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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위안을 위안이 소망을 ( 고후1:1-11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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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위안을 위안이 소망을 ( 고후1:1-11 )

주하인 2009. 8. 1. 10:15

제 1 장 ( Chapter 1, 2 Corinthians )

 

 

이 꽃.

자연의 조화의 산물인 이 꽃이

어찌보면 흉물스러운 도시배관 표지판 앞에 피었다.

안 어울리는 이 조합.

그러나 어울린다.

이 꽃.

자신의 처지를 부인한다면

아름다와 보였을 까?

 

그러나

그냥 그렇게 피어나

그냥 그렇게 인내하니

또다른 아름다움이 보인다.

 

그렇다.

남을 위해 주를 위해 인내하면

고난은 더 이상 고난이 아니다.

그것은 '소망'이 된다.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게 어디에도 없다.

알지만 가끔 의심될 때가 없지 않아 있다.

 오랜 고난

심한 고난 때 특히 그렇다.

'주님은 과연 나같은 것의 아픔은 알고는 계실까?'

' 이런 것도 주님의 원하시는 고난 안에 들어가기는 할 것인가?'

' 난 버려진 것은 아닌가?'

 

 하지만 그 때도 그렇다.

주님의 뜻이 아닌 것이 어디에 있을 수 있는가?
나의 나된 것은 모두 다 주님의 뜻 안에 허락된 것 맞다.

비록 이 좁은 가슴과 무지한 머리로 알 길은 없어도...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주님의 은혜와 평강 만이 우리를 숨쉬고 살아있을 수 있게 한다.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그 분은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위로의 하나님' 맞으시다.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모든 환난.

환난을 없애실 수 없는 분이 주님이신가?

 환난 중에 위로.

능히 위로 한다니 ..

겨우 환난 올 때 위로 만 해주시는 분이 전능의 하나님이신가?

 

 초두 부터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쓰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은혜로운 하나님이신데

이러한 어울리지 않는 괴리를 어찌 이해하여야 하는가?

 '고난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 들이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러나 고난도 고난 나름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수십년을 되풀이 되는

누구도 이해하는 사람 없는 고난이 되풀이 되어도

그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가?
 나도 그 고난 중의 한 사람이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고난'을 뚫고 이제 겨우 나른한 회복의 기쁨을 맛보고 있는 환우와 같은

회복기의 '위로'를 맛보고 있는 참이다.

 고난 중의 위로.

그 위로에 주님의 인생을 운행하시는 깊은 비밀이 있다.

그러나,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위로의 놀라운 은혜를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의 선택이 필요하다.

' 고난은 인생을 사는 누구에게나 받을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뜻이고

  그 고난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들인다'라는 결정이다.

 말은 쉽지만 쉽없는 고난 속에서 저러한 선택이 어찌 쉬울 것인가?

절대로 쉽지 않다.

하지만 선택하는 순간 은혜와 평강이 오고 '위안'이 넘치게 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난.

고난으로 따지면 그리스도의 고난과 당할 고난이 어디 잇겠는가?
남의 십자가 고난보다 고뿔이 더 관심사인 인간의 심사이지만

손과 발에 못찔리고 수시간을 피가 빠지는 열사의 십자가 고통.

어찌 ..............

 

 고난을 우리만 당하게 하시지 않으셨다.

주님은..

직접 고난을 당하셨다

그리고 위안을 말씀하신다.

그것도 넘치는 위안을 말씀하신다.

 소망이고 희망이다.

 

 


 
6.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고난이 자기에게만 관계된다면 참 견디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고난이 '남'을 위한 이유도 된다면...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해가 된다.

'고난'을 인내하고 얻는 '위안'의 체험, 그 은혜와 평강의 체험이

남을 위한 것이 된다면  고난을 견딜 훨씬 뚜렷한 이유가 된다.

 위안을 통하여 얻어지는

그 놀라운 은혜와 평강의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것.

 하나님은 고난을 주신 이유가 고난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 고난을 하나님의 뜻으로 인식하려는 훈련을 시키실 목적이 있으시고

그 선택을 통하여 주시는 위안을 통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시며

그 과정에서 주어지는 인격적인 성화를 결과로 얻게 하시고

또한, 거기서 얻어지는 체험을 통하여 주님과 더욱 가까이 되고

이웃에게 자신의 경험 즉,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증거를 나누고 전도하게 하시는 데

그 목적이 있으시다.

 나도 안다.

그러나 , 아직도 '남을 위한 사랑'이 절절히 솟아나지 못한다.

죄송하다.

 한걸음 더 나가기 위하여

고난을 어서 넘어서기 위하여서는

'남을 위하여 ' 이 고난을 넘어서야 한다는 결심이 필요하다.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사도 바울은 위의 원리를 확실히 아시는 분이시다.

나도 어느 정도는 안다. ^^;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아.

가슴이 아프다.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의 고통.

저 절대의 고통 속에서 이겨낸 그 사도 바울님의 흔들리지 않음이 귀하다.

 알아도 벗어나지 못할 그 유혹.

40일간의 금식 기간 중 예수께 다가온 사단의 유혹이 생각난다.

 

 고난을 넘어서

주님의 위안을 체험한 자 만이

오직 주님 만을 의지할 수 있다.

 나는 어떤가?

아직도 적당 주의는 없던가?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고난을 주님의 위안으로 넘어선 사람들에게는 '은사'가 생긴다.

그 은사가 어떤 것이든 

오늘 묵상에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고난과 주님의 위안을 통한 연단'을 통해 정결해진 자들에게는 

주님이 허락하신 '선'한 은사가 생긴다.

이 나이의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

 난 이리 느끼고 있다.

정말 내 나이에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지는 이 은사의 개발은

고난과 위안에 대한 주님의 원리 안에

나도 모르게 순응하고 기다려 졌던 -기다린...이 아니다. - 결과물이다.

 이제 정말 나에게 필요한 또하나의 도전은 이것이다.

남을 위하여 내 고난을 기쁨으로 기다리려는 선택.

남을 위한 다는 것은

나의 정말로 아무 쓸모 없고 창피할 것만 같았던 '고난'의 이유가

실은 남에게도 유용한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며

그것이 '사도 바울'이 전 인생을 걸고

주님의 복음을 전파한 그 큰 소명으로 바뀐 만큼은 아니어도

내 인생을 여유롭고 풍요롭게 이루어 나갈 '소망'이 되길 바란다.

 

 

 

적용

 1.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신 것이 하나도 없다.

  지금껏 내 인생을 어렵게 만들어 온 것들.

그것은 철저히 주님의 뜻 안에 있음을 믿는다.

묵상한다.

 

2. 내 고난과 그에 반하는 '위안'은 남을 위한 주님의 뜻 가운데 있다.

 내 고난과 이겨낸 과정은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위안이 너무 감사하다.

 

3.  은사.

 이웃을 위해 쓰라는 주님의 뜻이다.

  주님이 원하시면..

 

4.  괜히 과거의 속감정들이 올라오려 한다.

  주님 앞에 내려 놓는다.

 남에게 나의 감정을 맡기지 않겠다.

 난 주님 안에서 성령의 열매가 주시는 감정이외 의 것은 배격한다.

 주님의 열매만을 선택한다.

아무렇지 않겠다.

 

5. 성경 일곱장 읽겠다.

 

 

 

기도

 

주님.

너무나도 잘 아는 구절입니다.

그럼에도 몇가지 소득은

내 고난 만은 너무 특별하여 주님이 모르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쩌면 유치한 생각이

날 잡을 때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모든 것 주님의 뜻 안에 있음을 믿으렵니다.

힘을 주소서.

은혜와 평강으로 절 잡으소서.

주여.

 알게 모르게 또 슬그머니 옛 감정들이 올라오려 함을 느낍니다.

속상함.

억울함.

짜증남.

......

주여 주님 앞에 내려 놓으니 주님 받으소서.

절 붙드셔서 주님의 위안 가운데 머물게 하소서.

간절히 소원할 것은

남을 위한 긍휼의 마음을 넘치게 주소서.

자꾸 올라오는 악한 스침을 잘라 내소서.

주님의 뜻 안에서 평강과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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