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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음은 믿지 못하는 자들의 가련한 행위일 뿐이다[마9:18-3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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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음은 믿지 못하는 자들의 가련한 행위일 뿐이다[마9:18-34]

주하인 2014. 2. 8. 09:13

 

열심히

매일 살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들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영생

하나님

천국

그리고 생명

 

그들의 비웃는 열심은

그들의 발걸음을

약속없는 어둠으로

향하게 하지만

 

고개들어

하늘을 보게 될 때

그때는

온 대지와 우주에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역동을

보게 될 것이다

 

 

 

 


( 주하인 뚜엣 !    내 감은 두 눈에~♪ )

  비웃지 마세요. ㅎㅎ  )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NIV "My daughter has just died. But come and put your hand on her, and she will live"

       “제 딸이 조금 전에 죽었습니다. 오셔서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


 한 사람이

허겁지겁 (틀림없이 그랫을 것이다 .. 당연히도 ...) 예수님께 다가왔다 .

아마 그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밀치고 그랬을 것이다.

그러면서 말을 서둔다 .

 

 '내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

 

가슴이 아프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

그것도 아버지에게 딸은 더욱 이쁜 법인데 그 딸이 죽었다니..

그런데, 어찌 그는 딸 곁에서 '오열'을 토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뚫고 여기를 왔단 말인가?

아마도 정신이 나가서 뒹굴었어야 마땅한 일을.. .

그래서, 그 말이 더 가슴이 아프다.

"내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는 반 정도 정신이 나갔던 상태로 몸부림 치고 있다가

머리를 탁~하고 치는 인사이트가 있었을 것이다.

'아.. 그렇지.. 그런 분이 있었지.

 그분이 우리 동네에 오셨다지.. '

그리고는 그는 얼른 뛰어나갔을 것이고

그도 제어할 수 없는 힘으로 군중을 뚫고 '예수님 '앞에 나타났을 것이다.

주님 앞에 가는 동안, 그는 마음이 가라앉았을 것이고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확신에 차게 되었을 것이며

그의 어투는 마치 '윗분'에게 완성된 프로젝트'를 보고하는 직원의 어투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게 기쁘다.

 

' 내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이제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

 오셔서 손만 올려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살아나겠습니다"

 

아.. .

상황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 말,

그 뉘앙스.

거기에 실려 있는

바닥까지 내려갔던 처절한 절망을 경험한 후

실낱같은 빛을 밧줄 삼아 붙들고 올라오는 동안

어느새 가느다랏던 줄이 큰 동앗줄로 , 엘리베이터로 바뀌는 것 같은 체험을 하면서

예수 앞에 오자마자

그 빛이 강렬히 증폭되면서

드디어는 '구원' 받았다는 감격의 기쁨이 그의 온 정신을 사로잡게 된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말투가 저리 차분하고 객관적이게 보이게 된 것이다.

 

즉, 절망과 구원의 확신

그에 대한 철저한 '믿음'

그로 인한 '감동'의 기쁨이 그의 말투를 통해서 쏟아져 나옴이

수천년의 세월을 격하고

내 가슴에 감동으로 부딪쳐오려한다.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비웃더라'

너무나 다른 반응이 '곧' 나온다 .

당사자의 아버지는 저렇듯 '미련한 ^^;' 믿음을 지녔는데

세상을 잘~~살아온 거의 전부는 저렇듯 예수님을 '비웃는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믿을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비웃는다 .

비웃음은 '기적'을 보지 못한다.

비웃음은 남을 낮추어 보는 마음이다.

그를 낮춤으로 자신이 높아지는 듯한 착각의 행위.

 

 받아 들이기에 따라 '비웃음'은 적대적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비웃음을 받는 상대는 불쾌하다.

때로 그것은 좌절과 분노를 동반하게 한다.

비웃음.

자신과 타인에게 해가 되는 건강치 못한 영적 행위 !

그러기에 비웃음은 있어서도 안된다.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하지만, 주님은 아무 반응이 없으시다.

그렇다.

비웃음에 대하여 '불쾌하고 마음이 상할 ' 이유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선택이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피조물' 인간의 비웃음에 일일히 반응할 이유를 못느끼신다.

아이들이 놀린다고 어른이 반응할 것인가?

예수님은 그들의 비웃음보다는 '아이아버지'의 믿음에 반응하셨을 뿐이다 .

예수님은 '믿음'에만 반응하신다.

비웃음은 그 분의 근처에 도달치도 못한다.

 

 그렇다.

주시고자하시는 레마시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그 분은 내 죽은 영혼을 살리시는 분이시다

그 구원과 상관없는 자들의 비웃음은 스쳐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하나님 .

토요일입니다.

참.. 일주일이 빨리도 지나갑니다.

지난 해 요시간에

벌써 한해가 이만큼 .. 했던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또 일년 후 지금 여기까지 지내보낸 내 2014년을 이야기 합니다.

 

주여.

이땅에 ,

이 땅의 삶에

그리 미련은 없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소리에 일희 일비하고

분함과 기쁨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내 작은 마음의 흔들림을 느끼며

언제나 되어야 주님의 그 귀한 모습을 닮을 수 있을 까 생각해 봅니다.

주여.

오늘은 믿음과 비웃음에 대한 것을 대비시키십니다.

주여.

관리가 '비웃음'을 두려워 했다면

딸의 살아남을 보지 못했을 것임을 다시한번 상기해봅니다.

 

주여.

어차피 이 땅의 삶, 오십 몇년을 살아왔지만

아무 인생의 목표나 흥미,

주님 이외에 어디에도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

주여.

부디 오직 주님으로만 제 마음이 고정되게 하시사

저 관리의 절박한 믿음으로 절 채우시고

어떠한 세상의 비웃음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주님.

주님처럼 툭 쳐버리게 하시고

오직 하늘 만 바라보고 살게 하소서.

내 돌아갈 본향에 대하여만 기뻐하게 하소서.

이 땅의 잠시의 흔들림, 어려움, 곤란, 비웃음으로 인한 관계 문제....................모두

주님 다시 살리시어

영혼이 오직 주님의 생명 만으로 차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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