에서도

진실로

진실이신

우리 주님 예수님

그 분 만을 좋아하고

기뻐하는 자들만

기뻐하소서.

 

저도 그런 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저에게 지혜를 허락하소서라 하신

시편 51장의 말씀이

저에게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이루어지길

이 아침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세상은 영원히 살 집이 아니라 잠시 지나가는 길과 같다.

 - 매튜 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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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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