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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하지만 가능함을 위하여[막12:35-4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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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하지만 가능함을 위하여[막12:35-44]

주하인 2024. 3. 18. 07:31

부제) 오직 성령으로 감동되면 다 이해가 되어지고 기뻐진다.

.

 

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솔직히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가?

 공관복음에도..

 

분명코 육신으로는 '다윗'의 계보이지만

 

 

36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성령으로 감동되'면 달라진다. 

 

당연히도 '하나님의 아들'이 어찌 인간 다윗의 자손이 될까?

 

 하지만... 다윗이 감동하여 이리 말하지 않았다지 않으시는가?

 

 믿음.

기독교.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신 것....

이 비가역적이지만 가역적인 원리.

사실.

 

믿어야 하지만 누구에게나 믿어지지 못하는 원리.

믿음을 통해서만 믿어지는 원리

믿음 조차도 주께서 허락하셔야 믿어지는 ... 

주여.. 부족한 믿음 조차... 에 숨겨진 

이 완전한 원리.

 

 오직 주님 예수님의 선택으로 

보혜사 성령님의 인치심,

감동으로만 믿어지는 그 원리.

그제야 하나님이 하나님이심,

여호와 

오직 온 우주에 홀로 하나이신 분이 믿어지는 원리.

 

삼위일체 하나님이 

왜 그러하신지..............

도저히 인간의 이해의 범주에는 들어오지 않지만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그 원리..........

 

그게 .. '성령으로 감동'되어 이루어지는

기독교의 진정한 원리 아니던가?

 

 

 믿어지지 않지만

믿어짐.

믿어짐 자체가 '축복'의 정수인 원리 .. 말이다 .

 

 그때부터

부활

천국

영생

축복

평강

평안

기쁨.............의 가능성들이 

무한정 가슴으로 쏟아 들어와지는 원리.. 말이다. 

 

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아직도 잘 이해는 되지 않는 구절이지만

그럴 수도 있음이 이해되는 

역시 이해되지 않지만 이해되어가는 구절 중 하나..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는 

즐겁게 들을 내용이 .. 아니거늘 

많은 사람이 즐거워했다는 것은

'성령으로 감동'되면 모든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것임을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다 이해했다는 이야기인데

그것 조차도 '성령의 감동'이 절절 넘치지 않으면 

호산나 호산나 하다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향해 '손가락질.. 돌.. 저주'를 날릴 

저 어이없는 인생들의 저러한 모습이 과연 이해가 가는가?

 

모두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해가 가는 

'성령의 감동'안에

성령의 감동을 위해

성령의 감동으로 (그러고 보니 by the, for the , of the.. 하는 링컨 님의 말이 생각난다.ㅎ)

잠시 겠지만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주님의 뜻가운데 

깊은 신앙의 경지로 나가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무슨 말씀이신가?

 

 어제 .. 자기전 잠깐 기도하려 앉았다가

아침 부터 '목숨바쳐.. .마음.. 뜻.. 힘을 바쳐'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시던 말씀이

이제 눈에 띄게 현격히 다가온 시대의 '마지막 현상'.. 

AI와 로봇과 ... 들의 시대에

'하나님'과 '과학'의 구분을 경계짓기 힘든 일들이

정말 이제 부지기수로 눈앞에서 벌어지며

믿음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때는 대 '물질'적 뿐 아니라 영적인 '파멸'의 시대에 가까와질 것 같은 

그런 절실한 마지막 시대가 될 거라는 두려움이 몰려오며

그러기 위하여 '목숨을 거는 하나님 사랑'을 

지금 부터라도,

하나님 나라에 가깝기를 사모하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음을

묵상하게 하시었다. 

 

 그 연장선 상 아니실까?

그 답이 아니신가?

'성령으로 감동되어'... 

다윗께서 

다윗의 수천년 후 자손이신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함.........

그 원리 ...말이다. 

 

육신으로는 '후손'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이시자 '그리스도'이신... 

영과 육신을 분리하기 힘든 우리에게

영육혼의 존재로 이 땅을 살아가며

드디어 눈에 보이는 

'예수 재림' 후 '대 환란'.. 7년 대환란이 눈 앞에 뜨이게 다가온

이 시대에 

더욱 절절히 '성령의 감동'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러기 위하여 

목숨을 걸듯이

주님을 사랑하여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여야 한다. 

그모든 것 불가능하지만

그 모든 것 또 가능하다 .

 

 죽는 것도 두렵다

사는 것도 그렇다 .

이처럼 현상 유지라도 하는 것은 지겹다

이렇게라도 사는게 꿈같은 그리움일 수도 있어진다

죽고 싶지 않다

죽어 주님 곁에 가고 싶은게 소원일 수도 있다. 

..........

 

이 놀라운 두 '현상'이 

바야흐로 눈 앞에 와 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

더 기도해야 한다. 

 

 주께서 허락하신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

주님이 몸바쳐 돌아가신 이유이신 

내 이웃을 내몸 같이 사랑하고 

'죽도록, 마음을 다하여' ... 주님을 사랑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더 기도'해야 한다 .

이땅을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이 땅을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또 다른 방향임을 알아야 한다 .

이 땅을 살되 천국을 살아

다가오는 모든 어려움

현재의 그 어떤 지옥 같음조차

'감동'으로 이어지게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성령 충만'해야 한다. 

성령 충만하면 '즐겁게' 된다. 

 내 마음의 장난과 착각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즐겁지 하나도 않을 상황'에서

당연하게도 즐거워지는 

당연한 원리 안에서 머물수 있게 된다. 

그게...진리이고 원리이기 때문이다. 

 

오직 성령이시다. 

오직 그러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과부'가 즐거이 '전재산'을 내민 것처럼

그리 되어야 한다. 

 포기해야 한다...가 아니다. 

투자가 아니다. 

그냥.. 기쁘고 감동해서 그렇게 되고

그 나머지 인생이 

과연 그런 만큼 더 많은 재산으로 보응 받던지

하나님 나라에 직송되어지든지 ^^; 그건 우리가 알 수가 없지만

주님께서 어찌 그 여인의 지금 상황보다 더 나아지지 않았으리라고 

단연코 불행한 예상을 할 수 있을 것이던가?

 

우리는 안다 .

수없이 많은 간증들과 

내 스스로의 인생을 통해서라도.. .

스파크 튀듯 '간증의 기억'들로 남아 있는

그 '성령의 임재 기억... 그 감동'의 순간들이 이어져

오늘날 

단 한번도 예상해보지 못했던 

지금의 나.. 가 있다. 

 

 나.

감동으로  돌이킬수 있다. 

모든 것 '주님의 은혜'다..

이후도 그럴 거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의 감동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더욱더 '사모'하다보면

이후의 모진 '대환란' 조차도 '감해주시고' 

그 안에서 '믿음을 놓치지 않고'

진리이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할렐루야다. 

 

 

 주님.

바야흐로 '적그리스도'라는 개념이 

눈에 띄게 현실화 되어간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

 

 계시록적 시대 .. 말입니다. 

그게 언제일지 전~혀 주님의 영역이시라 알 수는 없지만

대환란의 중반이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 이적들을 행하는 '과학'의 끝없는 발전을 통한 

거짓 이적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들의 '인간의 모든 것을 다 아는 ' 

인공지능들의 무지한 속도의 발전은

'하나님 나라'.. 

예수님.. 이라는 절절한 매달림의 대상을 

더 이상 필요없게 느껴지도록 하는

그러함으로 

거짓 이적들로 

많은 '혼란'으로 '믿음'을 유지하는 것 조차 힘들게 할 것이 

가장 두려웁게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다윗이.. 

그 많은 군중이

'감동에 겨워 즐거워 함'을 보며

지속되고 더욱 커지고 

항상 흐르실 '성령의 충만함'이 

그때즈음은 훨씬 더 상대적으로 커져

고난이 큰만큼 

사모하고 선택된 자들에게는

더욱 큰 기쁨과 확신이 

'순교자'.. '선교자'.. 그 어떤 이름의 그들 만큼 

저희에게도 가능할 것을 생각되어집니다. 

 

주여.

그렇게 하기까지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게

'감동'이고 

주님의 인도이시며

담담하고 행복함으로 채우게 하시는

성령님 안의 거함이 

훨씬 더 커진 상태라는 것을 의미함을 알기에

이 좁은 길... 

오늘도 허락되어진 이길을 

더욱 목숨바쳐 주님 사랑하여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 

힘을 주소서.

부족한 그러함 마져 

성령의 감동으로 붙들어 주소서.

이 무미 건조할 듯 느껴지는

새로운 한주, 

월요일을 축복하소서.

모든 번거로움을 다 주께 맡기고

주님을 놓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믿음을 주소서.

성령의 감동으로 이끄소서.

 

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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