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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나 (몬 1:17-25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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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나 (몬 1:17-25 )

주하인 2009. 10. 29. 15:23

 제 1 장 ( Chapter 1, Philemon )

 

 

 

주여

빚진 자

맞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당신께

 영원의 복을

빚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제 드릴 것은

어둠 속에 있는 

제 자신 뿐

 

주님께 드릴 것은

타는 듯한

제 마음 뿐입니다

이거라도 받으소서

 

지금 

주께

 올립니다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빌레몬은 사도바울을 '친구'처럼 대한다.

그만큼 친절하고 다감하게 대한다.

 

 

18.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게로 회계하라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가 혹시 빌레몬에게 부담 - 틀림없는 부담이다. 

종을 형제 삼으라니... - 이 되면 자신에게 갚으라 하신다.

 

 

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너는 이 외에 네 자신으로 내게 빚진 것을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네 자신으로 내게 빚진 것'

 

 바울님은 빌레몬에게 직접 글로써 자신이 오네시모로 인하여

빌레몬에게 질 빚을 갚을 것을 각서처럼 쓰는 한편,

빌레몬에게 '내게 빚진 것'이라고 한다.

그게 무엇을 말하는가?

 

'구원의 하나님'  '예수님의 복음' '십자가의 속죄', '천국 시민 자격'..

그것을 갚없이 받았으니 그게 바로

엄청난 '빚'을 지게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솔직히 사도 바울님이 계기가 되어서 말씀하시지만

우리 중 얼마나 그 구원의 사실을 기뻐하고 있는가?

나는 어떠한가?

지금은 좀 다르다.

감동적이려한다.

자주 마음이 울컥하는 느낌이 올라온다.

연습한 것도 아닌데도 그 구원이 참 감동스러워지고 있다.

솔직히 확...엄청나게.. 그런 것은 아니었었다.

 위의 사진은 밤에 기도원에 올라갔다 아내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밖에서 찍은 사진이다.

저녁에 '지지대'도 없이 싸구려 디카로 찍으려니

저리 흔들려서 촛점이 맞지 않고 노이즈가 많다.

최대로 잘찍은 것이 저렇다.

 하지만, 저기에 멘트를 달려하니

내 가슴은 흔들린다.

내 가진 것이 어찌 그리 없는지?

이 빚진 자가 주님께 갚으려 해도

내 존재는 아직도 어두운 '밤' 속에 있는 듯,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그게 죄송하고

그럼에도 초생달을 향해 가는 달과

짙은 검은 색으로 치장된 하늘과

그 밑에 비추어진 '등불'에 반사된 단풍의 색감이

참으로 아름다와 보인다.

순간 마음이 떨린다 .

그래...

저것이 내 주님께 드리는 현재의 내 마음이야 .

아직도 청명한 하늘 처럼

상큼하고 높은 영적인 경지의 나로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지는 못할 망정

아직은 내 속에 어두움이 잔존하고 있을 망정

나는 저 초생달의 아련함과

등불 밑에서 흔들리지만 그리고 얼마 안있으면 떨어져 버리고 말

단풍이 자신이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아름다운 색깔로

'조화'의 아름다움을

바로 곁에 있는 십자가 앞에 모아다 드리는 느낌.........

 '빚진 나'

그게 내가 저 사진을 옮겨 놓고 느껴지는 모습이다.

 

 사도 바울님은

'빚진 빌레몬'의 입장을 지적하고 싶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나에게 지금 부터 빚을 진 자들이 앞으로 잘해 !!!'라고 하지 않으셨지 않던가?

만일 그랬더면 그것은 정말 '감사의 빚진 마음이 아니고'

'빚쟁이에게 빚을 지고 쫓기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바울 님은 저 감사한 감사함을 빌레몬도 같이 공유하고 있음을 확실히 아시고 계셨을 것이다.

 

 

 

 

20.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그러한 추정은 빌레몬에게 '오.. .형제여'라고 감탄사의 최고로 다정한 표현을 쓰지 않던가?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우리모두는

예수님의 동생으로 형제가 맞다.

하지만 그 형제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진짜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나도 그렇다

머쓱하다.

아버지 학교에서 오랜 시간 같이 몸을 부닥치며 봉사한 분들을

'형제'라 부른다.

 그들을 '형제님..'이라 부르고 익숙해져 있지만 아직도 친형제 같은 느낌의 마음은 안든다.

그런 빌레몬에게 사도 바울님은 '오...형제여'라 한다.

그 감정의 공유가 살아 읽혀지지 않는가?

그래서 그는 그에게 '빌레몬으로 인하여 기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될것이라'는

단언적인 말을 한다.

얼마나 가까우면 저럴 수 있는가?

 

 

 

21.  나는 네가 순종함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보라.

순종함을 확신한다고 한다.

네가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 안다고 한다 .

교회에서 헌금하라신다.

부흥하는 교회.

당위성은 너무도 충분하지만 '행하라'하니 부담이 오려한다.

그래서 잠시 가만히 있다.

솔직히 첫 사랑으로 영접한 후 상당한 감동으로 ......................있기는 하다.ㅎ

그 감동을 알기에

사도바울님이 오늘 하시는 이 부담성 발언이 예사롭지 않게 느낀다.

 


 
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할지어다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님을 따른다.

하나님께 충성함은 하나님 만이 아니다.

이웃에게도 사랑을 베풀고 그들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동역자'를 품어야 한다.

사도 바울님의 감옥에는 사람들이 들 끓는다.

그들은 '인간관계'에 의하여 모인 자들이 아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사도 바울님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자들이다.

십자가를 통하여

이 세상의 것이 진실이 아님을 깨닫고

하나님 만이 진실임을 깨닫고

이 허상 덩어리 세상에서 진실의 끈을 붙잡고 있는 자들의 모임이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끈을 잡게된

빚진 마음을 가슴깊이 감사함으로 잡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 영혼의 공감이 없다면야 어찌 감옥에 있는 바울님과 교류하려 하였겠는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다 경험하시고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통증과 수치와 외로움을 끌어안고

오직

나를 위해

나를 구원하기 위해

나를 성령의 철저한 보호로 마지막 날까지 인도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길 선택하시고 그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살아왔고 어찌 살고 있으며

어찌 현재 이 시간 눈을 뜨고 있던가?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내 일생에서 얼마나 들었던가?

하루에 단 몇분이라도 주님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영혼을 채웠던가?

그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서

주님을 뵈올 때마다 '무엇인가 해드려야 할 것'이라는

선한 부담감이 얼마나 들고 있던가?

감사로 인한 눈물이 일듯한 아쉬움의 빚진 것 같은 느낌이 아니고

단지 머리로 이해하고 쫓기듯이 드는 강박관념이 아니고...

 선한 부담감이 맞다면

기도가 많이 늘게 될 것이고

이웃이 사랑스러워 질것이고

자신에 대하여 훨씬 부드럽게 될 것이 맞다.

감사함으로 이웃을 헌신하고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게 될 것이다.

그의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인격의 향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모이게 할 것이다.

그 자신은 기쁨이 넘치게 될 것이다.

부정적 생각은 사라지고 긍정적 생각으로 넘쳐날 것이다.

오늘 사도바울과 빌레몬이 보여주는

진실로 빚진 마음의 예수님께 빚진 자로서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강박적 빚진 개념의 사람에게는

짜증이 넘쳐나고 매사의 자기하는 일에 부담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영적 성장의 차이가있다.

그 차이에 따라

이 두 빚진 자의 개념이 나뉘어 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찌 그 차이를 구분하고 이루어 나갈 수 있겠는가?

열심을 내어 신앙 생활을 하다가도 보면

어느 순간인가 차가워지고 매너리즘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지 않던가?

그 열심이 강박적 열심인가 감사에 의한 자신도 모르는 열심인가 어찌 구분하는가?

그 구분을 하기 위해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가

그나마 그 열심마져 식어 버리지 않게 되던가?

참으로 구분하기 힘들고 따르기 힘든 것이 '믿음 생활'이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이 이것인 듯 싶다.

'기쁨'과 '감사'를 놓치지 않음.

그리고 서두르지 않음.

다른 표현으로 '내려놓음'이다.

내려 놓고 인도를 기다림이다.

기다림이 게으름하고는 구분이  되어야 한다.

그 기다림에는 풍성함이 따르게 되어 있다.

이전보다 훨씬 풍성한 나눔이 따르게 되고

풍성한 기쁨이 따르게 되어있고

주님 앞에 더 커지는 감사의 의식이 커져만 가는 것이다.

눈물이 많아지고 가슴이 떨리는 풍성한 감성의 폭이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감사가 커지고

그럴 수록 더 주님께 드려지게 되게 되는 것이다.

 

 오늘

'빚진 나'에 대한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 보았다.

나에겐 무엇이 부족하던가?

마음은 있지만 아직도 나눔이 부족한 듯하다.

남을 위한 긍휼함이 늘어나길 사모하지만

아직 그들을 위하여 철저히 헌신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에서 헌금을 말할 때 아직 온전히 마음이 열리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아직도 더 낮추고 그들을 기쁘게 해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묵상을 진행하는 동안 다시금 확인이 된다.

서두르지는 않겠다.

주님이 인도하실 때까지 기다리겠다.

하지만 난 늘 '빚진 자'임을 기억하리라.

주님께 생명을 빚진 자고

주님께 사랑을 빚진 자이다.

그게 나임을 잊지 않겠다.

나는 '빚진 나'이다.

 

 

적용

 

1. 나는 빚진 자다.

 100번 외운다.

 

2. 당직 설 때 기도한다.

  TV 안켜겠다.

 그 시간은 죽어가는 시간이다.

 

3. 책 읽겠다.

 주님의 허락하신 성장반 공부한다.

 

4. 성경 일곱장 읽겠다.

 

5.  만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웃겠다.

 

 

기도

 

 

주님

잊고 살았고 자꾸 잊지만

빚진 자 맞습니다.

주님께 생명을 빚졌고

주님께 축복을 빚졌고

주님께 현 위치를 빚졌습니다.

주님께 빚진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저를 어찌 아시고

이 추악하기 그지 없는

잠시 정신을 놓기만 해도 죄악된 생각,

음란하고 교만한 생각으로

담배연기 가득한 하숙방처럼

제 영혼을 더럽히고 넋을 놓고 있는 것 같은

이 추악한 저를 구하셨는지요?

어찌 그리 사랑하셨는지요?

정말 저는 주님께 해드린 것이

해드릴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찌 나를 구원하셨는지요?

그리고 죽을 때까지 날 성령으로 인도하실 보증을 하시었는 지요?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하기가 그지 없음에도

아직도 저는 순간 순간 부정적 생각에 죄된 생각에 넋을 잃고 있습니다.

조금 더 열심히 전도하게 하시고

조금 더 열심히 기도하게 도와주소서.

조금 더 열심히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게 하소서.

이제 간절히 바랄 것은

절 그토록 오랫동안 막고 있는 터부를 이제 풀어주소서.

주여.

제 자식들과 제 식구들 제 아는 모든 사람들

빚진 자의 개념을 같이 깨닫게 하소서.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유리하는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의 뜻과 멀리 가는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은 감사함이고 주님은 감동이고 주님은 눈물임을 잊어가는

이 어두운 세대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잠시 기도 한분 더 올립니다.

어제 수술하셨던... K님 .

우울증으로 많은 약을 드시고

약간의 자극에도 강력한 반응을 보이심을 보고 있으면서

그분의 내부에 숨겨져 있는 아픔을 전 읽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회진 때 그 분이 반응하시는

제 기도에 대한 숙연함으로 보면서

전 다시한번 확신할 수가 있었습니다.

주여.

왜 그런지 그 분이 잠시 떠올랐습니다.

빚진 자로  전도를 한 게 기쁘신 줄로 생각이 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그 분.

이제 십자가 앞에 내려 놓으니 구원하소서.

잊지마시고 꼭 잡아주소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빚이 너무도 많은

이 죄인 주하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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