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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로 가자(요11:1-16)

주하인 2006. 2. 7. 09:07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마리아는 절절 끓어 넘치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어떻게 주체하지 못할 감사가 있었다.

 

그녀는 가진 것 없지만 최선을 다해 주님께 사랑과 감사와 존경을 올렸다.

기쁨을 표시했다.

주님은 그런 그녀를 특별히 사랑하셨다.

그의 오라비러라 라는 표현처럼 나사로는 마리아로 인하여 인식될 정도였다.

이 마리아의  처절한 주님 사랑만이 주님의 감동을 가져오고 그 감동은 죽은 자를 살릴 정도의 기적을 가져온 것이다.

 

주님은 절절한 만큼 응답의 강도도 절절하시다.

 

 

 현실의 나는..

주님의 그 해방을 맛보았고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아직도 '안되는 '이유에 대하여 늘어 놓고만 있다.

그래서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주님 난 가진게 다 빠져나가는 중년일 뿐예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고 있다.

 

그런 걸 주님은 아시고 '마리아'의 전력 투구하여 -전 재산을 바치고 몸을 던지고 머리카락까지 동원하며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이겨내는 절절한 헌신- 주님을 받드는 모범을 보여 주고 계신다.

 

 

" 주하인

  넌

  어떻게 주님께

  감사드릴 래? "

 

 

 (어제 P 목사님 뵈었다.

  눈이 뜨이는 것 같았다.

  아침에 '안되는 이유'에 대하여 머리 속에 휭~휭 돌았다.

 아시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또~~ !!)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주님의 이 마음을 누가 알수 있으랴?

최측근 제자들도 모른다 .

아픈 나사로는 더 모른다 .

그 곁의 마르다와 마리아도 알 수 없다.

 

우리는 현상에 집중하지만...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에 집중하기를 원하신다.

 

 마리아와 마르다에게는 가족과 생이별하는 아픔을 의미하고

나사로에게는 개인적으로 깊은 고통을 의미하지만...

 

주님 예수님께는 영광올리는 일이 된다고 하신다.

 

 더 깊은 묵상에 나온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행이 예방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실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라는 질문을 보면서

순간 '집사람'의 사별에 대하여 생각이 들었다.

 

 깊이 가슴이 아프다.

특별한 내 환경에 그 사람 마져 없음은 나로하여금 견딜 수 없을 아픔을 초래할 듯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구절을 볼 때 나사로의 아픔이 죽음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음을 보고 불행이 기도로만 반드시 예방되지 못할 것을 인정하니...

가슴이 터질 듯 싶다.

 

 나에게 상실은  온천하의 꺼짐과 같은 슬픔을 가져올 것 만 같다.

혼자서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온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천국을 소망하고

더 좋은 선을 위한 예비라고 알고는 있지만...

아는 것과 실제와의 괴리를 극복하지는 못할 것 만 같은  두려움이 앞섰다.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남자는 이거.. 정말 아픈데.. 이거 진짜 일부러 하는 묘기다.ㅎㅎㅎ)

 

 

 주님은 고통을 일부러 더 허락하신다.

이틀을 더 유하시고..라는 문장에서...

일부러 지체하시는 뉘앙스가 확연히 느껴진다.

 

 주님은 선하시다.

 

그러나..

우리에게 고통은 허락하신다.

 

 아픈 자에게 이틀은 엄청 고통스럽고 긴 시간이 될 수도 있는데..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plainly 분명히, 명백히 )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14절 말씀을 들어가며 만일 내가 나사로나 나사로 식구 였다면,

우리 집사람이 나사로 였더라면.. (정말 상상입니다.ㅎㅎ ^^;;;)

참으로 죄송한 얘기지만 ... 화가 나려고 함을 느낀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

고통 중에 있을 시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 같다.

 

 나사로가 죽을 줄 아시면서도 이틀 더 유하시고 ,

그것도 모자라 분명한 어조의 자신감 있는 어투로 죽음을 선고하시는 것이...

마치

그 분께서는

사랑이 없으신 공감능력 결핍증이신 것 같다

 

그것도 모자라..

주위 사람들에게 나사로의 불행이 믿음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임을 교육하기 위하여

나사로의 불행이 기뻐할 일임을 냉철하게 선언하신다.

 

 예수님을 인간으로 보면

분명코 속상하다.

 

이리 외치고 싶다.

 

' 아니 주님..

이제 전..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의지할 것도

기뻐할 일도

힘을 내야할 일도....

 

 오직 유일하게 주신 제 반려자마져... 이제...

쫓아가기 어려운 이 새 가슴 같은 같은 영혼의

최소한의 의지처 마져 이제 가져 가려 하십니까?

 

 더 큰 선을 위하여

마지막 버틸 힘마져 가져 가려 하십니까?

 

그 선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천국을 위하여는 나는 완전히....."

하고 반항하고 싶다.

 

 

 

 그러나..

그 분은 '인간'이 아니시다.

주님 예수님이시다.

 

그에게로 가자 라고 하신다.

분명히...

 

 그 분은 절대로 그대로 두실 분이 아니시다.

이것을 포기하고 다른 기쁨과 교육을 위하여 방기할 분이 아니신 것이시다.

그분은 능력이시다.

그분은 사랑이시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듯이

죽을 듯 고통스러운 우리의 어려움을

고쳐주려고 오실 것이다.

 

 그에게로 가자 는 소리는

인간인 내가 인지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배려하고 있는 분의 소리이며

사람인 내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의 한계를 넘어서는 위안의 소리이며

피조물인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능력을 가지신 자의 소리이며

부족한 내가 가질 수 있는 아이큐를 넘어서는 지혜를 가진 자의 소리이시다.

 

 그 분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으며

눈먼 소경을 눈 뜨게 하셨으며

죄진 창녀를 구하신 능력자이시다.

 

그런 그 분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상태 이상의 것을 알고 계시고 예비하고 계시고 준비하고 계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끝없는 슬픔에 잠겨서 앉아 있거나

머리를 돌려 가장 악한 상상을 하거나

어찌 주님이 축복하실 것인가 가슴 조리며 기다리기 보다는

마리아가 보이는 그 주님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열정으로

주님이 기뻐하실 헌신을 보이는 것이다.

세상사람이 뭐래도

세상이 어떻게 질주해 나가도

흔들리지 않고

나의 가진 모든 것을

그 분께 바치는 헌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절절히 끓는 사랑으로...

주님 어찌하셔도..

주님이 날 도우실 줄 압니다.

어떻게 도와도 그것은 선인 줄 압니다.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이 하소서....

하는 믿음 만이 필요할 줄 안다.

 

 

상실은 슬픔이다.

지독한 아픔이다.

거기에 기다림은 더 큰 아픔이다.

그러나.. 마리아 같은 열정과 사랑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기다리면...

그에게로 가자

라 하시면서

홀연히 나타나 살려주시고 도우실 그 분이 계시다.

우리에게는..

 

 

 

 

기도

 

아침에 마음이 불편합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참으로 잘 연단된 믿음의 상태가

잠시 흔들렸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아침..

깊은 고통을 묵상하며

상실감에 눈물을 조금 흘렸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미어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제가 가장 부족한 자 같은

미련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별하는 묵상은

가슴이 찢어지게 했습니다.

 

그 찢어지는 상상에

주님을 더 의지하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원망할 듯한 마음의 제 자신을

관찰하며 더 당황하였습니다.

 

 

마리아 같은 열정과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그에게로 가자

라는 그 선언과 더불어

나타나실 그 큰 뜻과 위안을 체험할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항상 고백하였듯이

전 부족합니다..

전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여 ..

전능하신 우리 주님께서

오늘 상상한 것을 넘어서는 평온을 주실 줄 압니다.

권능의 주인이신 당신께서 제 믿음 마져 높여 주실 줄 믿습니다.

 

새가슴보다 적은 이 영혼에

믿음의 지평을 넓혀 주실 줄 믿습니다.

마리아 같은 처절한 사랑과 열정과 헌신을 주실 줄 믿습니다.

 

늘 동행하는 성령님..

당신의 뜻에 모든 걸 맡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시는 그것이 때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도구가 된다.

 - 존 파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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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오또기님.. 찬조 출연입니다. (강제 출연입니다.. 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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