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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되기 보다는 불 같이 되길(약3:1-12) 본문

신약 QT

불 되기 보다는 불 같이 되길(약3:1-12)

주하인 2009. 11. 6. 13:18

제 3 장 ( Chapter 3, James )

 

산이

온통 단풍으로 

 불 같이  

타오르고 있다

 

그 불이

불이 아님이

얼마나 다행인가

 

깨어 있어

혀로 인하여

불타지 않도록 조심하자

 

기도하여 

성령으로 

불같이 타오르길 간구하자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5.  이와 같이 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는 곧 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에서 나느니라    
8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둘째가 드디어 어제 군대에 입소했다.

의경을 자원 입대 하고는

지난 몇개월 간 열심히 다이어트와 운동을 통하여

거의 20Kg가까이 체중을 빼는 등 열심을 보이고

교회에서도 열심히 기뻐하며 청년부 활동을 하는 등

당당한 모습을 보이더니

들어가기 전날이 수요일은 많이 힘들어 했다.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도 않고 눈물을 보인다.

 월요일 , 일부러 아빠인 나의 진료실까지

내 좋아하는 '피캄파이'를 사들고 와서는

'아빠.. 한개는 저녁 당직 서실 때 드세요.. ' 하고 갔다.

 이 아이.

지적 능력은 떨어지지 않는 데

클 때 부터 좀 묘한 구석이 있었다.

다섯살 가까이 되어서야 말 문이 트이고

초등학교 때는 왕따의 기억이 있던 아이다.

기억력은 비상하여 한번 본 것은 거의 줄줄 외우고

漢詩를 좋아하여 달달 외우고 다니며

영어 원어민 선생이랑 거의 프리토킹할 정도로 능력을 보이는데도

이상하게 시험을 보면 '영~~' 인 ..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답답하기도 안타깝기도 불쌍하기도 속상하기도......

첫째와는 너무도 달리

늘 물가에 내 놓은 어린아이 같은 심정이 숨어 있었다.

그런 아이가 본인이 선택한 대로 '재수 '대신 의경 다녀온 후의 장래에 대하여

정말 하나도 변함없는 목표를 믿고 일년 가까이 기다려 주었다.

어려웠었다.

남들은 다 대학가고 장래를 향해 달려가는데...

기다리는 동안 아이와 난 저녁마다 성경을 읽고

대신 아이가 선택한 대로 시간표를 짜서 최소한이지만

자신의 틀 안에서 생활하도록 유도하였다.

 돌아보면 일년 간 아이는 많이 차분해졌다.

속이 많이 든든해졌다.

마음 씀씀이가 한번씩 기쁨을 줄 정도로 감동을 주는 아이다.

 속이 상할 때 , 영적으로 충만하지 못할 때

아이에게 모진 소리를 해도

금방 나에게 다가와 '이 나이에 아버지와 사이 좋은 아들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며

이전에 보이지 않던 여유로움으로 아빠에게 다가오던 아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만일 단번에 아이가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더라면

지금과 같은 영적으로 심정적으로 든든한 아이가 되었을까.. 하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의 겸허함

고통과 고난의 의미를 체험한 어리디 어린 젊은 이...

이것은 지금의 세대에서는 불가능한 영성이다.

그래서 이제는 '아이'도 '나'도 묘한 확신 비슷한 자신감으로 차 감을 느끼고 있어왔다.

 그러던 아이가

한 달에 한번 있는 월요일 당직을 서고

화요일 응급 수술이 느즈막히 있어

수요일 퇴근 후에야 얼굴을 마주하게 되니

아이는 눈이 퉁퉁 부어 울고 있었다.

엄마도 울고 있다.

 '내일 있을 입대가 너무도 싫다'는 것이다.

 

'아..

아이의 옛 상처가 다시 들어나는 순간이구나.

이 아빠의 거친 말투.

초등학교 이후의 왕따 트라우마.

.............

대인관계의 어려움은 아이로 두렵게 만드는 구나..'

 

이..

혀......

말...........

 

정제되지 않은 거칠은 말은 사람의 영혼에 얼마나 상처를 입히고

그 사람, 특별히 사랑하는 자식들의 인생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던가..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그럼에도

내 영혼 속에는 훈련된 '생명의 말'들이 들어 있다.

 제일 좋아하는 구절.

'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약할 때 강함'이

날 위로한다.

그렇다

주님이 날 사랑하시고 우리 가족을 사랑하시어서 허락하신 아픈 과거다.

내 스스로 과거, 말의 아픔을 지울 수는 없겠지만

주님 십자가와 성령으로는 가능하다.

 아이의 아픔을 공감해주었다.

한참을 쓰다듬어 주고 공감해주고

아픔의 의미를 설명하였다.

아이는 정리가 되어 가는 듯 싶었다.

새벽까지 제 방에 같이 있다가 내 방으로 와 잠이 들었다.

 

  2시간 반이면 도착할 논산까지 차막힐 것 감안하여 일찍 출발했다.

논산 훈련소 연무대 앞.

들어갈 아들 들을 위하여 많은 부모들이 음식을 든든히 먹이고 있다 .

아들과 식사를 마치고 나니 1시간 넘게 시간이 남았다.

아들은 어느새 마음이 정리 되었는 지 표정이 담담해 져 있다.

엄마와 사진을 찍으라니

마치 여동생 안고 찍듯이 저리 껴안고 찍는다.

저리 다정히 찍은 적 없던 아들이다.

 

 

 

 

 훈련소 제한선까지 들어갈 때까지

제 엄마 손을 놓치 않고 들어가던 아이가

겨우겨우 참는 얼굴로

거수 경례를 두번이나 하고는 들어간다.

들어가는 뒷모습이 힘이 없어 보인다.

가슴이 아프다.

 

 

 

 

 

 

 아내는 들여보내 놓고도 한참을 저렇게 있다.

이제 가자는 소리도 듣지를 못했는 지

아들이 통과하여 들어간 건물 쪽을 하염없이 보고 있다.

 

 아내는 아이가 늘 부족한 듯 보여서

잔소리도 많이 하고 걱정도 많이 했었는데

그런 아이가 큰 눈에 그렁거릴 눈물을 참아가며

끝까지 손을 놓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에 경례를 하고 들어가는 게

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다고 한다.

 그럴 줄 알았으면...한다.

  

 

 

 

 논산은 내가 태어나서 한달 만 있다가

아버지의 직장으로 인하여 옮긴 탓으로 고향이긴 하지만

전혀 기억이 없는 고장이다.

그래서 아들을 들여 놓고는 논산 시내를 한번 돌아다 보았다.

중소도시가 그렇듯 큰 차이는 없다.

오는 길목이 부여다.

부여는 '백제의 고도'

거기도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고로 박물관과 낙화암을 들려 보았다.

낙화암은 다 알다 시피 '삼천궁녀'가 떨어진 곳이란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선 곳이 '부서 산성'이라는 곳으로

거기를 들어서서 야산을 넘어 올라가서 도착한 곳이 절벽이다.

그곳이 낙화암이다.

 

 그 산길에 '단풍'이 '불처럼' 피어 올랐다.

너무 아름답다.

만산홍엽 (萬山紅葉)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았다.

아직 녹색을 띠는 잎은 너무 짙은 생기의 녹색이고

주황은 또 극히 아름다운 주황색이다.

노란 색은 또 노랗다.

어쩌면 그렇게 파스텔 톤으로 아름다울까?

절정은 붉은 색이다.

타오르는 붉은 색은 정말 아름답다.

꽃이 있어 피워내면 저리 아름다울까?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타오르는 듯이 전 산을 덮어가는 데 있을 것이다.

 오늘.

'불'에 대하여 말씀이 나온다.

그렇다.

산이 불이 타면 그것은 아름답기는 커녕 지옥을 연상시킬 것이다.

지옥불.

하지만 단풍은 불같다.

'불이 아니고 불같이 타오른다  '

그렇다.

혀가 그렇다.

이 혀를 잘못 움직이면

그것은 불이 된다.

지옥 불이 된다.

 내 자식들.

그 들이 클 때 조금 더 자제 했더라면

아이들의 아픔은 훨씬 덜하지 않았을까?

고통과 고난은 인생의 필수이고

그들에게 주어진 고난을 통해 주님이 역사하심을 알지만

그럼에도 돌아보면 후회는 많다.

 훈련소 입소할 아이에게 지옥 불같은 고난의 말로 찔려가면서 성장하기 보다는

생명의 말로 자신감과 사명감으로 불탈 기회를 더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아이 들어갈 때 부모 만이 아니라

같은 사명을 지닌 친구들이 득실 대도록

더욱 생명의 말로 교육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가 많다.

 

 그렇다.

이 혀는 제대로 움직이게 되면

지옥불이 타오르는 대신

'불 같이 타오를 성령의 도구'가 된다.

어떤 차이인가?

어떻게 되어서 '불과 불같은' 의 차이가 생기게 되는가?

 그것은

내가 움직이는 가

주님이 움직이시는 가 차이다.

주님이 움직이시기 위해서는

나는 제어되어야 한다.

내가 제어되는 것은 쉽지 않다.

칭찬 받는 것 좋아하고

남을 정죄하기 좋아하고

남들의 칭찬이 있어야 사는 의미를 느끼는

이 '내' 자아가 어찌 해야 죽을 수가 있는가?

 ......

오늘

둘째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난 첫날에

아쉬워 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불 같은'말'

지옥불의 말을 묵상한다.

 

 

 

적용

 

1. 말 조심한다.

  남에게 선이 되는 말만 하겠다.

  가능하면 말 수를 줄인다.

 

2. 화를 내지 않겠다.

 

3. 기도한다.

 함부로 했던 말에 의해 상처 입었을 자들을 위해..

 

4. 성경 일곱장 읽겠다.

  아이와 같이 하던 통독이 그립다.

 

기도

주님.

마음이 안좋았습니다.

아이가 불쌍하기도 안타깝기도 해서 그랬습니다.

아이를 좀더 사랑과 생명의 말로 교육하고 가르쳤었더라면 하는 후회와 회개의 마음으로 그렇습니다.

주여.

이제는 돌이킬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어제 들어갈 때

아이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 안에서

오늘 이후로 받을 환난에 대한 대처법

그리고 '인생에 주어진 고난'으로서의 군 생활의 '의미'에 대하여

잘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해서 들여 보냈습니다.

그게 감사했습니다.

이제라도 주여.

아버지로서 제대로 된 방향을 가르치게 되고

사랑과 공감으로 아이를 안아 줄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입니다.

주님.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된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부터라도

저희 가정에 주님의 말씀 가운데

생명의 말로서 바로잡힌 가정이 될 수 있길 소원합니다.

그리되어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아들들.

가족.. 모두

죽을 때까지 주님의 말씀 가운데 인도받길 소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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