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미움은 영혼의 구멍(요일3:11~3:24) 본문
2007-02-24 요한일서 (1 John) 3:11~3:24
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 미움은 가인이다. )
아침에 욕실에서 닦고 나오며 옷을 입고 출근을 준비하는 동안 갑자기 오늘 할 일을 생각하는 동안 떠오르는 얼굴이 있으며 확 미움이 밀려 올라온다.
한번 씩 이유없이 올라오는 미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지만 오늘 아침처럼 가끔 옛버릇이 되풀이 될 때가 있다.
이게 상처의 소치요 사단의 역사임을 안다.
아직도 그 이유를 빌미로 놓치 못하는 내 죄의 소산임을 알고 자꾸만 내려 놓으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멍한 구석이 없지 않아 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서 얼른 펴 들은 묵상 집에 '가인 같이 하지말라'를 필두로 말씀을 주신다.
난 항상 매번 이런다.
이래서 묵상을 놓을 수가 없다.
어찌 살아 계신 그 분이 매일 매일 절묘하게 상황과 들어 맞는 말씀을 주시는데 어찌 그 분이 살아 계심을 부정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게 재미가 있다.
주님의 말씀에
내 영혼의 혼돈을 하나하나 꿰어 맞추어 꿰메는 작업을 하는게 참으로 재미있다.
한편으로 찢어진 부위가 너무 커서 잡아다녀 맞추려니 그 괴리가 너무 커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이제 하나하나 들어 맞아 형태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기 그지 없다.
형태를 이룬다.
오늘 가인 같이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며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시는 것 처럼 들린다.
무얼 질투하지 내가?
그러나 깊이 들여다 보면 난 그게 맞다.
세상에 기대를 가지고 바라는 게 많아서 그렇다.
그걸 가만히 내려 놓아야 한다.
그래야 가인처럼 흥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없는 흥분은 질투와 기대에 따르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세상의 원리에 대한 좌절 탓이다.
주님 안에서 내려 놓으라니 내려 놓을 작업을 해야 한다.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어쩌면 그러한 작업은 눈에 띠는 행동의 변화를 요구할 수 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쟤 어떻게 저렇게 됐어?'하고 비웃을 수도 있다.
그것은 세상이 나를 미워하는 것으로 받아 들여져 자칫 옛날의 익숙한 습관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밀려올 것 같다 .
'그래, 내 주제에 변하면 얼마나...'하며 ..
그런데 그것마져 주님은 다 아신다.
이리 얘기를 하며 미리 예고를 하시며 위로하신다.
'그래 이런 상황이 되어 네가 새로운 행동을 결정하고 새로운 결단을 할 때 세상이 비웃는 듯이 느껴지는 것은 내가 네 곁에 있고 내가 살아서 말한 것이 그대로 맞는 현상이 된다.
오히려 기뻐하고 힘내라'
그래 한번 미워함을 느껴보자.
그래 한번 미워함을 이상히 받지 말아보자.
그래서 그분이 살아계셔서 그대로 움직이는 결과를 지켜보자.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얼마나 미련한 일인가? ( 미움을 잡아 가두라...)
중독
알면서 하지 않는가?
참으로 난 중독 성향이 많았다.
담배
주님 믿고 자연적으로 끊겼지만 굉장한 골초였다.
당구.
잘 못치면서 한번 잡으면 밤새.
그것도 조용히 사라졌다.
TV 중독.
한번 잡으면 밤새...
그것도 거의 안보다가 구정 전후에 영화를 하니 슬그머니 나온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
형제가 피를 나눈 자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예수님 안에서의 형제까지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 형제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 속에 담아 두는
특별히 날 미워했거나 무시했다고 생각되는 자들에 대하여 깊은 속에서 꽁하는 마음이 풀리지를 않았었다.
예수님 믿고 묵상이 시간이 지나가며 없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일정한 계기만 주어지면 미움이 올라온다.
슬그머니.
이것도 잘못인 줄 알면서 자꾸만 되풀이 되니 일종의 중독이 아닌가?
그러나, 담배나 TV 중독도 육체의 정욕으로 제하여 져야 하겠지만 이 중독은 특별히 살인하는 길임을 경고하시기에 특별히 더 고쳐야할 중독이다.
영생이 없으리라고 하신다.
두렵지만 고치지 못해서 더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독이 내 속에서 사리지기 시작한 것 처럼 그 미움 중독도 없어질 것을 은연 중 확인 받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고맙다.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미움을 버려야 하는 것은 잘못인 줄 아는 중독이고
그 중독은 결국 버리지 않으면 날 살인하는 자로 만들 줄 알기에도 고쳐야 하지만
주님 예수님 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기에
그 사랑이 너무도 크기에 우리가 감사하는 차원에서라도 미움을 버려야 한다.
미움을 버리는 정도를 떠나서 그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차원까지 승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지금 가능할까?
지금껏 그래왔듯이 주님의 말씀이면 가능하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평강의 하나님의 그 기쁨을 놓치지 않고
사랑의 하나님의 그 포근함을 놓치지 않으려면
미움을 내려 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랑으로 바꾸려는 결단을 해야한다.
될 것이다.
어느 순간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나도 모르게
미움으로 찢어진 내 영혼의 구멍이 하나하나 또 꿰메지고 새옷이 될 것이다.
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미움 속에 주님의 사랑이 거하시길 바라는 것은 어불 성설이다.
이것 만 가지고도 미움을 버려야할 당위성이 있다.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머리와 말로만 하지 않고 행함과 진실함까지 요구하신다.
최선을 다하여
오히려 역으로 미운 형제를 사랑하는 하루가 되길 원한다.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그래 축복의 원리가 이것이다.
예전에 예수님을 믿고도
속에 원망과 미움이 가득차서
세상과 남들에 도움이 되는 자가 되기를 그리 원치 않고 오직 관심의 나의 평안에만 있던 때는 믿어도 힘이 없었다.
별로 주어지는 축복도 없는 것 같았다.
실은 불만이 많아서 못느껴서 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 부터 조금 다르다.
어느 정도 영혼이 잘 꿰메지고 나서인 듯하다.
많은 예상치 못하던 일이 주위에서 발생한다.
기도하면 이루어진다.
그냥 쏟아 붓는 물질의 축복은 아니지만
필요한 만큼 채워주시고
그것이 더 달라고 하는 갈증이 없어지고
그냥 만족스러운 만큼 부어진다.
이제
이런 생각이다.
내 속에 아직도 미움이 일어나는 이러한 찢어져 너털거리는 부위가 조금 더 꿰매지면
그리하여 어느 순간에 완전한 모습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가 되면 될 수록
세상의 것도 더욱 채워질 것이라고..
그 때쯤이면 구하는 바가 물론 주님 안에서 주님의 원하심과 맞아져서 구해지겠지만 구하는 모든게 주님께 받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의 묵상 구절의 확신이 아니더라도
막연하게라도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내 영혼이 주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완전해질 그날 까지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인식하고 말씀을 따라 행하려는 의지를 발휘 해야 한다.
적용
1.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것이다.
표정도 말도 내 스스로 확인도 ..
그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시니..
2. 세상이 날 미워해도 이상히 여기지 않겠다.
쑥스러워도 당연하게 받겠다.
3. 십자가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겠다.
4. 가인 같이 하지마라는 말씀을 묵상한다.
5. 그들의 기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겠다.
6. 기도하겠다.
저녁에 교회가서 아들 작전 기도랑 같이
회개기도가 될지 감사기도가 될지 기대된다.
기도
주님
세세히 제 인생을 간섭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뜻대로 맞출 수 있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간구할 것은
제 생각이 자꾸만 주님 말씀 쪽으로 맞추어 지고
상황에 들어가서도
주님 말씀이 생각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유없는 미움을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분노가 올라올 때 주님 삭여 주소서.
이상한 일로 여기지 않고 감사하게 하소서.
세상이 미워해도 이상한일로 여기지 않게 하소서.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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