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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불끈쥐고(느2:11-20)

주하인 2006. 9. 3. 16:30

(느헤미야2:11-2:20) 

 

11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한 지 삼 일에

 40일의 금식과 애통기도 덕분에 주님의 은혜로 충만 했고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거기서 무언가 도움이 될 일을 할 큰 목표는 생겼고

그게 이루어 졌지만

그는 상세한 계획있이 온 게 아니었다.

 

삼일간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난 많은 면에서 철두철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었다.

특별히 불신자 시절.

그것은 어느 면에서는 실수는 덜했지만

부작용으로 많은 두려움과 혼란으로 날 꼼짝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어 왔었다.

 

오늘 느헤미야 선배께서 보이는 삶의 행태는

그 당시의 나에게는 전혀 이해 받기 어려운 면이었다.

그러다가 망하면 어쩌나?

아예 계획없이 하는 일은 망하는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예수님 믿고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엔 그게 어쩌면 당연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아직 삶의 현장에서 변화를 가져와야 할 상황에서는 두렵기까지는 하지만..

 

이게 어디까지나 믿음의 차이임이 가슴 속으로 내려오면서

느헤미야께서 보이시는 저런 어리석을 행동이

실은 사람의 마음의 단순화를 가져오고

그 단순화는 힘을 가져오고

힘에 더불어 이루어지는 주님의 역사하심을 볼 기회임을 최근에는 잦은 일상의 경험으로 인해

서서히 믿어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그 분의 아무 생각없는 듯한 3일간의 황무한 고향에서의 머묾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12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쌔 

( 만세... 주님이  응답하셨다.)

 

 느헤미야 선배의 또하나 기쁜 모습은

'내 하나님이 '라는 이 표현에 잘 나온다.

그 분의 하나님은 남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바로 '내' 하나님이시다.

너무나 친밀하다.

너무나 힘이있다.

너무나 정겹다.

기쁘다.

 

그 분이 마음을 감화하사 ..라 하셨다.

갑자기 어떤 영감이 머리 속에 '파~악' 하고 떠오르며

벌떡하고 두러누워 있던 침상에서 박차고 일어났을 것이다.

 어떤 계획을 세우느라 깊이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령께서 주신 민족에 대한 깊은 심려와

틈날 때마다 삐지고 나올 상심과

그를 충만히 제어하시는 주님의 기쁨으로 마음을 더욱 주님께 집중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불현듯

불같은 느낌이 머리에서 번쩍하고 스쳤을 것 같다.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이라는 계획이 아니다.

그냥 나가야 할 것 같은 영감...

 

주님은

우리의 일상이 이런 식으로 인도함 받기를 원하시는 것 같은 모범을 보인다.

 

코람데오란 별것이 아니다.

비록 뚜렷이 그 분처럼 인도 받지는 못하지만

돌아보면

상기한 내 손가락 타이핑이 나가는 대로 적은 현상대로 이끌린 최근의 몇년에

난 이전에 내 머리로 고민하고

내 심장에 심한 부담을 주고

알지 못할 두려움으로 내 심령을 조각내며 살아왔던 40몇년 보다 훨씬 더 힘있고 기쁜 삶이 되어가고 있는 중임을 느낀다.

아..

그것은 돌아보아 느껴지는 것이다.

현재

내 속 심령에 강하게 차오르는 확신 같은 것을 빌어서 쓰는 글이다.

 

어쨋든

느헤미야 선배가 이리도 맘에 드는 것은

절묘히 모든 증상을 들어보이고

그 증상을 인도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심을 보이는 실례가 되는 인물이란 점이다.

 

그 분을 보면

힘이난다.

 

 이 인도하시는 성령의 영감이 비록 밤에 일어나도 뚜렷지 않아도 기쁨으로 알아듣고 순종하며

오밤중에 밖으로 나가는 그의 행실이 참으로 귀하다.

 

아마

그의 마음엔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이

괜한 희망과 기대감으로 두근 거렸을 줄 모른다.

 

 

 

 

18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그의 이러한 코람데오 삶은

힘이 있는 증언을 한다.

 

"하나님은 선한 손으로 나를 도왔다.

 그 증거가 왕이 나에게 하신일이다.

 이제 일어나 힘을 모으자. "

 

 예수님 믿고 아주 많은 우여와 곡절 끝에 5년전 지금의 직장에 인도하심 받아 왔다.

와서 아주 좋은 신앙의 선배들을 눈앞에서 보아 오고 있다.

 

그 분들의 특성은 처음 볼 때는 이렇게 느껴졌다.

'왜 이리 유치해.

 정말 세상을 책대로만 보고 사는 사람들이군.'

( 두 주먹 불끈 쥐고 주님 뜻대로 살길 다짐합니다. )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조금은 과정된 듯하고 어리석은 지나친 긍정감이 서서히 힘있는 형태로 내 눈앞에 나타나자 내 속은 올바로 선 그들에 대하여 비교적 세상의 때가 많이 낀 초보 신앙인으로서 부러움과 질투로 변하여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한가지 다행인 것은

내 속에 '주님의 행사'가 현실로서 인정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질투는

믿음이 약한 나에 대한 좌절감이었지 인간인 그들에게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제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느헤미야의 그 힘있음이 이해가 가고 나도 가능하다는 긍정이 든다.

비록 난 예전에 비해 훨씬 못한 현실적 환경에 와 있으면서도...

 

 

 

19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그 중에서도 정말 많은 변화를 유발하신 하나님의 내 속에 대한 역사는 이것이다.

비웃음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보며 느꼈던 기독인에 대한 이질감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손가락질 하는 불신자와 옛적 나와 같은 미성숙 신앙인들에 대하여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아니..

아주 많이 감소해 있다.

 

그것은 평화를 의미했다.

평화다.

평강이다.

기쁨이다.

 

 

 

 

20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이유가 이것이다.

난 하나님이 보우하신다.

그 분이 날 형통케 하신다.

 

실은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면 예전보다 1/10정도 이지만 -실제로 그 정도로 줄었다.. .- 불안하다.

그럴 때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 당신의 뜻이면 이루소서.

 아니시면 막으소서.

 이루실 것이면 가르치소서. '

 

느 선배께서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라고 고백하는 게 참으로 친근케 느껴진다.

그러고 나면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나를 비교하는 내 속의 악한 소리도

사그러지고 만다.

 

이유없이 병원에서 힘이 있는 소리가 많이 나온다.

 

 

 

기도

 

감사하고 귀하신 아버지

어쩌면 제 속을 이리도 보여주시나이까?

느헤미야 선지자의 힘있는 믿음이

저로 하여 많은 부분 공감이 가도록 합니다.

그의 당연한 승리의 귀결을 알고 있기에

더욱더 감사하나이다.

 

일상에서

그 분을 닮을 믿음의 계기를 늘 허락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야 할 하나님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리더십이다.

- 조지 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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