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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리신 손 아름다운 발[롬10:14-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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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리신 손 아름다운 발[롬10:14-21]

주하인 2014. 5. 22. 10:06

들꽃처럼 작아 보이나

강변이라 외롭게 보이던가

 

그래도 햇빛 받았고

그래도 산들바람 부니

난 아름답고

우리는 행복하다

 

세상의 그들이

 우리의 아름다움을 보게되리니

 

그것 만으로도 난

우리 하나님의 영광

드러내는 중이기에 그러리라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 좋은 소식"

복음(福音)

Gospel

 

복음이 왜 복음이고

복음이 왜 좋은 소식인가?

 나.

세상에 53년 살아보았지만

절대로 완전한 곳이 아닐 뿐더러

이곳은 다시 살아내라고 하면 절래절래 할 정도로

고난의 땅이다 .

그게 그런데 비단 나 뿐일까?

세상의 거의 대부분이 고난과 고통과 무의미와 두려움과..........

모든 사망의 그늘에서 몸부림 치다가

결국 무슨 번뇌니 해탈이니 애쓰다가 갈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들 아니던가?

태어나는 순간 부터 '죽음'의 시계가 째각 째각~ 돌아가면서

그 사망의 여진들..

위에 조금 예를 든 그 힘든 고역들,

불로 지지는 것 같은 심적 유적 고통 사이에 살다가

불쏘시개가 다 타버리면

하시에 그냥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

 그래서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인간들은

세상의 각종 쓰레기 같고 필요없는 것들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에게 우상의 옷을 입혀 몸부림치거나

자신을 치고 고통을 가하는 거의 '가학, 피학 수준'의 면벽.. 내지 수행... 등을 해가면서도

이 고통을 탈피해보려 애썼으나

누구하나 이 죽음의 생명에서

'생명'을 보장 받을 수 있었고

유사이래 '예수그리스도'이외

그 누구가 '부활'을 경험하였던가?

 이제 '복음', 그 선한 소리

그 좋은 소식은

그러한 우리가 불쌍하여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분을 믿고 시인하기만 하면 아주 아주 쉽게

천국과 영원의 생명이 보장된다는 것이니

이게 '복음'이 아니던가?

 

아.. 이 귀중한 사실.

이 귀중한 진리를 세상에 전파하는 것은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원리가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이여.

 

이 구절이 오늘 왜 내 가슴에 오는가?

'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선교하고 전도 하는 것은

발이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낮아짐을 의미한다.

겸손이다.

 모든 체중을 다 받아 내는 고난을 암시한다 .

고난은 유익임이 이 경우에도 해당한다.

그것.

선교는 씨스템이나 선교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

낮아지고 고난을 감수하고

또, 발은 다니는 것이고 행동하는 본질을 지녔기에

부지런함을 의미한다.

발은 악취를 감내한다.

그러함에..

하나님은 그 발에 '양말'로  감싸신다.

그리고 '아름답다' 하신다.

 

오늘 말씀은 단순히 생각하면

'선교는 아름답다'고 단정할 수 있는 듯하다 .

너무도 당연하다 .

전도나 선교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할 의무이다.

그러함에도 '아름답다'는 구절이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웬일이던가?

늘 가지고 있던 선교에 대한 내 생각과

그것을 통해 오늘 나에게 주실 다른 말씀을 전개하여 보길 권고하심이 아닐까?

 

 

 

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보라.

주님의 말씀.

거슬러 말하는 백성,

불신자들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다' 신다.

복음은 '사랑'이다.

당연히도 선교는 가장 타인을 사랑하는 지름길이다.

 

그러함에도

작금의 한국교회를 보면

'선교가 목적이 되어 버리고

선교 만이 하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라는 자가 당착적인 오류에 빠져

선교하면 교세가 확장된다.. 까지 연결되는 것임을 보며

선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교회들을 본다 .

심지어는 '선교가 예수께서 오신 본질이다'라는

말하지 않지만

그것 이유의 다른 선교의 이유를 볼 수 없는

논리적 오류에 빠져 있음을 본다.

그러기에 한국교회는 자꾸만 '공허'해지고 자기 발이 꼬여 넘어지는 현상이 일어나는

또다른 문제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면 '선교'를 하지말자는 이야기인가?

최소한 지금 같이는?

그것을 통해서라도,

그나마라도 통하여

듣지 못하는 그 어느 누구에게 흘러들어간 말씀이

그들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일어나기에

그냥 허락되어지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

단,

선교를 하는 지금의 우리나라 교회의 

다른 '아름다운 각성' 이 있어야만

선교를 하는 '주체'인 우리교계에도 '상급'이 더 커질 것이란 이야기다.

풍성한 하나님의 '복음'가운데서 누려지는

놀라운 영감과 발전......

아름다운 일.

 

 하나님께서 세상에 전할 다른 방법이 없어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통해서만 '선교'를 할 수 밖에 없으신

아주 작으신 능력의 분이시던가.. 하는 의문이 안드는가?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통로일 뿐이다.

복음 자체가 '본질'이고

선교는 우리의 '의무'일 뿐이란 이야기다.

의무는 우리에게 가해지는 '역기능 가정의 무게 ' 뿐이런가?

아니다.

하나님이 의무를 지워주심은

'아름다움'을

'의로움'을 우리 영혼에 안겨 주시려 하심이다.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

그리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사망의 자식'에서

' 생명의 자녀'로 변할 '자격'을 받는

이 우주의 유일한 탈출구라면

'선교나 전도',

그리고 그를 순종함으로 얻어지는

'발'임을 받아들이는 자로서의 영혼의 성숙 성화 성결은

그 복음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아름다운 '과정임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고

그 아름다움을

그 생명의 복음을 타인에게 전하는 게

진정한 '선교'의 목적인 것이다.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생명을 주셨고

그 아름다운 생명을 이웃에게 나누는 의무를 주시고

그 나누기 위하여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그러기 위한 '발'처럼 낮은 순종과

그러함으로 얻어지는 영적인 성화의 '아름다움'을

'성령'으로 늘 도우시기에 힘을 보태주시고

세상의 순례길이 끝날 때 즈음

우리를 두팔벌려 맞이 하시는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복음

아름다운 생명의 의미란 이야기시다.

 

그렇다면

난.. 어떤가?

지금 선교하기 위하여 내 직업과 직분과 나를 바라는 내 식솔들의 눈길을 외면하고

다른 나라로 떠나갈까?

어느 정도 하나님의 복음의 진정한 원리를 깨달았는데

이제 다 버리고 그리할까?

나 말고 모든 믿는 자의 의무가 그것이라면

세상의 모든 일은 뒷전이고

'선교사'로만 되어서 떠나갈까?

아름다운 일을 위해서?

 

'땅끝'까지 전파하는 게

꼭 물리적 , 지리적 한계를 이야기할 바인가?

그날, 그 성경에 적힌

'예수님 구름타고 승천하시던 그날에 그자리에 있던 제자'들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던가?

그들은 대표다.

우리의 궁극적으로 나아가

주님이 기뻐하실 모델들이다 .

그들을 제외한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생활인'이고 '직업인'이다.

대표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심은

우리의 삶속에서 '선교',

우리의 터전에서의 '땅끝'을 말씀하시고

우리의 직장, 우리의 가정,.. 에서 '아름다움'을 말씀하신다.

 

내 직장,

내 있는 곳, 내 거하는 곳에서

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름다와 지는가?

'발처럼' 되어야 한다.

그것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아름다운 발' 말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겨

그렇게도 손을 벌리고 기다리시는데

믿지 않는 그들에게 복음을 안겨 드려야

내가 아름다와지고

내가 성화가 되고

내가 성장이 되어

결국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발이 되지 않겠는가?

 

다행이도 요즈음

옛날 처럼 하루에 한두분,

며칠전에는 네분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

수술방에서 믿지 않는 간호사들을 데리고

손을 꼭 잡고 수술전 기도하며

그들의 마음을 열 노력을 더 열정적으로 하여지고 있다 .

다행이다.

아름다운 발이 되어야 함이

이제는 더 필요한듯 하다.

감사하다.

 

 

 

주여.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가 쉽지 않은 요즈음입니다.

그게 옳은 것인지

내 부족함 탓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감성이 떨어지고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 열심히 하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덜 고난이니 더 게으름입니다.

주여.

용서하시고 아름다운 발이 되는 제가 되게하소서.

긍휼하고 사랑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손을

믿지 않는 모든 자들에게 알리는 데

더 열심이 되게 하시고 이끄소서.

부디 주여.

오늘날 우리나라 교계에

'영적인 성화' ,

아름다운 발,

복음의 본질에 대하여

더 깊이 깨닫고 '내적 치료'의 유치한 차원을 넘어서는

깊은 영적 각성이 일어나게 하소서.

주여.

힘을 주시옵소서.

이 마지막 세대에 진정으로 세상과 복음으로 교통하는

당당한 나라 되게하소서.

제가 되게 하소서.

하시라도 그 말씀을 잊지 않게 하소서.

내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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