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발칙한 큐티 호 / 부제 : 마침 그때 (눅 5:1-11 ) 본문
제 5 장 ( Chapter 5, Luke )
화사한 봄날
마침 그때
이 이쁜
강아지가
그곳에 있어서
나무 위에 올려놓고
사진 찍었더니
'강아지 꽃'이 되었답니다.
이쁘지요?
베드로도
마침 그때
이쁜 심성을 가지고
그 곳에 있었겠지요?
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마침 그때
예수님은
무리를 옹위하고
호숫가에 나타나셨다.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마침 그때
고단하고
소득없는 일을 마치고
두대의 배가 서 있었다.
그 호숫가
그 새벽에...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실크로드 중창단이
무대에 올라설 때
둥그렇게 반원을 그리면
지휘자는
그 반원 중심의 조금 앞 쪽으로 나가 선다.
그래야 보인다.
포구를 중심으로
둘러선 무리의 중심에서
조금 더 바깥 쪽으로
배를 타고 앉으신
중심의 하나님이
우연히도
우연치 않게
그 배에
베드로를 태우고
조금... .
아주 조금은
다른 차원의 대우를 하고 계신다.
이때까지는
베드로는
이 지구상에 앞으로 올
기독교라는 대변혁의 중심에서서
지휘의 역할을 하게될 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주님은
마침 그때
그 피곤한 새벽에
낮은 위치의
고단한 어부에게
조금은 다른 대우를 하고 계신다.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 배는
그와 하나님이 타고
지휘의 중심에 나서게 되신다.
이때
베드로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앉으신 예수님의 등 뒤에서
사람착한 모습으로
멍하니 있었을 것이다.
이 아침의
이 기묘한 변화 -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 무리를 이끌고 묘한 카리스마를 풍기며 , 거부할 수 없는 , 온유한 명령으로 , 배를 띠우기를 명하시자, 무언가에 끌리듯, 배를 포구의 중심에 띄우고, 그 자신은 , 그 뒤에 조용히 서 있고야 마는.. -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말씀의 시간 동안
베드로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뒤에 앉아서
그물을 마져 정리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의 앉아 계신 그 등뒤.
그 등 뒤에서
그 무지하고 어리석은
어부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후에 나올
어느 정도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
-처음 보는 미숙련 어부 남자, 예수의 말을 들은 숙련 어부의 순종
갑자기 세상 일을 다 버리고 따라 나서는 등 - 이
단순히 예수님의 기적적인 강권으로 나왔다고는
보기 어렵기에
이러한 행동의 변화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조금은 특별한 위치 - 육지에서 조금 떨어진 배 위, 주님의 등뒤-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란 것은
의심하기 어려운 듯 싶다.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말씀을 마치고
베드로에게
개인지도 하신다.
대중을 향한 말씀을
베드로가 듣고 있을 것이란 것을
알고 계시고
그러기에
그의 내부에
대 변혁이 일어날 계기가 마련되었음을 아시는
주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돌연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시는
이해할 없는 주문을 하신다.
그러자,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베드로의 대답이 이어진다.
" 우리들이 밤이 �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
밤이 �도록 수고한 전문가가
어찌 말씀에 의지할수 있겠는가?
그 사이에
예수님의 말씀에
예수님의 카리스마에
예수님의 둘 만의 같은 배 동승의 사건에
그의 내면이 뒤집혀 버릴
일보직전에 와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오순절 성령을 체험한 것도
예수님의 적극적 가르침의 삼년의 세월도 온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그는 흔들린다.
' 밤이 �도록 수고를 하여서 얻은 것이 없기는 하지만.... '하고
갈등을 한다.
그리고는
결단을 한다.
주님은
구원받았지만
인격적 만남을 원하시는 자들에게
결단을 원하신다.
그 결단은
금욕주의자들이 할 수 있는
힘든 것이 아니다.
육신의 붙잡음
정욕의 붙들음
영적으로 부대낌을
잠시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할 의지의 표명으로 족하다.
'선택'의 결심으로 족하다.
나머지는 주님이 알아서 하신다.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이어진다.
'대단한 축복'을 주셨음에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아래 꿇어 엎드린다.
그리고는
회개한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게된다.
성령의 체험
역설의 하나님
세상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놀라운 하나님의 평강을 맛보게 되는
기독교인 들이 아니고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현상이다.
힘들지만 기쁘고
좌절하지만 가장 희망이 있고
어렵지만 힘이 나고
곤란하지만 행복한
불안하지만 평화롭고
배고프지만 가장 배부른
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체험한 자 만이
알 수 있는 현상이다.
그래서,
베드로 어부가
딩가딩가 춤추어야할 이 상황에서
예수님 무릎 앞에 꿇어 엎드리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마음에
이해하기 어려운
감동이 물결치고 있을 것이다.
놀라운 기쁨이
충격적으로 그의 마음을 치받고 있을 것이며
눈에는 진리를 발견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격정을 이기지 못해
주님 무릎 앞에 꿇어 엎드리고
그 순간
그의 삶의 목표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삶의 목표가 바뀐 순간
그는
그의 구차한 삶을 이끌어 주던
어부의 도구는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적용
1. 말씀 앞에 겸허 한다.
여섯 장 읽겠다.
말씀 읽을 때
수면 위 조금은 세상과 떨어져 앉아
세상을 향해 설파하시는 예수님의 등 뒤를 묵상한다.
나를 향하지는 않으셨지만
나를 향하여 하시는
그 크고 놀라운 비밀의 말씀을 듣는 상상을 하겠다.
2. 말씀을 마치고는
돌아 앉으셔서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요구하실 것이다.
그때 ,
난 무조건 순종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요구의 말씀이 결코 무리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 합리의 논리에는 벗어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을 어떻게 순종할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주님의 말씀으로 들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일상에서 듣는 훈련을 할 수 있는가?
실은 큐티를 오래하면서
어리석은 이야기들이 어이없이 들리는 경우가 많아진다.
영적으로 더욱 민감하고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3. 주님 무릎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베드로를 상상한다.
나도
늘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발칙한 블로그'를 삼년 가까이 운영한다.
특별치는 않지만
이 블로그는
주님이 세상과 조금은 떨어져 앉아서
말씀을 전파하시는
아주 조그만 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마침 , 6년전
내 힘들 그때
이곳으로 오게 하사
마침 그때
삼년 전 부터
큐티를 인도하고 블로그를 운영하게 하신 것이
아주 비슷하다.
인격적으로 난, 주님을 만났다.
이제 필요한 것은
주님 무릎 앞에 머리 조아리는
베드로의 순수함이 필요하다.
4. 배를 버리는 용기에 대하여 묵상한다.
이게 무섭다.
주님께 무엇을 여쭙고 싶어도
여쭙지 못하는 근본원인은
세상의 내 소유를 다 버리고
당신을 좇으라는 소리가 들릴까봐다.
주님도 이것을 아셔서 그렇게 강요하지는 않으시는 듯 싶다.
용기를 주소서.
주여.
5. 순종의 의지도 주소서.
6. 순종한 후 축복도 주소서.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어제의 힘듦 뒤에
이제 조금은 여유로움이 감사합니다.
많은 은혜 감사합니다.
깨달음도 감사합니다.
일상에서
말씀이 꿰어지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도 감사합니다.
갈렙 같은
탈태 환골의 믿음은 아니어도
말씀 중에
누누히 흐르는
주님의 평강의 시내물을 마시는 듯한
기회를 허락하심도 감사합니다.
특별히
이
발칙한 큐티 호에
승선하시어
등을 보이시듯
잔잔히
제속에
말씀으로
은혜로
지헤로 채워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간절히 비올 것은
베드로 같은
순진함과
순종함과
용기를 허락하소서.
가능타하시면
세상의 것도 해결해 주소서.
아시지요?
상대적인 어려움요?
도우실 줄 믿습니다.
무엇보다
제 속에
회개의 깊은 영을 불어넣어주사
온전히 주님 무릎 앞에 꿇어 엎드리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주여..
인도하심을 기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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