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받아 들여야만 하는 것들[수9:16-27] 본문
이전의 집이 팔리며
급히 이사온 집이다.
잠시 거하다
본 집으로 들어가려하는 바
애정을 쏟지 않으려 하니
더 썰렁한듯하고
그러다 보니
겨울이 더 춥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차가운 거실 바닥과 공기에
태양이 비쳐드니
한편 아름답고
따스한 온기가 차는 듯하다
그렇다
하나님의 뜻으로
나를 들여다 보고
받아들일 것을
기쁨으로 받아 들이는 것은
능력이고 지혜다
어쩌면
그러함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미리
십자가를 지시는
모범을 보이신 것일 수도 있다
16.그들과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이웃에서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들이라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의 일이라 굳게 믿고 일을 진행했으나
그들의 행사가 '거짓'이란 것을
곧 알게 되었다. ㅜ.ㅜ.;;;;
19.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그러나, 그들을 이제는
건드리지 못하게 되었다.
24.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다.
그들도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의 일에 끼어 들었다.
그리고 '역사'는 그렇게 흘러 갔다.
아마 이때의 잘못으로 오늘날 이스라엘의 곤란이 있지 않을까?
수천년을 흐르는 죄의 결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지는 않았어도
유유히 이 세상에 흐르는 '죄의 결과'들...
나.
내 과거의 잘못들.
순간순간 자제하지 못하는 실수들...
많은 부분은 하나님 앞에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 받음을 믿지만
그래서 나 자신은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혜로
다시 새롭게 거듭 난 것을 믿지만
일상은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럴 때 힘이 빠진다.
이런 거..
예수님 모를 때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아버지의 역할 부재로
자식들까지 영향을 받은 것..
오랜 상처로 방황하고 번민할 때
세상 될대로 되라 식으로
세상을 향해 분노를 뿜어내듯할 때
그로 인한 '관계'의 단절.
그들을 회복시켜 보려 무진 애를 쓰고
하나님 앞에 오랜 시간 맡기어 보는 노력도 했고 , 또 하고 있지만
그리 큰 변화가 없이
나이 들어감에 따라
내 생각과 하나님 앞에서의 보낸 시간으로 인한 기대와는 달리
그냥 그렇게 굳어지는 듯 할 때..........
어디까지 기도하고 어디까지 기대하여야 할지........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분명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통하여
'내 노년까지 내 백발까지 인도하시고 ,
나를 품고 안고 구하여 내실 것'을 믿지만
어떻게.....라는 의구심은
가끔 힘없게 할 때가 있다.
'이것..........
기도해도 안되는 것.
기도해도 안될 것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분명 '의혹'임을 알아
얼른 믿음의 뒤켠으로 던져 넣지만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불씨'... 같이
내 약한 믿음,
무지한 신앙을 흔드는 기저들.. 이지 않는가?
오늘 말씀 중에
조금은 해결의 실마리를 보는 듯하다.
어쩌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잘 승리해가지만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한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세상에 허락할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다.
오늘의 저들.. 처럼..
그것을 없애기 위하여 기도하고 몸부림 치고 기대함은
어쩌면 '미련'한 일이 아니던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된 것들인데..
비록 그들의 잘못이 맞지만..
그리고 그들의 그 약간의 잘못처럼 보이는 실수로
현재까지 이스라엘의 불씨거리로 남아 있지 않는가?
그렇지만 , 그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 '축복'을 약속하고 계시고
축복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세상대로 흘러가
오늘의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렇다면,
축복의 한계를 어디까지 볼것인가?
'진정 축복'은
일상적 일이 잘 풀리고
눈에 보이는 세상의 어려움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님은
여기까지 생각을 펼친다면
쉽게 ~ 아주 쉽~게 알 수 있음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세상에 당신의 이름을 걸고
간섭하시고 도모하시는 한계를 두셨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인생은 '광야의 연단'을 넘어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도구로 세상의 권세 잡은 '사단'의 세력들에게
잠시 허락된 '틈'을 주신다.
그 안에 내려 놓아진 당신의 자녀들,
기독교인들,
그 중에서도 '좁은 길, '좁은 문'의 존재를 이해하고
인간의 한계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을 수용하는 생각을 가지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진정 준행하려 하는 자들에게는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평강을 맛보게 하시고
영생을 사모할 의지와 의욕을 주시어
성령으로 이끄신 후
마지막 이 땅의 소천의 날까지
흰옷 입은 영혼으로 거듭나게 하신 후
영생의 영광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시다.
그렇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깨닫는 그들에게
깊은 기쁨의 눈으로 보시면서
그들의 기도와 헌신과 말씀 묵상과 구제.. 의 열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령으로 교통하시는 것이시다.
그 교통의 기쁨이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우리를 이 땅에 존재케 하시는 이유이신지도 모른다.
자녀를 바라보는
어버이의 눈.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은 안타까우나
그들이 '아버지'를 바라보며
다시 일어서는 몸사위를 바라보며
성장하는 그들의 '성장통' 마져
'행복'으로 갈무리하는
좋은 부모.
그렇다.
그렇다면
자녀인 내가 해야 할 것이 있다.
일단, 다시한번 이 땅의 영화와 부귀 만이 '축복'이라는 고정관념을 내려 놓는 것이다.
어찌 세상 살면서 넘어지지 않는 아들이 있단 말이던가?
내 잘못이 심할 때는 회초리도 맞고
오랜 시간 독립의 힘을 기를 때까지 노력을 해보아야 할 필요도 있지 않는가?
거기에 끊이지 않는 아버지와의 대화, 그분 앞에 소식을 알려드림이 필요하다.
전화하고 방문하지 않는 자식은 호레 자식이다.
어려울 때 더 붙어야 한다.
열심히 공부잘하는 차가운 아들보다
엉터리지만 애교 부리며 눈앞에 띄면서 추억을 만들어주는 자식이 이쁘다.
힘이 들어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가고
상황이 내 기준에 변화가 없는 듯하여도 주님 앞에 나가야 한다.
그리고는 그 분이 내 상황을 결국 '선'하게 변화시킬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잘못하면 회개하고 빌어야 한다.
그리고 기대하여야 한다.
내가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더 좋은 결과를 나의 앞에 주실 분도 아버지시다.
지금 내 앞에
내 판단과 맞지 않는 변치 않을 듯한 어려움들이 있다.
사실이다.
오래된 것,..
새로운 것..
기도하고 나름 깨달음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왔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랬다.
하지만 실망할 일이 아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 잘못, 하나님의 일이라 생각하며 실수했던 결과로 벌어졌던,
내 과거의 돌이키지 못하는 결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던
내 생물학적 변이에 따른 심적 부담이든 ..
어떤 돌이키지 못할 것도
다 하나님의 '관리 '가운데 있으시다.
다 그분의 뜻이시다.
더 크게 바라보면
하나님의 우주 운행의 원리 가운데 그냥 벌어진 일이다.
그렇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으면
주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한다.
세상의 그런 것은 바꾸지 못한 다해도
나는 바꿀 수 있다.
날 바꾸는 것이 현명하고 편하고 우주적 원리에 맞다.
저들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려고 몸부림 쳤다.
그 결과다.
도저히 안되면 내가 받으 들여야 한다.
그것이 내겐 능력이 되는 것이다.
겸손의 능력.
하나님의 아드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힘.. 말이다.
내적인 능력. ~~!!
하나님 아버지
사뭇 세상을 바라보면
정답이 없습니다.
내 살아온 길이 다 허구 인듯하고
아무 힘쓸 수 없는
거센 물결에 흔들려 떨구어져 버릴 것 같은
어지러움이 한번씩 느껴지려 합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을 후회하여도
이제는 돌릴 수 없는 물길을 느끼며
좌절도 되어 집니다.
주여.
하지만 오늘 묵상을 하면서
돌아본 주님의 말씀의 원리를 통해서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러고 보면
그런 것을 받아들이고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이유로
잘 녹여 받아 들일 수 있길 원합니다.
안되는 것 마음 조리고
가슴아파하고
영적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는
주님의 뜻 가운데
그런 나를 ,스스로를 받아 들일 수 있길 원합니다.
진정으로요.
주님 안에서 순응하고 받아 들이고
오히려 그런 나를 기뻐할 자 되길 원합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말씀으로 더욱 깊이침착하고
기도로 더욱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자 되게 하시되
늘 지혜와 겸손으로 넘치는 자 되게 하소서.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알게하시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닌 것은
주여... 얼른 바꾸어 주소서.
자식들 앞길을 열어주시고
가족을 단합하게 하시옵소서.
더 평화롭게 하시고
더 온유하게 하소서.
세상적 축복도 준비하신 것이 있으시면
어서어서 베푸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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