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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날 허물 [시19:1-14] 본문

구약 QT

벗어날 허물 [시19:1-14]

주하인 2013. 4. 26. 11:52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아멘이다.

주님의 '율법', 말씀의 가르치심은 완전하다.

율법은 어떻게 받냐에 따라 '법'같이 딱딱한 것이 될 수도 있고

말씀이 하나님이신 ... 은혜로 받게 되면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

말씀이 곧 하나님이신 온전하신 하나님이 되신다.

소생을 넘어서는 소성은 '살아 활활 타는'이라는 뉘앙스로 온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매일 말씀으로 인도하시며

그 말씀이 내 일상에 그대로 사실이고 진리로 접목이 된다.

오래된 내 친구의 수십년 만의 나를 향한 정리처럼

'불통'의 사람이

말씀으로 인하여 지혜롭게 된다.

나는 그렇다. 

불통의 내가 '말씀'으로 인하여 자유로운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지혜로 지혜로와져간다.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교훈'이란 단어는

잠이 솔솔오는 , 딱딱한 , 싫은 , 구태의연한... 의 이미지만 느껴진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함이 사실이며

마음을 기쁘게 한다.

그 기쁘게 함은 단순한 깨달음,

(아.. 그 깨달음 조차 참으로 오래 걸렸지만)

그것을 통하여 아는 자의 깨달은 기쁨을 넘어서

도저히 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난제들이 풀려나가고

되지 않던 삶의 행태가 '그 기쁨 '가운데 이루어져 가는

진정한 기쁨이다.

 눈을 밝게 하신다는 표현도 맞다.

수없이 많은 불통의 어리석은

자기교만의 생각 덩어리들, 회오리치는 자가당착의 사단의 궤계들이 떠나가고

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해주신다.

눈을 밝게 하신다.

지혜로운 자의 눈은 밝을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교훈으로 깨달은 자는 눈이 밝아질 수 밖에 없다.

말씀구절 하나하나가 어찌 이리

아침 부터 가슴에 오던지..

당직방에서 '산모'있음을 전화 받고 일어나

들여다 본 말씀 하나하나가

가슴을 뜨겁게 한다.

난 이 은혜의 감동이 참 좋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자기 허물을 깨닫다.'

'숨은 허물'이다.

벗어날 허물

        

 허물이라 함은

내 평생 행동 양식을 결정해오는

깊은 생각.

세상을 보는 눈.

그 눈은 우리의 원죄로 인하여 왜곡이 될 수 밖에 없고

살아오는 과정 중에 형성된 깊은 '상처'로 인하여 바뀌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래서 세상의 의식에 머무는 교훈,

사람의 인본주의 적인 낮은 감동도

결심하고 행실을 바꾸기 위해 사람을 노력하게 하나

그 영혼 깊숙이 자리 잡은 숨은 허물,

영혼의 비틀린 눈은

결국 그의 모습을 진정한 온유와 겸손과 성화로 성장할 수 없게 한다.

인격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이지만 마음을 기쁘게 감동시키시고

율법이지만 영혼을 '새롭게 하고 부흥하게 하는 '소성시킨다.

결국, 말씀은 우리 속의 깊은 허물과 마주하게 하신다.

십자가 앞에서 모든 생각을 복종시키시게 하신다.

하나님의 감동은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마주 앉지 않고는 못배기게 하신다.

 

 

14.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주님은 나의 '반석'이시고 '구속자' 이시기에 그렇다.

이젠 난 그렇다.

어떤 논리에 '하나님 말씀의 본질' , 그날 주신 매일의 레마가 아니고는

거의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과감히 내려 놓을 마음의 여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 인생의 깊은 굴곡에서 나를 든든히 디디게 하시는

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말씀으로 인도하심과

성령의 강한 은혜로

내 삶을 디디게 하신 수많은 경험 탓이다.

 

나.

그래서 그 분 앞에 네 모든 것이 열납되기를 원한다.

내 입의 말이 그렇길 원한다.

내 마음 속으로 하는 묵상이 그리되길 원한다.

원함은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의 커짐과 서서히 비례하기 시작한다.

오늘 말씀의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바란다시는 고백이 가습에 온다

 

  어린 리더의 좌충우돌식 지시가 부담스럽고

가까운 분의 괜한 버거움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오고

내 말을 잘 듣지 않는 내 아랫 사람들이 생각보다 크게 걸린다.

그것이 옳지 않는 것임을 알면서도

급한 나는 .. 내 급한 성품적 특성으로 ,

어쩔 수 없음으로 치부하고

느낌오는 대로 '정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인 줄 알았다.

그것은 그렇지 못한 분들에 대한 반항의 표시였었고

그게 성품으로 굳어져

의사가 아니고는 세상에 성공할 만한 아무런 성품적 장점이 없던 나.

막연히 깨닫던 그 뒤에 자리 잡은 '허물'을 서서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도저히 허물은 알지만 깨닫기도 전에 튀어나오고야 마는

화에 번번히 졌었다.

그러나.. 조금씩 내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의 때가 참에 따라..허물의 숨어있던것을 들추기 시작해본다.

 

어제도 그 리더분의 어이없는 주문에

난 겉으로는 아니지만

마음이 '불~쾌'함이 오래간다.

그 불쾌의 근간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더니 위의 고백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

또, 운전하다가 '버스나 대형 트럭들'이 밀어 부치는 행위를 할때

분이 슬슬 올라오는 것을 자제하는데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데..

그것도 마찬가지다.

숨은 허물 중에서 ' 내 의지와 반하는 강압'에 견디지 못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랫사람들에게는 '내 의지를 즉시 반영하지 않는 ' 행동으로 인식하는 것.

그것들이 ' 권위자'의 강압..

특별히 아버지의 폭군적 , 때로는 비논리적 강압에

힘들어했던 습관이 아닌가 싶기는 하였다.

그것을 오늘 말씀에서 '허물', 그것도 숨은 허물로 인식하게 하시고

그 인식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이

그 하나님의 말씀이 율법처럼 딱딱할 수있음에도 기쁨으로 인지 하는

영혼의 잘나감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내 영혼을 '소성시키시려는' 것으로 느껴진다.

참.. 감사하다.

이제 허물을 깨달아 알아냈으니

점점 더 벗겨 내고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과거의 허물로 현실의 내가 영향을 받을 일이 없지 않는가?

 묵상하던 중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출근하고서는 문서를 몇개 작성했다.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그 분의 과도한 비합리적 긍정에 대하여

하나하나 논박하고

받아 들이되 내 조건을 내세우는 형태.

하나님은 '말씀'으로 지혜를 주신다.

나... 그것

내 과거의 허물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던

어리석은 행태를 멈추게 하신지 오래다. .

마음의 흔들림 조차 막아 주시려는 것임을

오늘 말씀을 읽어가며

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증거로 믿을 수 있다.

감사하다.

 

 

 

주님.

주님은 살아계심이 확실합니다.

세상에 그렇게 또 공포합니다.

어찌 말씀이 율법같이 딱딱한데

주님은 나에게 복을 준다는 약속이 아닌데도

이렇게 기쁘고 영혼이 '소성', 살아서 활활타오르는 뜨거움으로 차오르는 지요.

주님이 하시는 교훈은 무조건 사실이기에 그렇습니다.

오늘은 내 속에 숨은 '허물'을 밝혀내시고

그것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말려 주심을 약속하기에 그렇습니다.

주님.

어제 말씀처럼

제 영혼에서 사단이 횡행할 시간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 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내 모든 것이신

내 영혼의

내 삶의 구세주 내 하나님이시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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