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하늘의 하나님 앞에 (느1:1-11) 본문
(느헤미야1:1-1:11)
1 내가 수산 궁에 있더니
태풍 전의 고요처럼
내 인생은 어려서 부터 항상 그래왔다.
폭풍 전야는 외부적으로 보면 별 흔들림없이 보일 수도 있다.
마치 느헤미야 선지자께서 수산궁에서 관원으로 평탄한 것처럼...
그러나,
난 항상 불어닥칠 폭풍에 대하여 걱정하며 살아왔다.
실제로 인생의 격변을 많이도 몸으로 견뎌내기도 했고...
그러기에 일이 발생할 것처럼 느껴지거나
약간의 변화가 생겨도 긴장을 많이 해왔었고
그것은 오직 관심이 나에게 많이 향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일이 생기면
당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긍휼함과 그 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은 전혀 없었고
우선 그와 연관되어 발생할 내 개인적 고통에 대하여 지나치게 민감하게 생각하는 바가 없지 않아 있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기쁨보다는 불만족이 많았었고
여유보다는 긴장이 많았었다.
그냥 수산궁에 주저 앉고 싶어하고 그 안에서 똘똘 살아가고자 하던 삶의 태도가
예수님 믿고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성은 금방 변키 힘든법.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 서를 읽을 때마다
난 가슴이 두근 거린다.
예전에 보았을 시는 이중적여 보였던 것이 믿음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부러움으로 변하고 있다.
이제 그 실제 이유를 알았다.
그 분 느헤미야는 우리가 천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할 '성품'을 절절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긍휼함'
수산궁에 앉아서
그냥 '불쌍한 우리 백성들..'하며
깊은 탄식과 기도 몇번 만으로 '그들을 위로하소서'하고 중보기도 만 해버리면 될 것을
그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듣자마자 주저앉아서 울 정도로 즉각적이고 깊은 마음의 상심함을 보이고 있다.
이게 왜인가?
난 가능한가?
나랑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그러면서 현실의 상황이 유리같이 깨질지도 모르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아무 변화가 없을 편안할 상황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돈의 팔촌의 십육촌의 고통을 위해 항상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고는 어찌 가능할 것인가?
더구나 4개월 간(수일 동안 )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
그의 절절함이 얼마나 대단하던지..
그는
슬퍼서
절절 울었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앉았다.
금식했다.
기도했다.
우리도 이렇게는한다.
그러나
그가 오늘 감동스러운 것은
남을 위해
오랜기간
진심으로
금식까지
처절히
5 주여 간구하나이다
간구했다는 사실이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찌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나도 남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직은 어렵다.
기도하다보면
어느새
내 속의 것만 가지고 뒹굴고 있다.
몇번 눈물 글썽이면 끝이다.
적용
1. 오늘 하루는 남들을 위해서만 기도하련다.
. 30초반 젊은 부인이 난소 다 떼어내고 홀몬 요법하신다.
그 분에게 전도했다.
받아들이시기를 위해 기도한다.
. 아버지 학교에 들를 수 밖에 없는 가정 환경을 가진 오늘의 아버지들의 어려움을 위해 기도한다.
같이 봉사하시던 스텝들을 위해 기도한다.
. 전인 치유에 참여하는 스텝
참가할 수 밖에 없는 환자 분들.
전인치유가 예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치유의 현장이자 전도의 현장이 되기를 이해 기도한다.
. 우리 가족
. 아프신 분들
. 선교사
이채영
권영환
김삼
. 직장 내의 큐티 인원 증가와 전도
. 북한
. 노무현 대통령
2. 남들을 위해 울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길 위해 기도한다.
3. 주님에 대한 절절함을 닮길 기도한다.
기도
주님.
아침에 불끈하면서 나왔습니다.
크게 밖으로 표출은 하지 않았지만 속이 불편했습니다.
또 제 속의 다스려지지 않는 이기심이 작동을 했습니다.
출근하자마자
그리도 존경하고 닯고 싶은 느헤미야 선지자에 대하여 묵상이 시작이 되는 군요.
그 분의 이타주의
그 분의 사랑많으심
그 분의 주님에 대한 절절함을 닮길 원합니다.
이 세상 육신을 벗고
적나라한 영혼의 드러냄으로
우리 주님 나라에 갔을 때
나만을 아는 이 흉칙한 마음으로
어찌 살겠나이까?
날마다
마음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사랑과 겸손과 긍휼 부족함에 대하여
주님께 죄송하였었던 차
오늘
느 선지자를 통하여 보여주시는
그 깊은 영성을 감탄하나이다.
닮고 싶나이다.
주님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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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의 기도 (1:4~11)
예루살렘에 대한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울기 시작했고, 그 울음은 금식과 기도로 승화됩니다.
그는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는데 이 기간은 4개월이었습니다(2:1).
기도는 성도가 행할 수 있는 모든 문제의 유일한 대안입니다.
그는 크고 두려우신 하늘의 하나님의 언약에 의지해 “나와 나의 아비 집”의 범죄를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거기에 호소합니다.
어려움을 만나면 누군가를 비난하기 쉬운데, 그는 오늘의 형편에 직면하며 언약 공동체를 대표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하나님의 종들과 비전을 나누며 함께 기도합니다.
그 결과 그는 수산 궁이 출세의 자리가 아니라 사명과 비전의 자리임을 깨닫습니다(11절).
자기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응답임을 깨닫게 됩니다.
영적 리더십의 다른
요건들은 요망 사항이지만 성령 충만은 필수 조건이다.
- 오스왈드 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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