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바로는 바보다( 출 8:16-32 ) 본문
제 8 장 ( Chapter 8, Exodus )
세상은 아무렇지 않은 듯
봄기운으로 가득하지만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기대를 내려놓고
소담히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위한 사랑의 꽃을 피워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
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온 땅에..
이구..가려워라.
19. 술객이 바로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케
되어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이제 드디어 술객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엄청난 힘이 느껴지며
그들의 입에서
"하나님의 권능"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바로는 아직도 ..
'바보'다.
22. 그 날에 내가 내 백성의 거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 떼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나는 세상 중의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23.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두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위의 술객 들이 드디어
하나님의 권능을 이야기 하고
하나님께서는 파리 재앙을 통하여
고센 지방 만 구별하는
기적적(!) 재앙을 보이심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세상에 보이시길 원하신다.
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32. 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마음을 완강케 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드디어 바로가 마음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마음이 굳어 있기는 여전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끼기는 하나
그 영혼의 굳어 있음 -사단에 잡혀 있음-은
자꾸만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
몇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그 많던 이는 어찌 되었을까?
당연히 없어졌겠지?
이가 온통 사람을 파고들 때
그 군실거림은 어땠을까?
아휴...
바로 때문에 애꿎게 이스라엘 백성도 당할 때
그들의 속은 어땠을까?
파리가 몰려올 때 어떤 느낌일까?
물 속에 뛰어 들어가 피하는 경우는 없지 않았을까?
왜 하필이면 고센지방이었을까?
개구리
파리
이 소동에
바로까지 고통은 예외가 아니었을 텐데
그 마음 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들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려 했을까?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라는 소리가 아마도 그의 머리 속을 빙빙 돌지 않았을까?
이 대단한 이적을 경험하면서도
그의 마음 속에는 '노예'를 잃어 버리게 되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컸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장면을 묵상하며
'리더'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미련함과 우둔함은
많은 백성들로 하여금 고통에 빠드린다.
내일 '총선'이다.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선출의 기준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적으로
바로의 마음을 들여다 보며
자기 아집이 강하고
'실수'를 돌이켜 자신을 바꾸지 않음은
패망의 지름길일 수 있음을 보고 있다.
특별히 주님 말씀 앞에
겸허히 서야 한다.
주님의 뜻이 아니면
완전히 돌이켜야 한다.
그 소유가 아무리 커도
버리기에 가슴이 찢어지는 안타까움이 있어도
그게 주님의 뜻이 아니라면 과감히 포기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도'
'하지만'
........ 등의 내적 언어는
바로와 같은 바보로 가는
지름길이다.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주님의 '표징'을 알아 볼 지혜와
그 표징을 실천할 용기를 주실 것을
간구해야 한다.
특별히 오늘 주님의 재앙 가운데
일정 부분,
이스라엘 백성으로 대표되는
믿는 자들 역시 '이'나 '파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고 있다.
하지만 , 주님은 '고센'이라는
그날을 '감해 주신다'는 예수님의 표현과 같은
종말론적 현상에서
어쩔 수 없이 고통을 같이 받을 수 밖에 없지만
그들과는 다른 '피할 곳'이 있음을
수천년 전의 예화를 통해서도
볼 수 있어
작금의 여러 종말론 적 변화들이
우리를 흔들리게 함에도 불구하고
그리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음을 보이신다.
이제 우리는,
특별히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겠다.
자뭇 성공지향적이고 육신의 만족적인 삶은
조금은 자제하는 노력을 한다.
어제 한끼 금식,
정말 오랫만에 했지만
그러한 의도하에서 기쁘게 했다.
가능하면 걸어다니겠다.
가능하면 새로운 옷과 눈을 만족시키는 화려한 것을
선택함을 뒤로 미루겠다.
말은 조금은 조용히 한다.
아이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내려 놓겠다 .
나의 성공에 대한 기대도 가능하면
주님 앞에 내려 놓겠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간구한다.
소유를 내려 놓을 수 있는 결단을 간구한다.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간구한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동반될 수 밖에 없는
흔들림을 평정으로 바꾸어 주시길 빈다.
기도
하나님
말씀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리더의 중요성에 대하여 잠시 묵상했습니다.
저도
가정의 리더로
직장의 중견자로서
조금은 인내할 줄 알고
남의 말을 받아 들일 줄 알고
주님의 뜻이면 온전히 순종하고 순응할 여유를 주소서.
바로와 같은 미련함은 사양합니다.
과도한 아집도 사양하려 합니다.
아집이 아니고 '신념'이라 착각하지 않을 지혜를 허락하소서.
주님
주님 안에서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주님의 평강 아래서
주님 뵐 그날까지
붙들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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