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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들의 죄 (암 2:1-8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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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들의 죄 (암 2:1-8 )

주하인 2011. 2. 8. 12:56

제 2 장 ( Chapter 2, Amos )


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모압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가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회를 만들었음이라 
4.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 열조의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하였음이라 
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모압의 죄.

유다의 죄.

이스라엘의 죄.

 

모압의 죄는 세상적 죄.

유다의 죄는 '하나님에 대한 죄'

이스라엘의 죄는 역시 '세상적 죄'.

 

순서는 '모압' - '유다' - '이스라엘'이다. 
'불신자' - '믿는 우리들' - '왜곡된 자들'.

 

분석을 했지만 나에게 무슨 뜻을 보이시려시는 것이실까?

 

세상적 죄는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은 죄들을 의미하는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죄는 세상 죄는 아무리 지어도

기도하고 예배만 잘 드리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고 세상의 것도 최대한 죄 짓지 않으려 몸부림 치면서

거기에 하나님의 원하시는 '신앙인적 형태'를 준수하라고 강요하시는

'세상의 의무 + 신앙적 율법'의 의미는 아니신 것 같다.

그러한 이중고에 대한 생각의 오류가

믿는 자들에게 '자유'가 아닌 '무거움'으로 다가오고

십자가 신앙이

율법 신앙으로 바뀌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유다에게 특별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앞에서 짓는 죄'는

차원이 다른 '특별히 사랑하는 자'에 대한 총애적 개념이시다.

 

 

 어제 CPE 모임이 있었다.

거기에서 '모 전도사'님의 나눔이 있으셨다.

사역하시는 교회에서 불신자의 가정에서

믿게된지 1년이 지난 고2의 남학생과 대화한 내용이었다.

 아이는 성격이 낙천적이고 찬양을 좋아해서

찬양대에 서면서 너무 기쁘게 신앙생활 하던 아이인데

갑자기 침울해지기 시작해서 였다신다.

 대화를 하던 중 아이가 하는 이야기가

' 전도사님 , 이전에는 꾀죄죄한 사람이 지나가면

함부로 놀리고 힘없는 아이 괴롭혀도 아무렇지 안했는데요..

지금은 마음에 걸려요.

어른이 차에 타시면 자리 양보안하는 것도 아무렇지 안했는데

지금은 마음에 부담이 되어요.

그런데 문제는요.

그런  마음이 들면서도 여전히 그때처럼 나도 모르게 하고나선

후회를 한다는 거예요.

마음이 혼란스러워요.

그리고요.

찬양을 할 때 너무도 기뻐서 하나님 만을 위해서 드려야 겠다.. 하다가도

사람들이 '은혜 받았다' ... 하며 칭찬하면

마음이 너무 기뻐지고 그 소리에만 신경이 써져서

하나님께 죄송해요...

전도사님은 어떠세요? ' 했단다.

많은 대화 가운데 아이는 마음이 풀려서 갔다한다.

 그 소리를 들어가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 들이 가지는 마음의 부담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별로 가지지 않던 부담들이

하나님을 믿어가며 죄에 민감해지면서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고

알면서도 해결하지 않은 죄는

'죄책감'으로 변해 마음의 짐이 가중되는...

이런 부담은 믿는 자에게는 누구나 있다.

 문제는 사람에 따라 약하거나 혹은 너무 강한 차이가 있고

설령 느껴도 '죄의식'을 잊으려고 더욱 죄에 몰두하거나

반대로 과도한 자기 절제를 통하여 '율법'으로 빠져 들어가거나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둘 모두 일시적인 '도피'는 되지만

궁극적인 해결 내지 '자유'는 되지가 않는다.

 

 오늘 '유다'의 죄는 특별하게 '세상의 죄'와 구분하여 말씀하신다.

세상의 죄도 정죄하시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죄'는 더욱 구분하여 징죄하신다.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정답이다.

'성령'의 도우심이 정답이다.

그리고 그러하심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러한 추악한 죄덩어리 '유다' 같은 죄인인 나를 위해

사랑함으로 예비하셨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학생은 '죄'를 깨달음이 참 다행이다.

죄는 추악하지만 그 죄를 가진 자가 본인 뿐이 아님을 인정하면 된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하여 민감함은 잊지 말아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는 십자가 앞에 가지고 가야 한다.

십자가 예수 께서 보혈로서 자신의 죄를 씻어주심을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성령으로 '같은 죄'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되풀이 고백해야 한다.

그 죄를 고백해야 하는 당위성을 알아야 한다.

 불신의 세상에서 벗어나  일년 밖에 되지 않은 그 학생.

그 학생이 그러한 열심을 가지고

세상의 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원리에서 열심을 보이는 이유를

스스로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진리이시다.

살아계시다.

세상의 죄는 '자신' 속에 갇혀 있음이다.

그것은 남을 배려 함이 없음이다.

남을 배려함이 없고 자신 속에 갇혀 있음은 '지옥'의 원리다.

지옥의 원리는 '말초적이고 단발성이며 자꾸 자꾸 더욱 큰 자극이 필요하다. '

그러기에 영혼으로 인하여 갈급하게 한다.

세상 속에서 마취되어 그 속에서 살면

그 죄가 그를 붙들어 느끼지 못하게 하지만

회복되어 치유 받은 '중독자' 들이 다시는 그 세계를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원리 안에서 '자유'와 '구원의 홀가분함'을 체험한 자들은

다시는 지옥의 원리로 들어가길 두려워 한다.

하지만 마약이나 술, 담배 같은 중독은 인간을 평생 따라 다니며

호시탐탐 자극을 준다.

 죄가 그렇다.

그리하기에 믿는 자들이 '죄'에 민감해질 수록 더욱 무거워 질 위험이 있다.

그럴 때 '치료'를 받아야 한다.

'말씀'과 '기도'로

예수 보혈의 씻음을 다시한번 확인해야 하고

그로 인하여 성령 충만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투쟁이다.

믿는 자는 죽어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죄'와 싸워야 한다.

자칫하면 마약 같은 사단의 죄들이 물고 늘어진다.

그게 연단이다.

연단을 통해 시간이 지나가면

서서히 때는 벗겨지고 순금 만 나오게 된다.

정금만 나오게 된다.

 중독이나 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풀려 나온다. 

   나 .

담배 끊기인지 12년.

지금은 거의 아니지만

주님의 철저한 은혜로 담배가 끊긴지 수년 동안도

가끔 가끔 불현 듯 피웠던 그때가 아련한 그리움으로 확 밀려오는 경험을 했었다.

이전..

내 의지로 끊으려 3개월 노력했을 때도 있었지만 여지없이 실패했었다.

은혜가 날 잡으니 물론 아주 쉽게 벗어났지만.............

 

 그렇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하나님의 원리 안에 서려 노력하는 자들은

세상의 죄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히 물러나게 된다.

우리 믿는 자들이 '죄' 라 함은

세상의 그런 죄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들은 직접적이고 고민하지 않는 깊은 죄이지만

우리는 그 죄에 대하여 민감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한번 더 고민하는 차원이 다른 죄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앞에 서려 노력하면

세상의 죄는 아주 멀리 가버리는 ..

차원이 다른 입장인 것이다.

 

오늘.

유다의 죄에 대하여 징죄하시는 표현은 하시되

불신자는 배역한 자들의 그것과 달리 보시는 것은

그들은 '주님의 특별한 사랑' 안에 있는 자들임을 보이시는 것이다.

 

 나.

믿는 자.

기도하는 자.

말씀을 좇으려 노력하는 자.

죄에 대하여 민감해 있는 자.

하지만 죄책감에 대하여서는 비교적 자유로와 진 자.

그것이 내 노력이나 도덕적 노력이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그 사랑과 귀중함을 알고

성령의 임하시는 '은혜'를 체험한 자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벗어버려야 할 '서너가지' 죄가 있다.

그 죄를 민감히 깨닫고 다시 다시 주님 앞에서 해결 받지 못하면

또 다시

'이스라엘의 죄' 처럼 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어 버리고

돼지가 그 토한 것에 다시 누워버린다는 표현의 그런 죄..에 머물게 될 지도 모른다.

 

 오전 금식을 하며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시길 기도'하라는 말씀대로

따르게 하신 이유를 깨달아 간다.

아모스 서를 통하여 '회개'에 대하여 계속 말씀하신다.

감사하다.

난.. 내 일생의 매 순간순간 마다

주님의 말씀으로 이끌림 받아 간다.

 

 

 

적용

1. 흉악의 결박을 푸는 금식... 을 지속해 보자.

 

2. 회개한다.

 매일 매일 눈뜨고 짓는 죄가 말도 못한다.

 어찌 그리도 죄가 많은지..

 정말 주님의 말씀이 아니시면 '죄책감'에 짓눌려 죽을 지도 모른다.

 

3. 죄책감이 있음은 당연하되 그것은 십자가 앞까지 가는 동력이다.

  모티브다.

 그후에는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 해결 받음을

 우리는 안다.

  죄의식은 죄를 인식하는 도구되 받아들이지는 말자.

 

4. 성경 세장 읽자.

 

5. 선택이 중요하다.

  죄를 비웃고 세상의 다수처럼 살것인가?

 아니면 주님 앞에 더 가지고 나가 말씀안에서 기도로 해결 받을 계기이던가?

  내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6. 하나님 안에서도 외적인 이룸보다는

  내적인 성결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외적인 성취를 통하여 영적 성결성까지 올라갈 수 있다면

  금상 첨화다.

  삶과 동떨어진 성결은 변질의 위험성이 많다.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아모스 서.

어렵습니다.

특별히 죄와 회개에 대하여 나오기에

묵상하기가 점점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전 보다 죄책감은 덜하되

죄를 싫어함이 더욱 커진 것으로 보아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했던 지난시간이

그리 헛된 것은 아니었음을 깨달아가며

참 감사하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주여.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매일 성전의 삶을 사는 것의 그 소중함을

말로 어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면전 신앙.

주님을 손잡고 가는 삶의 기운참이야 말로

정말 대단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함에도 실은 세상은 참으로 마약처럼

붙들고 놓치 않으려 합니다.

비아냥으로 마음을 흐리게도 합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흔듭니다.

주님.

그래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나이다.

이제..

유다의 죄에 대하여

다시 한번 묵상합니다.

제 안에 시퍼렇게 살아있는

'서너가지 죄' 들에 대하여

십자가 앞에 가져옵니다.

이 포악을 제거 하소서.

이 교만을 제하소서.

이 게으름도 그리하소서.

이 비교함으로 세우는 우상의 죄를 용서하소서.

주님 나를 위해 돌아가심을 깨닫지 못하는

이 무지의 죄를 용서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리하시고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깨끗이 씻어졌음을 믿습니다.

주님이 그러하심에도 절 강하게 사랑하심을  확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유로움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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