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미련의 안장을 다시 지우지 말자[민22:21-35] 본문
주여.
오늘도 제가 제 나귀에
미련하고 우매한 욕심의 안장을
지우지 않을 정도의 강함만을 허락하소서.
그냥 제 위에
주님의 안장
예수님 사랑의 십자가 안장 만을 씌우소서
그리고 고집과 아집과 욕심 대신
허락되어지는 놀라운 기쁨과
그리함으로 누려지는 평강의 행복으로 절채우소서.
부디
그리함으로 이루어지는 거룩함으로
제 나머지 삶이 채워지길 소원합니다.
내 주여.
21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
당연히도 그러면 안되는 일을
'고관들을 유숙' 시켜가며 자기 자신의 욕심과 싸우던 '발람 거짓 선지자'(이도 하나님을 아는 자다. ..
잘못 믿는 우리들.. 한발을 세상에 담고 살면서도 하나님을 무시하기엔 너무 찝찝하여 그대로 살아그는 우리.. ㅠ.ㅠ)가 드디어는
고집의 상징이기도 한 '나귀', 그것도 '자기 나귀'(암시하는 바가 크지 않던가? 내 자아 덩어리로 꽁꽁 뭉쳐서 마치 그게 잘나가는 줄 알고 가끔 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번민 조차 결국 자기 합리화 시켜 자신의 틀안에 꽁꽁 묶어 버리는 우리의 우매무지한 심사와 닮지 않았던가? 절대로 고치지 않는... )에
역시 세상의 기대감으로 상징되는 '안장'까지 지우고는
모압... 영적 전쟁의 '사단 편' 으로 상징되는 자들을 향하여
마치 '예수님 팔아먹는 유다'처럼 터덕 터덕 나간다.
아.. 이 답답하고 미련하기가 말도 못하는....욕심덩어리.. 미련함... ㅠ.ㅠ;;;
22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
하나님께서 과연 정말 능력이 없으셔서
그가 갈줄 몰랐다는 표현이실까?
하나님께서는 늘 그러시지만
미리 예견하고 바라보지는 않으시는 것 같다.
다 아시지만 최소한의 간섭이외는 세상에 하지 않으시는 것이
이럴 때 드러난다.
예견하시고 다 아시는 그 '전지의 능력'을 쓰셨다면
'진노'하실 것이 무에신가?
아니.. 그러실 것 같으면 인간을 창조하시지도
그리고 우리에게 '감정'을 허락하시지도
'굳이 '십자가에 예수님 달리게 하시지도...
그냥.... 게임처럼 , 로봇 조정하시듯 하시고 말것이 아닐 겐가?
각설하고
다시금 '우리의 선택'을 중요시하고
우리와 '합력'하여 이루어가시는 이 인생.. 이 땅의 흐름을 기뻐하심이시며
그 선택을 통해 '영생의 심판'.. 상급의 심판이 결정됨이
다시금 깨닫게 되는 부분이다.
하여튼..
정말 중요한 때..
정말 어찌할 수 없는 '공의의 간섭'을 하신다.
예수님 오신 이전이니 조금은 더 빈도가 잦으시지만...
'사자'들을 세상에 내려 보내신다.
25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27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그리고 이러한 때
우리는 이런 상황에 처하고 말게다.
만일 '내가 정말 알면서도 나도 모르는 고집'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을 하게 될때
주께서 간섭하시는 증상, 현상 말이다.
상황이 정말 예견하지 못했던 되풀이 ..
마치 고장난 카셋트 테이프처럼 도돌이 될 때
기시감 있는 일들이 일어날 때
무언가 설명할 수 없지만 그게 당연한 것 처럼 느껴지며 당황될때........
담벼락에 문질러지고
땅바닥에 주저앉다 못해
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29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나귀가 입을 여는' ..
상상도 하지 못한 일들이 번연히 일어나는
세미한 일들이 놀래킬 때..
정말 얼마나 놀랫을까?
30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그런데 그 놀라운 일들이 다 놀라기도 전에
너무도 합당한 논리로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그때.........말이다.
"내가 언제"라 지 않던가?
혹여.. 오늘
살아가다 이런 황당하지만 '너무 확실한 근거로'
"내가 언제'하며 일상에서 당황시키는 일이 벌어질 때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명심해야 겠다.
31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머리를 숙이고 엎드'려야 한다.
'먼저' 그래야 한다.
'그때에'
주님께서 '눈을 밝히'신 후에야 겨우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는 게 아니고
'먼저 ' '머리를 숙이고 엎드려'
자신을 돌이키고 주님 앞에 "회개" 를 해야 함이
먼저가 돼야한다.
그리고 나서
주님의 은총으로 '눈이 밝혀져'
주님의 기뻐하시는 가운데.....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ㅠ.ㅠ
나.
돌아보면
그 수없는 '발람' 같은 미련함 통해
강제로 엎드려져서
눈이 밝혀지는 체험들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솔직히 생각도 하기 싫은 'ㅇㄹ 사고' 때
정말 한겨울 이불 속에서 '땀이 너무흘러 ' 다 젖어
드라이기로 말려가며 잠을 청하면서
내내 '주님 ...'을 외치고는
3일 만에 몸살 앓고 회복되던 환자의 개운함 같은 깨달음으로
화창한 주일 아침 햇살을 맞으며
눈이 떠진 듯 개운하게 일어나며
마음이 든든해지고 어떤 일도 받아 들일 수있을 것 같은
강한 임재감으로 잘 이겨나가게 된.......
그 무덤속 부활 같은,
발람의 이상한, 버거운 현상들의 두려움 앞에
'눈이 밝아지'며 '여호와의 사자'가 보이는 것 같은
비록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그 눈이 밝아지는 체험을 들어가며
그때의 경험들이 떠오른다.
하나님이 강하게 나타나심.
미리 무릎꿇지 못한 '우매'함의 결과.
34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그리고 그러하기 전에
미리 더 '회개 '하고 돌이켰으면 좋았을 '회개'의 아쉬움... 이
다르지만 공통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35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가니라
하지만, 당연히도
주께서 모르시는 일이 없으시고
주님의 전능하신 예정 앞에 있는 수없이 많은 시나리오 중
이 미련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 만으로(죄송하지만 하나님을 도구로..ㅜ.ㅜ) 세상을 살아가는 (아.. 옳지 않게 무당처럼 하나님을 이용하며 밥벌이 하지만... 최소한 발람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 그나마 .. 그렇다 .. 그나마의 믿음은 있는 자이다. 기복신앙도 신앙이긴 신앙이다. 상급없는 우매하고 미련한.... 그렇지만 불신자보다는 아주 조금.. 낫다. 난..?. ) 자이기에
그의 모든 '선택'을 존중하고 계신다.
그리고는 당연히 안갔어야 하는 길이지만
가게 하시고
그 안에서 또 하나님의 다른 길을 틍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다.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라 심.
나의 '고집'을 안타까워 하시지만
완전히 꺽어
로봇처럼 절대 명령 복종, 아니면 파멸.........을 원하지 않으심..
'선택'이라는 기회를 주시며
'자유의지'를 허락하시어
'주님과의 교류'를 통한 이루어가심이
하나님의 기본 치리 원리 이심..
거기에 '사랑'과 '공의'의 인도를
주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이루어나가는
'대협연의 앙상블 연주회' 같은게
이 땅,
우리네 인생
내 삶을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시란게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심에 내포되어 있으심이다.
그렇다면
내게
오늘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함이시던가?
일단..
내겐 남은 고집이 없던가?
내 욕심으로 하나님을 이용하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이지만 최대한 내 방향으로 합리화시키려는 미련함...말이다.
또한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버거움이 있을 때
그게 '하나님의 시간'에 맞물려 있음을
잊지 않고 있어야 함을 깨닫고
얼른 '회개'의 자리로 무릎을 꿇어야 함.. 말이다 .
또한.. 버거울 때가
어쩌면 하나님의 사자가
바로 앞에 있는 때일 지도 모르니
당황이나 좌절보다 '회개'.. 가 우선임을 말이다.
그리고 기대해도 될 듯하다.
모든 인생의 일들 을
주님께서 모르시는 일이 있을 실까?
그렇게 '오해'한다는 사실이 바로 내가 '발람의 우매'로 눈이 가려져 있음임을 깨달아야 한다.
얼른 무릎 꿇어야 한다.
매사 그래야 한다.
감사하다.
주님.
우선 말씀을 보면서 드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 상황들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던........
그러한 때가 몇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무엇인가 제게 보내시는 강력한 싸인임도 알게 되었었습니다.
부디..
제게 그런 미련하고 우매스러운 고집은 없어야 하겠지만
그마져 깨닫지 못하고 '잘 나가고 있단' 착각이 있다면
깨닫게 하소서.
제 눈을 밝히시어
'하나님의 임재'를 보게 하소서.
제가 무릎꿇게 하소서.
주여.
감사하옵는 것은
그 어떠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며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주여.
그래서 힘이 나고
그래서 차분히 앞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오랫동안' 스스로를 '불안 전문가'라 자조섞인 글들로
이 블로그에 써 놓던 자가
어느새 거의 대부분을 잊고 살아가는
그런 '축복'안에서 삽니다.
소망이 채워지고
담담한 고요와 평안이 어떤 것인지 누리게 되고
행복에 대하여
아무런 조건의 변경이 없음에도
자주도 느끼게 되고 있습니다
주여.
부디 바라옵기는
이 영적 감성적 누림에서 머물지 못하게 하시고
오늘도 뚜렷이 남아 있는
내 안의 자아의 용트림,
나귀같은
나귀의 주인같은 고집을 바라보게 하시며
부디 간절히 비올 것은
그 나귀에 '미련의 안장을 엊는 실책'을 하지 못하게 하소서.
아닐 줄 알면서도 '욕심'으로 합리화시키면서 행하던
과거의 너무도 뚜렷한 잘못들이
교묘히 가장되어 아닌 듯 또 벌어지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고 .. 그러함에도
저를 버리지 않으시는
항상 변개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감읍케 하소서.
그래서 .. 매사 더 기뻐지게 하소서.
아.. 이 땅은 거룩함을 위한 것이지
내 행복을 위한 장소는 아니라시던 이찬ㅅ 목사님의 말씀처럼
거룩함을 위하여
선택적으로 우매의 안장을 벗어 버리게 하소서.
간절히 비오며
오늘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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