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사랑(요일4:13-21) 본문
2007-02-26 요한일서 (1 John) 4:13~4:21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내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내 안에 거한다.
굉장히 기묘한 표현이지만
그걸 이해한다.
기도하며 성령 충만할 때
그 분을 향해 두 손들 때
그 분이 날 옆에서 어루만지듯 느껴질 때
마치 내 속에서 나 인듯 내가 아닌 듯 번쩍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분명코 내 지식으로나 성품적 특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아이디어일 때...
그러나
아직은 뚜렷하게 그 분이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한다는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오늘 묵상에서는
내가 사랑으로 그득찰 때
그 증상으로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하는 걸 알 수 있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문제는 사랑이다.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아침 묵상 중 목사님께서 '국민 일보'에 나온 개 이야기를 하셨다.
같이 길건너 가던 개 두마리 중 한마리가 적은 일톤 트럭 차에 받쳐 죽으니 몇날 며칠을 비슷한 트럭만 있으면 달려가 번호판을 물어 뜯는 행동을 살아남은 개가 되풀이 하더라는 것.
사랑이 있으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난 항상 P.가 문제다.
많이 회복되었어도 가끔은 덜컥하고 밀고 나온다.
그래서인지 난 사랑을 모른다.
실은 사랑보다는 날 이해해주는 자에 대한 온전한 쏠림이라고 봐야 할 정도의 왜곡된 마음이었던 같았다.
그래서 사람 만날 때 그런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혼돈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기도 아닌 체 억제하려는 반응으로 온통 내 인지 상태가 엉망이 되어버린다.
그런 것은 굉장한 고통이 와서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결국은 두려움이 먼저인지 사랑이 없음이 먼저인지 난 생각할 겨를 조차 없이 그냥 관계를 이어감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론적 현상으로
두려움이 있는 자는 사랑을 할 수 없다...라는 것이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아침에 안(R4)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직이 27일 되어 있는데 어떻게 하냐구?
정말 그랬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하니 발뺌하는 듯 자신은 아는게 없는데 왜 나에게 전화하냐구 퉁명스럽게 그런다.
역시 본성은 어디에 못버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운하려 하는 자동적 메카니즘이 떠오르려다가 주님이 말씀이 이거다.
난 사람을 완전히 사랑하지 못하기에 항상 두렵다.
두렵기에 짜증이 나고
그러다 보면 화를 내고
헝크러지고...
이게 되풀이 되는 삶이 끔찍하고 .
원리가 이것이다.
그냥 그들을 사랑해버리면 된다.
아침에 송경아 과장이 내 옆에 앉아 큐티를 한다.
기특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흔들린다.
내가 이 사람을 어찌 인도하여야 하는가.. 하는 자격지심.
이게 두렵다.
그냥 송 선생을 가만히 쳐다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좀 넉넉해진다.
점심 때
수술 한 건 잡아 하려니 두려운가 보다 .
도움을 청한다.
그러라고 했다.
혼쾌히.
그게 내가 할 일이다.
이제 그가 잘 못하던 잘하던 비웃으려도 질투하려도 안하고 그냥 가만히 선배로서 지켜볼 선택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다.
난 선배다.
그리고 그냥 그들의 반응에 상관없이 내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해하고 사랑해버리면 된다.
그냥.
사랑이 모든 것을 감싼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는다.
가만히 생각하고 묵상하니 이렇다.
자잔한 잔 마귀들이 그들의 영상을 뒤집어 쓰고 손가락질하고 눈부라리고.. ...
이거 조차 그냥 그래..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의 말씀으로 사랑하면 된다.
그러면 그냥 편안해진다.
말씀이 참으로 위용이 있다.
사랑이 답이다.
그냥 감싼다.
온전히 사랑으로 감싼다는 선언을 한다.
그러면 가슴 한구석이 뜨끈 해지면서
주님이 알아서 하신다.
난 결정하고
주님을 쳐다보고
기다린다.
결정은 사랑이다.
모든게 내 선택이다.
난 주님의 사랑으로 모든 걸 포용하길 선택했다.
억울하고 속상하고 엉터리같고 바보같은 것 조차 그냥 감싼다.
사랑으로...
주님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난 안됩니다.
그냥 감싸 안으려지만 잠시 거부 반응을 보이는 내 속이 있습니다.
사랑하려니까...
억울하다고 몸부림치는 이상한 세력들이 내 안에 있습니다.
이들에게 수긍하고 눈돌리는 순간
내 속에는 미움이 폭포수 처럼 올라오고 또 한번 좌절로 날 몰아가는 분노의 회오리가 있을 것이 너무도 뻔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반응을 그대로 두고 보려합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소서.
그냥 사랑도 아니올시다.
온전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억울하고 삐져나오려는 것 조차 가차없이 사랑으로 이해하게 하소서.
안되는 것 12단계 하게 하소서.
예수님 도우소서 .
당신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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