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불과 불꽃 ( 오1: 10-21 ) 본문
제 1 장 ( Chapter 1, Obadiah )
별거 아니라고?
보잘 것 없는 나팔꽃 줄기라고?
꽃도 아니라고?
그렇다.
그렇지만
하늘을 꾸미는
살아 있는 곡선이다.
나는...
나는 불이다.
나의 자식들은 불꽃이다.
그게 우리의 운명이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그렇다.
그렇게 되고
그렇게 보일 것이다.
난
확신한다.
10.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을 인하여 수욕을 입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11.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늑탈하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었느니라
죄의 더러운 점.
죄를 짓고 나면 찝찝한 것이 영혼이 불쾌하다.
사람은 내성이란 게 있다.
약을 먹어도 점차로 복용량을 늘여야 한다.
죄를 지어도 가책은 점차로 안생긴다.
그렇지만 죄진 영혼은 '평강'이나 '평안'의 단어를 느낄 수는 없게 된다.
포학
싸나운 게 '늑대'나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사자는 점잖기나 하지..
그 포학은 포학을 당하는 자들에게는 심한 아픔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포학을 부리는 자신에게도 괴로움을 가져온다.
오늘 묵상에서는 '포학을 인하여 수욕을 입고'라 되어 있다.
어제그제 아들에게 포학을 부렸다.
아이의 게으름이 답답해
아이의 장래가 걱정이 되어 지켜보며 기도하던 중
이 .. 포학한 심사가 견디지 못하고
아이가 컴퓨터 앞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잔소리를 시작하였다.
아이는 당연히도 변명을 하고
난 순간 이 참지 못하는 '비평'의 프로그램이 작동하였다.
아이에게 교육보다는 순간 높은 목소리의 질타가 나오고
아이의 아픈 부위를 들추어 냈고................
아이는 힘들고
나도 힘들고......
오래 잘 참고 인내하고 아이에게 선한 방향을 제시하다가도
난 이 포학에 걸리면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럴 때 난 내 스스로 11절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재물을 나누기 위하여 제비 뽑고 서있는 저 외국인의 추악한 모습.
정의나 평안이나 구원이나 ..... 정말 귀하고 선한 경험들은
아예 생각도 꿈꾸어 보지도 못하는
절망의 지옥 백성의 감정을 가지고
눈은 탐욕으로 희희 낙낙하고
입은 더러운 욕심의 침으로 뚝뚝 떨어지는 듯...
다음 날인 어제 아침에 일어나려니
갑자기 오래 괜찮았던 허리가 묵직하더니 너무 아파온다.
죄탓인가 보다.
인생의 어려움이 모두 죄탓이라 생각하기는 어이없는 생각일 지 몰라도
난 주님을 인식하고 내 죄를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죄'의 결과인 내 허리통증을 받아 들였다.
감사한일이 아닌가?
정말 주님을 잊지 않는 도구로서
내 회개를 재촉하는 표시로서 주님이 내 약함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것으로 받아들이려는 나의 인식이
그나마 아침에 위안이 된다.
무거운 마음과 무거운 허리를 끌고
겨우겨우 진료실 의자에 앉아 블로그를 들여다 보니
처음 보는 '아이디'의 블로거들이 많이 와 있다.
어느 블로그에 들어가니 '발칙한 큐티...삶'으로 되어 있는 블로그가 있다.
아들의 사진이 보인다.
아이의 글이 눈에 확들어 온다.
자신의 가슴앓이를 적나라하게 써 놓았다
정제시켜 썼지만 내가 그리도 주고 싶지 않은 상처를
난 아이에게 자주 주었던 것이 들통나 있다.
가슴이 미어진다.
'회개'했다.
회개란 내 고민을 주님께 고백하고 맡긴 후
잊어 버리는 것을 이야기 하지만
내 잘못으로 타인이 상처를 입는 다는 면에서 가볍지만은 않은 죄가
'포학'이다.
그게 더구나 가족 간에 그렇다면 얼마나 짐으로 다가오는지
처음 구절의 수욕을 입고 멸절 되어 버리는 듯한 마음이 아닌가 싶다.
한편으로는 저런 식으로라도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아이의 대응 방식이 감사하다.
그 순진함과 건전함이..
왜 나는 순간순간 믿지 못하고 포학이 올라오는 고..
아이에게 전활했다.
아이는 엊저녁 비록 거친 소리로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빠에게 들은 '장래'에 대한 문제를 순종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일을 했다한다.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허리는 빠개지는듯이 아프고
수술 환자가 너무 힘든 케이스라서
저녁 10시가 다되어서야 수술이 끝났지만
마음이 편하다.
내내 주님 십자가 앞에 회개하는 마음을 유지하려는 노력 탓이다.
늦게 집어 들어가 아이와 다양한 이야길 했다.
아픔은 잊지만 곧 다져질 것 만 같은 느낌이다.
18. 야곱 족속은 불이 될 것이요 요셉 족속은 불꽃이 될 것이며 에서 족속은 초개가 될 것이라 그들이
그의 위에 붙어서 그를 사를 것인즉 에서 족속에 남은 자가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
오바댜 書는 힘들다.
내용이 계시적인 부분이고 시작이 이방백성인 에돔 등을 중심으로 시작해서
그리 감흥이 안든다.
더구나 이 게으른 영적 상태가 그리 집중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기전 회개기도를 많이 해서인가?
포학으로 인해 짖치던 죄책감과의 싸움보다는
'회개로 깨끗해짐'을 체험하는 마음으로
장래를 기대하는 마음이 소롯이 돋나보다.
불과 불꽃 부분에 눈이 머문다.
야곱
요셉
아버지로서의 야곱
아들로서의 요셉
아닌 듯하면서도 난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그들의 장래를 생각하면 저대로 두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내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무겁게 했던 것이 맞다.
주님이 내 인생에 간섭하시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내가 짊어지려 했었다.
이제 많이 가벼워진 상태에서
말씀에 나오는 구절이 힘이 될 때가 많다.
불이 그렇고
불꽃이 그렇다.
아들들과 나는 불꽃이고 불이다.
악을 사르는 불이고 불꽃이다.
아버지는 '불'의 전체를 말하는 '불'이고
아들은 그 불의 윗부분 끝쪽에 튀어 오르는 불꽃이 맞다.
아버지는 아들이 힘차게 피워올리는 불꽃이 되도록 든든한 불이 되어야 한다.
힘이 있는 불이 되어 그들을 밀어 올려야 한다.
불은 쇠를 녹이고 불순물을 뽑아낼 수 있다.
더러운 것을 태워 똑같은 재로 만들어 낸다.
오늘의 불과 불꽃은 에돔을 태워내는 불꽃이다.
사단.
세상의 어두움.
세상의 유혹.
비틀어져만 가는 왜곡된 가치들을 태워 버리고
그나마 이 어두워 져 가는 세상에 올곳이 서 있을
불이고 불꽃이 되어야 한다.
그 길은 쉽지 만은 않다.
많은 것을 태워 내고
아버지로서 꺼지지 않도록 계속 받쳐 주어야 한다.
난 말씀으로 그 꺼지지 않을 불씨의 에너지로 삼았다.
지금은 아직 연기가 많이 나는 불인 듯 싶지만
넘어지고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일어나는
활활 타오르는 불이 되리라.
그래서 내 아들들이 주님의 성령 안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피워올리는 것을 보리라.
아들은 연단을 받는 중이다.
난 꺼질 듯 물뿌리듯 내 영혼에 뿌리는 사단의 포학을
회개를 통해 다시 말려 버리고 있다.
불꽃을 살려 내고 있다.
이제 결단의 나무 등걸을 내 불 속에 많이 집어 넣어야 한다.
그게 나 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 자식에게서 믿음의 요셉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그들이 목사가 아니어도
일상에서 주님과 동행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 불꽃이 되길 바란다.
적용
1. 회개 하리라.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은
회개를 통하여 정결해진 영혼으로
성령의 힘을 받아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성화되어 주님곁에 오라는 뜻이시다.
2. 나는 불이다.
사단의 원리를 말씀 안에서 태운다.
비록 수도자는 아니라도
난 내 일상에서 그렇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꺼질 듯하면 다시 타오르는 불이다.
3. 난 불꽃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타올라야 한다.
부족한 내 믿음이지만
난 내 자식들의 진리의 삶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들이 피워올릴 불꽃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기도한다.
성경 열심히 읽는다.
4 성경 일곱장 읽겠다.
기도
주님 회개를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분량의 적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받아 주시고
영혼을 정결케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여.
간절히 소원할 것은
나의 포학으로 인하여 자식들이 겪었을 고통을
이제는 씻어주시고
그들의 마음에 연단으로 승화되길 소원합니다.
아울러 바라올 것은
나의 불 같은 삶을 허락하소서.
열심히 타올라서
내 자식과 이웃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피워올리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죽을 때까지 묵상과 적용과 변화를 잊지 않도록 하소서.
내 아이들이 불꽃으로 내 뒤를 이어
더 큰 성령의 타오름으로 타오르게 하소서
간절히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올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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