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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을 들어 바라보기만 하면[민23:27-24:7]

주하인 2023. 5. 7. 09:49

잠시지만 아이의 표정에서 황홀함이 읽혀지네요. ㅎ 부디 아이의 일생의 주의 성령으로 저리 사로잡히길 원합니다

 

주님의 영이

제 온 영혼을 관통할 때 다가올

그 생명의 감격으로 

제 인생을 이끌어 주소서

 

바라옵기는 

항상 그리되었으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이 버거운 낯을 들어 

제 앞에 놓인 마지막 저항들을 

바라보며 이겨낼 수 있는 

주님의 유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힘을 주소서

그리하여 허락하신

주님의 생기

생명의 흐름이

제 온 영혼을 폭주했으면 합니다.

할렐루야

 

24장

발람이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전과 같이 점술을 쓰지 아니하고 그의 낯을 광야로 향하여

 어찌되었든

상황에 이끌리어 어쩔 수 없이지만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선택의 올바름을 

주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나서

자신의 특기이자 살아온 방편인 ^^; 점술을 쓰지 않는 결단을 하고 나서

더 귀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광야로 '그의 낯을 ' 향하였다.

 

 

2 눈을 들어 이스라엘이 그 지파대로 천막 친 것을 보는데 그 때에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임하신지라

그리고 나서는 

'광야 40년의 고행중 찌들대로 찌든 ' 

어쨋든 발람의 인간적인 눈으로는 

보기 힘든

어쩌면 보기 싫은 자들을 (천막 친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성령'이 

그 위에 임하셨다

 

그가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5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리고 그제서야 

어제의 묵상구절에서 읽혀졌던 

온통의 '자아'의 욕심과 무지몽매한 행동과 

자신의 삶의 방편이었던 점술과

거기에 '하나님의 사자'에 대한 '두려움'이 겹쳐져

보기에도 역겨운 눈치 살피기 신공^^;으로 일관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詩人' 같은 음률로 

온통의 예언으로 힘있게 선언을 한다 .

더 이상 '발락'의 눈치를 살피고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 말씀에서 

일단은 '성령'으로 충만할 때 나오는 

당당함과 그 운율감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 .

살아있고 생기있는 증거는 

'흐름'이다. 

 그게 때로는 '시'로 나오고 

'음악' 으로 

노래로, 

........로 나온다. 

그게 '공감'이 된다. 

 

 그렇다 .

생기 있는 것이 그렇고 

생명이 그렇다 .

막히지 않아야 한다. 

흘러야 한다 .

점점 발전해야 하고 

점점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오늘 '발람'의 모습을 통해 깨달아지는 바가 있다. 

그러기 위하여.. 

주님이 기뻐하셔서

내가 주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 ..

주님의 영으로 채워지는 자들의 공통적인 감동의 흐름을 위하여

먼저...

자신의 선택과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행동'을 해야한다. 

그는 .. 그토록 보기 힘들 수 있는

어쩌면 '거지떼'들보다 더 많은 지저분한 그룹.. 

그것도 너무 어마어마하여 직접 마주하기 괴로운 

광야 40년을 거쳐온 '이스라엘'무리들을 향하여

"낯을 든" 결단을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낯을 들어 

두렵고 버거운 실체를 마주하다.

 

그리고 그러한 결단은 

온전한 내 '의지' 만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

' 주께서 내 살아온 행태'... 

내 삶의 아주 작은 순종을 기뻐하시며 격려하심을 깨달은 경험들이 쌓여야한다. 

주님은 홀로 그냥 두시지 않으신다. 

 

그러기 위하여

들을 귀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이 있어야 하며

그리하여 그 분이 나를 기뻐하실 수도 있다는 

나름의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는 

말씀대로 결단하여야 하고 

결단을 통하여 

그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눈길을 깨닫고는

'낯을 드는' 

행동을 해야한다. 

 

그리고는 

그 때 임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우리는 누리면 된다. 

 

터지는 '생기'의 흐름.

생명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그 도도하고 힘찬 흐름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 

주님은 우리를 홀로 두시지 않으신다. 

아이때처럼 항상 달콤한 위안과 위로만으로 안아주시지만은 않는다 .

때로는 

정말 하기 어려운 결단,

성장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마주해야할.. 

낯을 들어 보아야 할 그 것을 보길 원하신다 .

그리고 그 순종을 보시고 

주님은 정말 기뻐하시며

우리의 영 안에 내재 되어있던 생기의 폭팔을 인도하신다 .

 

그게 원리다. 

 

그렇다면 오늘 내게 무엇을 바라시고 원하시는가?

 

'낯을 들어 바라보길 '원하시는 것 같다. 

 

무엇이 아직도 남아 있는가?

난.. 안다. 

난... 

 

하지만 그렇다. 

자꾸만 '발람'처럼 이리 저리 피하는 것이 없지 않아 있는 듯하다. 

 

그런데... 

주님이 낯을 들어 바라보라......심 같으시다. 

용기를 내어 고개들어 바라보라 하심 같다. 

그리고 나면 

아주 익숙한... 

아주 오랜 시간 인도하시어오신 방법대로 

또한번 '큰 감동'의 인도

생기와 생명으로 충만한 

주님과 교통하여 이루는 합력의 결과를 보이시리라.. 하시는 것 같다 .

 

주여.

아직도 실은 자신이 없습니다 .

알듯 모를 듯..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할지.. 

그 근처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

 

주여.

낯을 들어 바라보라...심...........

어디까지 이신지요?

 

주님 .

제 평생의 그것.........

말씀이신지요.. 

 

오늘 하루.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겠습니다. 

주여.

 

홀로 하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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