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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멋진 변신을 기다리며(출3:1-12)

주하인 2008. 3. 29. 10:59

제 3 장 ( Chapter 3, Exodus )
1.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40년간

왕자 모세가

양치기 모세로서

양무리를 치고 다니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호렙산 근처를 다니며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슨 느낌으로 있었을까?

 상념으로 머리가 깨지는 듯한 시절을

수년간 겪은 후 체념했을까?

체재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을 양치기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멍한 사람으로 자신을 눌러 버리거나

미치거나 하는 방법을 쓰는데

그도 그랬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난..

 

어제도 순간적으로 양치기에 적응해 들어가는

그의 풍모에 대하여 묵상한 것이 있다.

그는

양치기로 낮추었지만

그 시간은

하나님께 맡긴 시간일 수 있다.

그 추정은 아래에 나온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위의 추정으로

모세 같은 특수 상황의 사람들은

모든 일에 관심이 떨어지기 일쑤다.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져

설령 눈 앞에 벼락이 떨어져도

관심이 없어진다.

 

 그는 광야 멀리 호렙산 근처를 지나며

거기에 떨기나무의 불 조차 본다.

 건강한 관심을 갖는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관심을 넘어서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 호기심을 확인할 행동력도 가지고 있다.

 

 왕자 모세는

양치기 모세로

멋지게 변신하고 있다.

 

그 기간이 40년이다.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보라.

건강한 반응

부르심에

즉각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 하지 않는가?

 


 
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거룩한 땅

 

개인적으로

이 단어들을 참 좋아한다.

'거룩한 땅'

 

 예수님을 영접하고

오랜 시간이 경과되어서야

난 그 분이 내 안에 계시고

난 그 분의 성전이며

성령이 운행하시도록

날 내드리는

날마다 거룩한 땅에 서 있을 수 밖에 없는 존재란 것을

겨우 깨달았다.

이제는 느낀다.

깊이.. .

찬양도..

'거룩한 땅에'를 좋아한다.

 

수없이 많은 성경의 글을 통해서

들어왔지만

'거룩한 땅에 서있는 나'라는

정체성을 가지기는

참으로 쉽지 않은 시간을 돌아서야 이루어 져간다.

 

 그러한 사실을

하나님은

첨 나타나셔서

양치기로 변신한 모세에게

불현듯

갑자기

뜬금없이

벼란간

말씀하신다... ㅎ

 

 그걸

어리석은 평범한 자들이면 이해하겠는가?

영적으로 이제 갓 주님을 영접한 자라면 어떻겠는가?

눈만 뻐금거리지 않겠는가?

아니면 젊은 시절의 모세 같으면

어찌 대답을 했겠는가?

 멋진 대답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겠는가?

아니면, 이상한 귀신 보듯 펄쩍 뛰어 도망갔었을  수도,

아니

아예 불꽃이 올라오든

화산재가 터지든

불꽃이 전 호렙산을 태워도

아무런 관심을 안두었을 수도 있다.

오직

자신의 '관심'인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번영에만 집중되어

불이니 불꽃이니

그의 삶에는 의미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받아 들인 자신과

본래였다고 생각하여왔던 자신을 융화시켜

영혼에 자연스럽게 녹여 내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 했을 것이다.

아마,

자다가

벌떡 일어나

휴우!

허~~억 ~ 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던 경우가

수도없이 많았을 것이고

불면의 밤도 많았을 수도 있다.

꿈 속에서 금빛 찬란한 왕궁의 침실에서

미녀들과 노니다가

깨어서

양무리의 똥냄새 속에 파묻혀 초라하게 자고 있는

자신을 낭패의 감정으로

쳐다보던 것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횟수가 점차 줄어들며

아마

년수가 지나가며

서서히

그의 영혼에

평온함이 찾아 왔을 것이고

어릴 적 불러 주셨던

유모이자 진짜 어머니의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노래와

자장가 속의 옛 선지자들의 이야기들이

기억 나며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들이기 시작하게 하였을 것이다.

 

그의 놀라운 적응 능력과

하나님의 뜻과

그에 부응하는 연단이

주님으로 하여금

이제는 조국을 이야기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 하실 때가 오도록

하게 된 것 만 같다.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이제 하나님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 내신다.

 

 때가 된 것이다.


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그가 얘기 하기 보다는

불꽃 안의 하나님이 먼저

그에게 얘기한다.

 

아니..

왕자이었을 때 얘기했더라면

훨씬 쉬웠을 역사를

양치기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인생 모든 일의 성사가

인간의 위치

인간의 지위

인간의 성취에 있지 않고

하나님 뜻에 달려 있음을 보이시기 위함은 아니던가?

 

 너무도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못하게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이야기로

기다리는 사실을

신실한 신앙인 들 조차

어쩌면 이야기 속의 허황된 믿음이나

유치하고 치기어린 자들의 생각으로 받아 들이고

각종 프로그램과

덩치 키우기와

비전 선포식등을 통하여

마구 일을 저지르는 일들이

현시대에 마구 마구 벌어짐은

어쩌면

그게 반드시 신앙의 올바른 모습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 묵상을 통하여 넌지시 내 영혼에 던지시는

하나님의 깨달케 하심이신 듯하다.

 

 기다림.

주님은

주님의 때가 되길 기다리며

주님을 잊지 않고

인내하길 기다리신다.

 

 


 
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그 때는

주님 안에서의

주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정체성을 회복하고

주님이 바라시는 기도가 차고

주님이 허락하신 고난의 연단의 시기가 차서

영혼 한톨까지도

주님으로 만족할 수 있을 때다.

 


 
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보라.

모세가

얼마나 겸손한가?

얼마나 자신이 없는가?

이 사람이

40년 전에는

영웅 심리로 가득차

사람을 패죽이고

자신의 동포끼리 싸움하는 것을 말리러 뛰어들던 자다.

 그런 그가

이리 자신 없는 소리를 한다.

 

많은 부분 기쁘다.

내 자신없는 소리를 보는 것만 같아서...

오랜 연단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강팍했던 자로서.. ㅎㅎ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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