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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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몸 몸 몸(고전6:12-20)

주하인 2012. 7. 10. 10:15

(고전6:12-20)

이 나약한 육신은

때가 되면

이리

갈증을 호소합니다

 

 주여

이 몸

이렇게 간절히 물을 찾듯

 

제 영혼도

주님 은혜

절절히 사모하게 하소서

 

말씀 통해 흐르는

주님의 생명수로

제 영육혼을

온전히 채우소서

 


 

13.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을 위하시느니라
14.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20.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 육신.

유럽에서 돌아온지 벌써 며칠 되는 데

아직도 그쪽 취침시간이 되면

이 곳에서 잔 시간과는 관계없이 심히 졸리다.  ^^;

 

새벽에 늦은 잠이 들어서

점심시간임에도 눈을 뜨질 못할 나른함에 겨우 20분의 시간을 남겨놓고

식당에 내려가 밥을 먹는데

이 '식탐'은 왜 이리도 끝없이 이는지........

이 몸....

 

한참 무겁게 배를 채우고 걸어 올라오는데

엘리베이터가 보여 2층이지만 타고 올라갈까 하는 유혹이 인다.

이 몸의 게으름.....

 

걸어 올라오려니

디스크에서 뻗치는 통증으로

골반관절 쪽 근육이 긴장하는 듯

한걸음 한걸음이 느려진다.

이 육체의 한계...

 

먹으니 졸립다.

젊을 때는 덜하더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식곤증이 견디지 못하게 다가온다.

때로는 기절하듯 졸다가 일어날 때도 있다.

이 육신의 노화........

 

 

 이 몸.

내 영혼을 이 육신이라는 눈에 보이는 물질의 틀 속에 넣어주셔서

이 인생의 시간동안 끌고 다니다가

주님 부르시는 시간이 되면

사도 바울님의 표현처럼,

이 고단한 '육신의 장막을 벗고'라시는 표현처럼

홀연히 벗어 놓고 올라갈 수만 있다면......

 

 이 몸은

어찌 생각하면 ' 이 물질 세상'을 살동안

내 영혼을 실어다니는 '자동차'나 '아바타' 같은 존재로 생각이 될 때가 가끔있고

그러기에 나이가 들어가거나 관리 부실로 점점

내 의지와 바램과 상관없이 '잔 고장'이 나는 것 만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몸은 나란 존재에있어서 어떠한 의미던가?

이분법적으로 생각해 

몸은 아무렇게나 써도 괜찮고

영혼만 귀중하다하여

이땅의 삶을 방종으로 몰고가는 '니골라당 ' 같은 태도로

지금 현대인들의 그것처럼 마구 살아도 되던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께서

영혼 만 위해서 그러라 하셨던가?

 때로 '믿음'생활 하다보면

이 몸은 무시하고 싶은 생각이 들때도 없지 않다.

방종이 아니고 때론 감성적 만족감을 얻기위해

그것을 영적 성결감으로 착각하는 이유로

'과도한 절제' 로 몸을 쳐 지나친 절제를 하고싶은 욕구가 들기도 한다.

 

그러나, 몸은 '영혼'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가없다.

오래전에 낙상을 하여

기존의 디스크에 압박골절이 있고

꼬리뼈까지 골절을 당한 부위가 있어

가끔 '뜨끔'하면 온 전신이 고통을 호소할 때가 있다.

꼬리뼈는 '좌골'이기에 만성적으로 골반쪽으로 멍한 감각내지 오래된 통증이 있다.

그로 인한 묘한 불쾌감........

 어느날 ,

나이가 드니 점점 불편해지던 시야가

갑자기 수술을 하려는 데 촛점이 흐려진다.

'나이탓'이다.

안경을 벗으면 아무 문제는 없지만,

자잔한 '몸'의 불편감들이

마음을 누르려 한다.

'중년' 들이 '우울'에 빠질 위험성이 많다.

 

이십 여년전 ,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삼사관 훈련소에서 군의관 훈련 받던

같은 내무반 소속의 치과전문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젊은 남자 분이 이빨을 해넣었는데

냉면 먹을 때마다 자꾸 빠져서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비뇨기과 의사는 '전립선염'의 증상 - 회음부가 얼얼하고.....ㅜ.ㅜ;;- 오래되어

우울증이나 자살하시는 분들이 의외로..........많다'고 첨언했던...

 

몸과 영혼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이땅에서 '몸'을 주시고

거기에 '숨'을 불어 넣으셔서

영혼을 집어 넣고 '나'란 존재를 만드셨을 까?

왜 영육혼의 존재인 '나'를 이땅에 이렇게 만드셨을까?

아예, 영적 세상인 천국처럼

하나님이 영이신 것처럼

그냥 처음부터 영으로 존재케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담이후 불완전해진 이 '본능'덩어리 몸을 허락하시고

거기에 이 유약한 영을 끌려가도록 만드셨을까?

 '이사야서 43:21'처럼 ' 하나님이 지으신 찬송을 드리기 '위해

이런 상태를 허락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이라는

'세상의 권세 잡은 ' 사단의 영향권에 쉽게 흔들릴 수 있는

몸이란 도구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영'을 넣어

그 팽팽한 긴장관계 속에

'나'의 '선택'이라는 방향키를 주심으로

매사 매사에 결정을 함으로

'정결화' 되어가거나, 타락해가는

자유의지를 주신 것.

그러하심으로 '인생'이란 '연단'의 장소를 마무리할 때

영적으로 성화되는 정도를 보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내가 이 인생에 내려진 '몸' 속에 존재하는 이유라 생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몸'에 대한

묵상의 말씀은

몸의 유혹,

내가 원하든 원치않든 불현듯 밀려오는 '음란한 생각'들,

내 육신을 매개로 달려드는 '포악의 힘'들.

자꾸만 약해져가는 몸의 힘들에 대한 '좌절'하려는 마음들.

게을러져 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실망'하려는 마음들.

약해져 가고 노화되어가는 가운데 들려는 '장래에 대한 걱정'들.........

이런 모든 것에 대하여

단지 그런 모든 변화가 '몸'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또 '몸'을 도외시하고 '영적'으로만 이겨내려는 게

얼마나 어줍지 않은 것인가를

주님은 깨닫게 하려 하시는 것 같다.

 

이렇게 쓰고 있으시다.

'몸'은 주님을 위하고

'주님'은 몸을 위한다.

주님은 우리 몸을 새로 부활케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다시 부활하셨다.

이 약한 몸도 권능으로 부활시키실 것이다. '

 

 그렇다.

나.

나이는 잔뜩 들어가지만

은혜에 거할 때의 내 육신의 느낌을 물어보면

'30대 초반'의 힘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물론 원래로 돌아오면 '그렇지만......ㅎ'

정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내 생활 전반이

영육혼 , 전방위적으로

대단한 변화가 일어났음은 수도 없이 이 블로그에 적어 놓았다 .

 

아.

며칠 전, 유럽가기 전에 '논문 '을 인쇄한 것 받았다.

'대한 산부인과 내시경학회'에 기고한 것을 출판사에서 몇부 인쇄해 보낸것이다.

그것.........

봉직의로서 아무런 의무가 없다.

대학교수들이나 논문에 대한 의무가 있지.......

나......

시골 병원 봉직의롤 '써야 할 것'같아서 그냥 썼다.

묵상하고 넘치는 '에너지'로 ,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썼다.

주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행했더니, 많은 최신 복강경의 데이타가 쌓였고

그중 특이한 케이스를 잡아서 썼다.

날 잘아시는 목사님.

'싸인'해서 가져다 드렸더니 '조용한 혁명'이라 하신다.

참.......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하나님과 나만의 아는 이 조용한 동행' 가운데

내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힘을

이 몸에 실어

시간을 쪼개어 써낸 것........

그것을 그 분은 그리 명쾌히 지적해 낸 것이다.

 

그렇다.

몸은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은 내 몸을 위하신다.

그 몸의 에너지를 통하여 '영'이 상쾌히 움직이고

때론 영이 충만한 주님의 은혜로 먼저 활동하시면

나이든 육신이 따라 움직여 준다.

그게 부활의 개념이 아닐까?

 

 오늘 .. 게으른 육신에 묻혀 영이 가라앉으려 할 때

주님은 말씀의 묵상을 진행하는 과정 중에

다시금 깨닫게 하신다.

어느새...... 피곤은 물러가고

내 손가락은

자판 위에서 마구마구 춤을 춘다.

 

 

 

기도

 

 

주님.

나...

오십의 중반을 다가서는 중년의 몸을 가진

주하인이

청년의 정신을 가지고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주님을 잊고

세상의 권세에 눌리고 정신이 빼앗길 때는

한없는 걱정과 근심, 두려움과 좌절로

몸은 풀처럼 늘어 붙어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이

어두움 속에만 있는 것 같으나

이처럼 말씀으로 , 주님의 은혜로, 예수 보혈의 씻김으로

성령으로 잡아 주실 때는

다시금 '청년'의 그것과 같은 내 자신을 되찾습니다.

 

몸은 하나님을 위하여 쓰길 원합니다.

내 언제, 주님 부르셔

홀연히 몸을 놓고 가게 될 지 모르지만

그 때까지 저를 붙드시어

몸 바쳐 주님영광위해 살 수 있길 원합니다.

 

주님.

몸의 영광을 받길 원하지는 않지만

제 몸을 통한 여러 이룸을 이루시어

제 몸을 주님 영광 노래하는

그러한 도구로 삼으소서.

 

지금껏,

다양한 의학적 기술,

기타와 찬양,

사진과 시,

글과 블로그를 통한 '세상에 외침'을 허락하셨고

최근에 '논문'까지 허락하셨습니다.

 

주님..

믿는 자로 세상을 살아갈 때

아직 저에게는 '부족한' ,

주님과 저 만이 아는 이루어 주셔야 할 제목이 있습니다.

 

절박한......그것들..

일단, 관계 면의 문제.......주님 아시지요?

제 몸으로 인하여 생긴...그 어려움.

제 자신의 문제로 생긴 그것들요...

 

또한 건강의 문제도 아시리라 압니다.

허리와 골반.........많이 아프고요.

시력도.....그렇습니다.

얼굴ㅇ.....주님.....아시지요?

 

제 몸을 부활시키시고

제 영혼도 매일 새롭게 부활시키소서.

 

모든 말씀 우리 주예수의 권능과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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