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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자 ( 행 27 : 1- 11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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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자 ( 행 27 : 1- 11 )

주하인 2007. 11. 12. 14:33

주님 계신

그곳에 갈 때까지

주여

제 눈은

주님 만

바라봅니다.

 

 

 

 

 제 27 장 ( Chapter 27, Acts )


1.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드디어 그날이 왔다.

로마 행.

뱃길.

항해.

 

어찌 생각하면

미지의 두려운 일일 수도

어찌 생각하면

2년의 영어 생활의 답답함을 물리치고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두근거리는 호기심의 날이 될 수도 있다.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음을 허락하더니
 그 날에도

위안은 있다.

 

친구의 위안

율리오 백부장의 선대(善對).

 

항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는 배의 흘러감 속에도

주님은 배려하신다.

주여,

저에게도 ..

아시지요?

제가 필요하고

제가 하지 못하는 것요?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지 아니하므로   
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성에서 가깝더라 
  항해하는 동안

사도 바울은 어떤 태도로 있었을까?

계속 기도만 했을까?

바람은 불고

갇혀 있는 곳이

선원의 그곳 보다 훨씬 열악했기에

바람에 대한 두려움은 훨씬 컸을 텐데...

그리고

생각보다 선대하는 율리오 백부장이나 친구들과의 연락, 만남..은

그로 또 어떻게 생각하게 했을까?

만일

갈곳을 알지 못하는 죄수가 같이 탔더라면

그 죄수는

이 어려움을 어찌 받았을까?

 

 아마도 사도 바울은

그간의 행동양식을 보아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을 것이 틀림이 없다.

그 분은 성경에 분명히

죽어서 주님 예수님 곁에가는 것이 더 좋으나

그냥 육신의 장막에 거하는 이유가

남, 그 중에서도 성도 들을 위함이라는

생사를 초월하는

서신을 쓴바가 있다.

그는 살고 죽는 문제에 흔들리는 분이 아니시었다.

 

나라면

친구를 만나게 허락 맡아도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과연 몇명이나 나와서

나의 위신이나 세워줄까?

혹시

삶이 힘들어 핑계로 아무도 나오지 않지는 않을까?ㅎㅎ

율리오님에게는 어떠한 선물로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할까?

.....

 

 사도 바울님은

그냥

열심히 선교를 하다보니

가는 곳 마다

친구가 있고

그 친구들이

사도 바울의 행로를 알고 있기에

핸드폰도 없는 그 시절

시계도 없던 그 시절에

그 항구에서

친구를 만날 수 있지는 않은가?

아마도 그런 그의 자연스러운 대우는

그것을 초월하여

초연하게

오직 주님의 일 만을 하다보니 생기는

자연스러운 대우였을 것이다.

그는

차분하였을 것이다.

기뻐서 펄쩍 뛰지도 않았을 것이고

수첩을 뒤적거려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려

호롱불 밑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지도 않았을 것이다.ㅎㅎㅎ

 

 그냥

가만히 있으니

다 알아서 만남이 이루어지고

다 알아서 위로가 허락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담대함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우선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그는 그의 가야할 바를 너무도 잘 안다.

비록

세상을 살다가

남들이 어쩔 수 없이 겪는 풍파를 겪지만

그는

그런 인생의 여정에 갇혀서 갈바 몰라 헤매는 다른 인생죄수들과는 달리

주님의 명령에 따라

로마로 가야하는 확고부동한 지표가 있기에

흔들림이 없다 .

 

 바람아 불어라

파도야 쳐라.

어찌해도

주님이 계신 곳에 간다.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그의 이러한 담대함과 여유로움은

주님 예수님을 향한

삶의 확고 부동한 목표가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한 삶은

자신을 향하기 보다는

남을 위한 삶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남을 배려하는 삶.

주의 인도하심이 있으면

주께 고정된 시각이 있으면

인생의 촛점이 이리 바뀔 수 밖에 없다.

 

 나보다는 남을 배려함.

그것 만이

인생 항해에 다가오는

어떠한 풍파에도

초연하고

힘이 있게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사도 바울을 보라.

오히려

죄수의 신분으로

남을 배려하지 않는가?

 

 

 

적용

1. 남을 이해한다.

. L 모를 위해 기도한다.

. P 형제를 위해 중보한다.

. 생각나는 모든 사람을 기도한다.

 

2. 회개한다.

 주님 이외의 것으로 욕심부리던 모든 것을 내려 놓는다.

깨끗하게 주님 만을 볼 수 있도록 기도한다.

 

3. 안되는 것 '주님께 도우시라' 기도한다.

 

4. 초연한 마음 가지고 인생을 항해할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시길 기도하자.

 소명.

 내 생각이 아니고

 주님이 허락하시는....

 

5. 불편 부당한 생각들 내려 놓는다.

 

6. 쉼을 기도한다.

 

7. 성경 다섯장 읽겠다.

 

 

 

기도

 

주님

오늘은

늦었습니다.

실은

시험에 들어있었습니다.

웬지 잘 모르지만

한동안 차분했던 마음이 뒤죽박죽이었습니다.

 

아마도 풍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생의 항로에

웬지 모를 바람이 불어 닥치는 것만 같습니다.

죄수처럼

그냥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주여.

지금은

바울님의 모습을 연상해 보고는

차분해졌습니다.

주님을 알기에

주님 이외의 모든 것이 헛되기에

주님의 뜻 이외에 가치가 없음을 알기에

아는 생각을 집중해서 겨우요.

 

주님

간구하옵는 것은

제 영혼이 변하게 하소서.

생각하지 않아도 될

변화를 허락하소서.

주님 도우소서.

저에게 부족한 것 아시지요?

제가 굳이 드러내 놓지 못할 부끄러운 기도아시지요?

아셔서

도우실 줄 믿습니다.

쉼도 허락 받게 하소서.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항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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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항해에는 나침판이 필요하지요....

 

 

 

나 비로소 이제 깊고 넓은 바다 간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 손을 주는
결코 놓치지 않으셨다
나 비로소 이제 폭풍우를 뚫고 간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약한 나를
잡아 주시는 그 분은 나의 주님

주 나를 놓지 마소서 이 깊고 넓은 바다에 홀로
내 삶의 항해에 끝이 되시는 주님이시여
난 의지합니다
날 포기하지 마소서 나 잠시 나를 의지하여도
내 삶의 항해에 방향을 잡아 주시옵소서

이 깊은 바다에 날 홀로 버려 두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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