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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는 미말에선다(고전 4:6-21) 본문

신약 QT

사도는 미말에선다(고전 4:6-21)

주하인 2012. 7. 7. 11:34

(고전 4:6-21)

 

어쩌면

인생은

갇힌 감옥과

다름 없는 듯 합니다

 

사도들

선택받은 자들은

미말에 섭니다

 

그 곳에서도

그들은

빛을 봅니다

 

그게

그들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9.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사도인 그들을,

미말 (尾末) , 즉, 꼬리, 가장 험한 곳, 가장 천한 곳.. 에 두셨다한다.

 세계.. 영적 세계의 대표인 천사와 물질 세계의 대표인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다 한다.

하나님께서..

 

그렇다.

사랑할 수록

사랑받고 크게 쓰일 자일 수록

연단이 큰 것이다.

 

어쩌면 편하고 축복 받기를 원하는 것은

내 바램이지만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은

'사도'같은 '선택'받은 자라고 보시는 지 모른다.

 

만사형통하고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훨훨 나는 것을 바라는 것은

누구나의 바램이긴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축복'은 아닐 수도 잇고,

지금 엉터리 같고 이해할 수 없는 혼란과 어려움속 에 빠지고

정말 하찮은 자 같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자는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축복의 자리가 될 수도 있다는 암시이기도 하시다.

 

 그렇다.

연단은 선택받은 자의 '필연'이긴 하지만

그 상황에 들어가면

불타듯 뜨거운 그것이

인지의 혼란을 가져와

그로 인하여,

나로 인하여,

버려진 자 같이 느껴질 지 모르겠지만

사도 바울님도

미말에 버려진 듯

영적인 세상, 물질적 세상 모두에게 조롱당하는 듯하였지만

그것을

하나님이 원하시고

자신이 그 하나님의 원함으로 인하여 그 처지에 있도록 하신

'사도'임을 잊지 않고 있지 않은가?

 

 

10.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쉽지 않은 일이다.

어려운일이 '축복'이라니..

고난이 '사랑'의 결과물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의 관심 속에 있는

'사도 '같은 자일 수 잇음을 잊지 않을 수 있다니..

 

그래서 '사도 바울'께서는 실제적 지침을 내리신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구절.

그럼에도 너무 자주 잊어버려서

적어 놓고 또 외우고

또 기억하려 하는 구절..

 

'나는 그리스도의 연고,

예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 탓에.....

미련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지혜롭다고 부러워하고 있는

그들은 예수님의 뜻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 나를 낮추어야 한다.

내가 미련하게 보임은

그렇게 낮아지길 바라시는 예수님의 뜻이다.

난 사도 같은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약해져야 한다.

약함은 예수님의 뜻이다.

타인은 강해져야 한다.

그게 주님이 나에게 바라시는 것이시다.

 

나는 그리스도의 뜻 가운데서

비천하여 졌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고

침뱉음과 따귀와  조롱의 낮아지심을 받으셨다.

나도 그래야 한다.

예수님의 뜻 가운데서 그들은 존귀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게 '사도'가 될 나의 운명이다. '......라시는 듯하다.

 

 

'휴가'를 다녀오면서

로마를 거쳐 '영국'의 런던 공항에서 '아시아나'로 갈아타고 들어왔다.

요때가 제일 싫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게이트 ' 앞.

검은 머리와 익숙한 얼굴들..

편한 소리들로 왁자지끌..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현실.

 사도의 길...을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내 본성이랑 달리

조금더 착해져야 하고 ^^;;

현실을 직시하려다 보면

자꾸만 나보다 큰 사람들.. 만 보이며

난 자꾸만 왜소하고 늙어만 보이려 하고

익숙했던 'SA' 가 관두며

또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쳐야 하고......

사도 바울님은 '절절한 전도'의 길에서

확실한 '사도'가  아난

'사도'처럼 선택 받은 자로서의

나를 인정하고

과거의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과 정체를 바꾸어가는 과정이기에

때로는 힘이 들 때가 있다.

 

 그것.

일상에서 완전한 사도로서의 '나'로

내가 인식을 하게 될 그날이

'하나님께서 날 부르시는 그날'이 되지 않을까 싶기에

다시 힘을 내서

내 하나님이 아니시고는

아무 의미가 없는

이 인생의 길을 걸어 가기 위해

다시 힘을 내어 들어 왔다.

 

아니나 다를까.........

SA 문제 .....행정팀에서 아직도 해결해 놓지 않고 기한이 1주일 남았다.

앞으로 수술에 문제가 많을 듯 싶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곳 저곳 consult가 오면서 '버걱' 거린다.

' 수년간' 아무 기척이 없던

이 조용한 블로그에

괜한 '반기독교 정서'를 가지신 분께서

'익명'으로 모든 기독교인에대한

너무도 잘 아는 논리의 '발톱'을 드러내신다.  ㅜ.ㅜ;;

아....

이 익명의 공간........

 편안했던 정서에 다시금 '아픈 환우 분'들의 정서에

차분한 정서로 대해 드려야 하는

직업적 버거움.......

나이듦에 따라 점차로 노력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느끼는 힘듦.

육체의 리듬이 바뀜에 따라

적응하는 과정의 에너지............

 

주님은 다 아신다는 듯.

내 입장을

'사도는 미말에 선다'는 명제로 시작하신다.

'사랑할 수록 고난은 크게 하는게 하나님의 뜻이다' 라시며

' 예수 때문에 낮아지는 것, 미련해 보이는 것, 약해 보이는 것...'이니 다 참아라' 하신다.

참 감사하다.

그래...

그렇게 버텨야지.

며칠 지나면

예전의 매일매일 .. 하나님 말씀 가운데 살려고 노력하던

이전의 리듬이 다시 찾아 지겠지...

 

그러다 보면

주님 부르실 때가 되어

아무런 세상의 엮인 오욕이 없이

탈탈 먼지 털듯 옷을 털고

주님 주시는 '흰옷'을 입고

날아오를 수 있겠지.............

 

 

 

적용

 

1. 난 주님의 사랑 받는 자다.

 선택 받은 '소수'이다.

 '사도'가 될지도 모르는 '일상의 사도'다.

 그게 나다.

 사도는 '미말' 에 선다.

 사랑 받는 자일 수록 어려움에 처할 기회가 늘어난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다.

 

2.  예수님을 위하여.

내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는

'예수님'을 위하여다.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 지........난.......크게는 모른다.

 그러나, 매일 말씀으로 원하시는 것이 그 분이 나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임을 믿는다.

그 결국이 '회복'에만 있는지...

어떤 것을 이루어 가길 바라시는 것인지.. 난 모른다.

하지만, 말씀으로 매일 알려 주시니 그대로 따름이다.

' 약한 것을 기뻐하자.

 예수님을 위하여..

 ' 천한 것을 기뻐하자

 예수님을 위하여..... '

' 미련한 것을 기뻐하자

 예수님을 위하여......'

최소한 오늘 하루 그리하자.

 

3. 나.........힘들지만 따르기로 결심한다.

 기뻐하자.

 SA도..... 괜한 영적공격도......휴가가 끝난 버거움 도 ^^;;...

 

4, 성경 세장 읽자.

 

 

 

 

 

기도

 

 

주님.

힘이 드네요.

재미잇던 시간에서

또 , 그런 변함없는 일상으로 돌아와

또 그렇듯 크게 목표와 비전없는 생활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삶으로 돌아오니

그렇네요.

그럼에도 주님이 계시니 전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주님 없을 때,

이 답답함은 얼마나 사람으로 하여금 '미말'에 빠지게 할지

다시금생각되게 합니다.

사도 바울님 처럼 확실한 자기 인식과

절절한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세상을 뒤바꿀 비전과 성령의 도우심이 있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저 같은 범생의 인생은

하루에도 열두번씩이나

하나님의 '사도'의 행복과

일상의 허무함의 미말 속에서

허덕임과 빠져나옴을 되풀이 합니다.

 

주여.

감사한 것은

그런 저를 아시고

다시금 말씀으로 깨닫게 해주심입니다.

저는 '일상의 사도'요...

나의 미말로 느끼는 것은

사도 바울님도 미말로 느끼셨고

그러함은 '사도'의 특권임을 다시금 상기시키시고

예수 그리스도 연고로,

약해지고 천해지고 미련하게 느껴지는 것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오히려 기뻐하길 결심하게 해주심을 요.

참. .. 감사합니다.

주여.

잊지 않는 오늘 하루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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