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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느하스의 결단을 내릴 때(민25:1-18)

주하인 2011. 5. 20. 10:52

제 25 장 ( Chapter 25, Numbers ) 

어느 때는 너무 어두워

갈바 모를 때가 있었습니다

 

또 어느 때는 비추이는 그 불이

옳은 방향인 지 혼란할 때도 있었습니다

 

주여

이제 다시 눈을 들어

주님 만을 바라봅니다

 

바른 결정 인도하시고

옳은 결단 도우소서

 

오직

내 사모하고 바라옵는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음행을 하다가 아니고 음행을 '시작하니라'라 되어 있다.

 

음행.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교합을 통하여

서로 하나되는 행위.

그러기에 그 때만은 육신에 쌓여 고독한 영혼들이

마치 하나가 되어 융합되는 '소우주의 융합' 같은 착각이 일어나기에

본능적으로 그리워할 수 밖에 없다고 묘사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음행은 거기에 인간의 원죄적 포악성을 자극하여

질서를 비밀히 깨는 쾌감까지 겹쳐져 인간으로 벗어나기 힘든 유혹이 맞다.

 따라서 음행은 '우상'을 섬기는 행위로 치부되고

하나님은 '영적인 음행'을 포함하여

육체적 음행까지 십계명에 '이웃의 아내를... ' 이라하며 강력히 금하고 있다.

 그런데 , 그것을 '시작하는 게 ' 싯딤에 머물러 있을 때다.

그렇다.

모든 것은 움직여야 한다.

우주의 원리가 '파동'이고

성령충만은 '흐름'으로 느껴짐을 깨달았다.

흐름이 막히면 썩는다 .

싯딤에 머물러 있는 동안 그들은 음행을 시작했다 한다.

죄를 '의지적'으로 범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죄'로 보시는 부분이다.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않될 이유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온다.

 

그 중에서도 영적인 음행은 큰 죄다.  

진노하신다. 
  
    
  
7.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8.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러한 죄는 보통의 죄와는 달리 큰 보속이 필요하다.

아픔을 겪기 전에 '죄'에서 멀어야 할 이유를 보이신다.

 

 아론의 손자인 '비느하스' 가 '회중 가운데 있다가' 일어났다.

손에 창을 들고 ..

그리고는 두 간음한 남녀를 찔러  죽였다.

회중 가운데 그가 일어난 사실.

어쩌면 그 남자가 친구였을 수도 ,

아니면 얼굴을 아는 사람일 수도 있었게고

그렇지 않더라도 회중에서 일어나 사람을 그것도 둘이나

단숨에 죽을 심장도 아닌

복부를 ... 그런 것은 어쩌면 회중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잔인하다'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 .

회중에서 일어나 무엇을 발표하는 것도 힘들어 하는데

비느하스 그 분은 손드는 것 보다 훨씬 어려운 일을

회중이 보는 아래서 해냈다.

 물론,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현대의 상황과는 너무도 다른

고대의 일이기에 지금 만큼의 '죄'는 혹여 아닐지라도

위의 예를 생각해보아서

'인간'의 '감정' 내지 인간의 도리라는 측면에서

어쩌면 죽음 당한 자와 비느하스 사이에서 '우정' 이 있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들 만의 공감대가 있었을지도 모르며

다만 모르는 사람이라도 군중 중의 그 누군가 들에게는 죽은자가

아들로서 친구로서 동료나 형제나 오빠, 친척으로서의 관계가 있는데다가

그것을 차치하고  

쑥스러움이나 잘나체한다는 비난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서 그런 극단적 행동을 한 것은

'인간적인 행동'이라 보기엔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아 있지 않던가?

 그러기에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함'이라는 대 명제가

이땅 위에 그토록 쉽게 자리잡지 못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잔인함' '정이 없음' '냉혹한',.......의 비난을 감안할 때

'인본주의'와 '하나님의 원리' 가 맞부닥칠 때 

과연 어찌 해야 하는가?

 

 당연히도 하나님 원리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위의 비느하스의 모습을 통하여 분석을 해 보았지만

그게 우리의 삶속에서 바로 나한테 벌어졌을 때

내가 군중의 속에서 비느하스의 자리에 대신 앉아 있었을 때

비느하스 같은 저런 행동을 결행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많은 생각이 교차하겠고

내 가슴은 심히 빨리 뛸 것같다.

그러면서 나는 그 당위성을 알지만 사람들의 손가락질이나 질책이 두려워

가만히 앉아 있을 지 모른다.

하나님의 눈치를 살피며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내 모습이 어이가 없어서..

아마 많은 자책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그랬다는 이야기다.

 

 결국 오늘 말씀을 주시는 포인트는 이것인 것 같다.

'하나님의 원리'와 '세상의 원리'가 상치될 때...

그게 굉장한 고통이 될 수도 있음을 위에서 계속 논리 전개했다.

쉽지 않을 결정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비느하스의 그 결단을 통하여 그 후의 모습을 보면

어디에도 질책했다는 소리가 없다.

오히려 염병이 멈추었고

하나님의 칭찬이 이어진다.

염병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었던 것을

그의 결심으로 인하여 멈추어진 것이다.

 

 분명코 하나님의 원리를 따름이 당연하다.

그 따름에는 '아픔'이나 '결단'이 따름이 당연하다.

그러나 걱정되는 것이 몇가지 있다.

 어떤 사람들.

특별히 미성숙한 초신자나 율법적 성향이 있으신 분들...

종교적 망상에 빠져 들어간 심리적 이상자들...은

특별히 고민하지도 않고 비느하스적인 행동을 취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으며

오히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게 하기보다는

하나님은 잔인한 분이라는 오해를 하게 하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가끔은 그 분들도 '계시'라는 이름으로 행하기도 한다.

 아직은 좀 더 밝혀져야 하겠지만

' 십자가 살인'으로 명명된 어떤 분의 사건도

일종의 그런 내용은 아니지 않을까 의심되는 부류이기도 하다.

위험한...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정말 '비느하스적 결단'이 있다.

이게 마땅히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어떻게 그 결단을 옳게 내릴 수 있던가?

혹여 저러한

세상의 원리와 부딪치게 되는 하나님의 뜻의 상황을 깨달을 수 있단 말이던가?

그리고 진정 그러한 상황일 때 어떻게 과감히 결단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당연히도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다함은 늘 성령을 사모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말씀을 묵상하여야 한다.

 

   요사이 발람의 고백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은혜를 주신다.

  어제는 '눈을 감았던 나' 를 깨닫게 하시고

' 엎드렸지만 눈을 뜨라'는 메시지가 레마로 왔다.

그래서 변화없는 내 삶의 환경에서도

그냥 눈을 뜨는 자로서의 내가 되길 사모하는 마음을 달라고

하루 종일 생각하며 지냈다.

저녁에 일과를 마치고 잠시 '시선'이라는 찬양이 입에서 떠나질 않아

그 찬양을 녹음하고 인터넷에 올리고는

잠시 책을 몇줄 읽고 퇴근했다.

늘 하는 수영을 가기에는 시간이 묘하다.

그래서 결심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기도원'으로 오랫만에 향했다

거의 끝나가는 시간.

사람들이 많다.

이 열심이신 분들 탓에 우리나라가 그래도 잘 유지가 됨을 뿌듯히 느끼며

창가, 강사 목사님의 소리가 잘들리는 의자에 앉았다.

' 마지막 멘트' 라시면서 끝나가는 시간이었다.

' 하나님의 영'을 말씀하신다.

발람의 눈을 밝히신 그 성령.

세상에 하나님이 우리를 기도케 하시는 이유는

' 상황'을 보고 받고 역사하시기 위한 배려라 하신다.

맞지 않는가?

참으로 은혜롭다.

듣고 싶은 단어만 엑기스로 준비하셨다 절묘하게도 말씀하신다.

그러시면서 아침에 당신께서 일어나자 마자 2분간 기도하는

기도의 요령을 말씀하시는데 너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은혜롭다.

아.....

난..깨어 있다.

그것을 주님이 성령으로 기뻐하심을 보이신다.

그래서 난 행복하다.

 그렇다.

주님을 사모함을 놓치지 않고

매일 매일 - 매일매일이 중요하다 - 말씀을 내 발앞에 켜두시는 등불로 안내를 받으면

이 칠흙같이 어두운 세상에서도

주님이 날 기다리시는 그곳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마무리 하신다.

'세상에서 열심을 보이는  게 과연 천국에서 상급받기 위함이 목적이던가?

 나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수고했구나'하는 소리를 듣기만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라며 촉촉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데

그것이야 말로 내가 늘 사모하던

내 만의 하나님과의 동행 태도 아니던가?

같은 느낌으로 선포하시는 목사님의 그 입술을 주장하시는

성령의 운행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렇다.

그런 나의 태도가 매일매일 되풀이 된다면

매일매일이 지나 어느샌가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 이르지 않겠는가?

굳이 비느하스적 결단의 시기가 오면

주님 알아서 성령으로 다 알아서 인도하실 것을

무엇을 걱정할 것인가?

 

참으로 감사하다.

내 삶이 그렇다.

주님을 아는 내 삶이 그렇다.

 

 

적용

1. 비느하스적 결단을 기억하자.

 

2. 비느하스적 결단을 위하여 늘 깨어 있자

 성경 세장 읽으리라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자

 성령을 사모하자.

 

3. 죄로 부터 멀리되자 .

 시작이 중요하다.

 눈 가는데를 조심하자. 

 세상이 너무 막 달린다.

 자칫 눈을 조심하지 않으면 음행의 시작이 예기치 못하게 되는 세상이다.

 

4.  회개하는 삶을 살자.

 주님의 뜻을 눈감았던 시간들을 회개하자.

 

5. 성경세장 읽자.

 

6.  결단을 위해 다가오는 두려움, 질책에 대하여 직시하자.

 군중은 두려운 존재긴 하다.

  두려움을 더 두렵게 하는 것은 '과거의 끈'이다.

  어쩌면 친분이나 인간관계의 흔들림이 두렵게 할 수 있다

  깊이 자신을 들여다 보고

  늘 하나님이외의 어떤 원리가 앞서지 않게 내 영혼을 조율해 놓자 .

 

7.  하나님을 위해서 찬양하자.

 '하기오스 찬양'대에서 성령예배에 찬양 도우미다.

 금요일날 그런다.

 내 자랑이 되지 않게 하시고

 사람 눈치 살피지 않게 하소서.. 기도하자.

  오직 주님만 바라보자. 

 주님께 시선을 올리는 기도를 하자.

 

 

 

 

기도

 

 주님.

오늘은 흐르지 않던 영혼들의 음행을 시작함을 봅니다.

얼른 돌이키면 좋을 텐데 그럽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상에서 전 안그러고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

저..

스스로 참 부족함을 압니다.

너무 감성적이어서 때로 그냥 저류되어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가 죄짓는 시기인 것을 ..

주님 오늘 말씀으로 다시한번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비느하스의 그 냉철한 결단을 보며

나의 현재모습을 비교해보았습니다.

머리가 터질 듯 생각이 넘쳤을 거고

심장이 폭팔할 듯 뛸 것만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과정에서 아마도 난 뒤로 물러 앉아 어쩌면

다수의 의견 속에 숨어 아무 행동도 못하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주님.

부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자책하지 않고

세상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내 문제로 인하여 더 두려워하지 않고

결단을 단칼에 내리는 '비느하스의 그 결단'을 닮길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성령의 매일 동행하심을 원합니다.

주님.

저.. 힘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더 주님을 갈구합니다.

도우소서.

게을러져가는 말씀 묵상의 시간을 늘이고

더 깊은 감동으로 절 이끄시어

제 영혼이 주님 만으로 모든 가치의 촛점이 모이고

내 관심이 오직 하나님 만이 되게 하소서.

제 자식들 꼭.. .그리되게 하시고

그들이 그 영향으로 세상에서도 믿을 만한 자,

그들로 인하여 주님을 제대로 믿는 자들의 올바름을 깨닫게 하시고

비느하스로 인하여 세상의 염병이 멈춘 것처럼

그들을 쓰게 하소서.

주님.

꼭 그리하소서.

이곳에서 저와 함께 주님의 사모하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다 그리되게 하소서.

예수님.

간절히 원하니 제 가족.. 제 아내.. 제 교회식구들..

모두들 그리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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