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이름 아시죠(느3:1-14) 본문
(느헤미야3:1-3:14)
1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2 그 다음은
12 그 다음은
14 분문은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찌부두둥하다.
이유없이,
아니 이유가 있기는 하다... 내 속의 두가지 생각..
그로 인하여 마음이 밝지 못하다.
'주님.. 쉬고 싶습니다.'
이게 자주 나를 엄습하는 오래된 바램이다.
그냥 아무 조건 없이 날 받아주는 곳에 들어가서 내 원껏 쉬고 싶다는 생각....
주님을 믿고
그 분의 쓰다듬으심에 여기까지 왔다.
그럼에도 가끔, 가끔 옛 욕구가 몸을 비집고 나온다.
월요일
정말 일어나기 싫다.
그래서 그냥 아침 큐티도 빼먹었다.
집사람의 깨움도 듣기 싫어서 의도적으로 못들은 척 8시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아침에 나와도 그리 즐겁지 않다.
기도하고 묵상하고 이웃에 대하여 중보하고...
당연히 하고 하면 기쁨을 주시기 때문에 해야만 할 일들이 그냥 알면서도 하기 싫다.
누가 날 알아주었으면..
그리고 위로 했으면...
실은 이러한 바램조차 뚜렷지 않고 가끔 나의 삶을 점령 당한 채로 살아온 날이 많았었다.
그러다 보니
힘있게 살다가도 가끔 힘없이 주저 앉아 가만히 있는 날이 종종 있어왔다.
그럼에도 무거운 눈을 들어
묵상으로 눈을 돌리니
계속 사람들의 이름이 되풀이 나오면서 '그 다음.. 그 다음...' 한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오늘, 날 누르는 힘없음과 다른 힘있는 사람들의 이름.
그런데
그 분들이 힘있던 분들인가?
아니다.
느헤미야께서 오시기 전에는 전혀 비전이라고는 없던 자들이다.
그런데 그 분이 오심으로 해서 변화가 있다.
그런데
그들이 대단한 일을 한자들인가?
아니다.
그냥 힘없고 아무런 장래없는 환경에서 그냥 느헤미야의 비전에 끌려 그냥 별 인생에 대단치 않을 성전 건축에 동참했을 뿐이다.
그냥..
그리하여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버렸다.
그 수없는 역사 속의 기독교인 들 중에
누가 성경에 과연 기록될 사람들이 있었단 말인가?
주님의 강권적 선택에 의한 12사도와 그 사도 곁에 우연히 있었고 동시대에 살면서 그들의 행로에 존재하였고 성령의 감동에 대한 반응으로 주님의 일에 참여케 된 몇몇 사람들 이외에..
역사책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일터..
오늘 보이는 사람들의 이름은 역사가 스러지고
천년왕국이 이 땅에서 새롭게 새 역사를 쓸 때까지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기록들이다.
주님은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셨다.
무기력한 삶에 힘을 주시고 그들에게 하나하나 거룩한 이름을 불러 주셨다.
" 내이름 아시죠"라는 CCM곡이 있다
얼마 전 교단 사경회에서 초미니 교회인 우리 교회에서 3명이 보컬 형성해서 나가서 히트를 친적이 있는 노래이다.
가사가 이렇다.
" 나를 지으신 주님 내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 주셨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내이름 아시죠
내모든 생각도 ... ♪ "
이 가사가 마음에 왜그리 닿던 지...
그 젊은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난 그곡이 단 한번의 들음으로 선택을 하게 되었다.
비단 나 뿐이 아니리라.
이 땅에서 사는 모든 자들.
특별히 40대 이상의 중년의 삶들은 내 몰리고 있다는 느낌으로 살것 같다.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이 땅의 발전을 위해서 가정의 안녕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다가 이제 사회에서 서서히 관심을 잃어가고 잃는 세대들.
그들은 자신의 존재가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허전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남은 힘으로 극구 부인하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가슴 한 구석이 텅빈 듯한 느낌은 어쩔 수 없을 수 있다.
이제 아침에 사람들의 이름의 나열을 보자마자
아..
주님이 기억하시는 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 삶이 이유없이 무기력하고 공허하고 쉬고 싶은 생각으로 차는 상황에서도
주님은 주님을 놓치만 않으면
느헤미야 같은 분을 통하여서라도 위로를 하시고
의미있는 이름을 불러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그 생각이 비단 머릿속의 생각이 아님은
늘 묵상을 통하여
삶의 궤적들을 통하여
자주 든든하게 하는 심령의 뿌듯함을 통하여
확신이 든다.
힘을 내자.
천국의 생명책에 기명되고
그 분 뵐때
날 안으시며
'수고했다.
김모야...'라고할 그날까지..
꽃이란 시가 한동안 무척 유행했었었다.
작자의 의도일 줄은 몰라도
'그'에 주님을 대치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 올려본다.
- 김춘수-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늘 인도하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전 힘이 납니다.
주님이 전제되지 않는 삶은
이제
생각하기도 싫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 감사하나이다.
제 이름을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절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름을 불렸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이 곁에 계셔서 감사합니다.
늘 절 격려 하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 사람이 열 사람의 일을 하느니 열 사람이 각자 일을 하는 게 낫다.
- 드와이트 무디
'내 이름 아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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