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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안에서 '로서'(출 1:1-22 ) 본문

구약 QT

주님 안에서 '로서'(출 1:1-22 )

주하인 2008. 3. 27. 12:35

 제 2 장 ( Chapter 2, Exodus )

내가

비둘기라면

가장 비둘기 답게

모이를

주어먹으리라.

 


1.  레위 족속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었더니 
 애굽 생활 400여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확실히 안다.

 레위족속이 레위 여자에게 장가를 들었다.

 


 
2.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
 3개월이

얼마나 고통의 기간이었을까?

 
 
3.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역청 바른 갈 상자를 준비했다.

 또한,  그들은  아기를 담고 하숫가 갈대에 두고 

 
4.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
 누이가 쫓아갔다.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7.  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하나님은

바로 딸을 만나게 하셨다.

누이가 기회를 만들 수 있게 하셨다.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어미를 불러옴은

누이가 했다.

하지만

주님이 하셨다.

이해할 수 없는 '묘수'로

그럴 수 밖에 없게 하시었다.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놀랍지 않은가?


 
10.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이게 바로

모세를 통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위한

주님의 역사였다.

 

 

 어제는

골반경 (레이져)수술 이 끝나고 진료실로 들어오니

9시 경이다.

목요일 전인치유 악보를 위해

새로운 골반경 시술을 위한 홍보물 제작 시안을 위해

파워포인트와 HWP파일 만들고 나니

11시 반.

 목요일 아침 일찌기 큐티 찬양인도를 위하여

일찍 자고 나와야 한다.

 몸이 피곤함을 호소하지만

늦은 밤하늘을 쳐다보며  난 맑은 숨을 내 뿜을 수 있었다.

 감사함이 온몸을 휩쓴다.

난 정말 만족스러웠다.

비록 높은 연봉은 아니고

노력의 댓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보람이 있다.

 

 이 늦은 나이에

새로운 수술 기법을 난 시도했고  성공하고 있다.

그것도 만족스럽게..

그리고 내 좋아하는 찬양을 맘껏한다.

거기에 안정된 직장이 있다.

 

한동안 열심히 찬양하고 봉사하는 나의 귀에

'여기가 교회인가?

' 예수님만 믿으면 무얼 해 , 실력도.......'라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흔들리는 날이 많았다.

정말 그런가?

그럼에도 왜 내가 이 곳에서 이렇게... 라는 의문이 날 혼란 스럽게 할 때가 많았다.

 이제 시간이 지나고 좀 다르다.

사람들이 '전인치유'에 '주하인'이 서 있다는 것을 'Trademark'처럼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

인정 받음도 좋다.

스스로도 인정한다.

난 그자리에 서 있는다.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한다.

내 달란트는 의사이기도 하지만

찬양도 있다.

내 기쁨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고픈 욕망도 있다.

그러기에 성공하고는 거리가 멀고

찬양 듣는 환자 분들이외 몇 분의 뜻을 같이하던

동료들이외에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악보를 매주 준비하지 않으면

데이터를 이용하려면

영혼에 걸리는 부담이 심해서

그럴 수 도 없기에 '수요일' 퇴근은 아주 늦은게 보통이다.

그러면서 기도했다.

'내가 여기 있어야 할 이유요... 주님.."

 의사로서

찬양 사역자로서

직장인으로서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난,

이제야 내 '정체'를 조금씩 확신하고

내 자리매김을 해 나가고 있기에

흔들림이 덜해가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주님 안에서 내 존재를 잊지 않으려 하니

의사로서의 새로운 능력도

주시는 듯 하여 참으로 기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퇴근하는 저녁 길에

불현듯

얼마 전에 '선교사'로서 헌신하며

떠나던 'L' 선교사님의 고별사가 생각이 났다

" 주님 일에 열심을 보이니

수술 기술도 늘려 주어서

처음해보는 것도 너무 잘되고

누구나 어려운 수술은 다 날 찾으니 놀라왔어요.'

그게 이해가 갔다.

주님은

주님의 일에 먼저 열심을 보이면

나머지 것도 알아서 해 주신다.

최소한 주님 일한다면서

위의 소리는 듣지 않도록 하시는 게 주님의 뜻인가 보다 .

그러기 위해

주님 안에서

내가

누구로서

서 있어야 하는 지 확실한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한다.

 

 오늘

'레위' 자손임을 잊지 않고 있는

강력한 자기 인식이

모세라는 인물을 출생케 하는 결과를 보인다.

 그들은

과연 인생에 이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까하는 정도의

대단한 역경을 맞고 있다.

자식을,

동생을 버려야 하는 끔찍한 상황에

맞닦드리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로서의 최선을 잊지 않고 있다.

누이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찌될지 모르지만

'역청'을 바른 갈대 상자를 만들고

하숫가에 조심스레이 띄우고

누이는 어디까지일지 모르지만

열심히 쫓아간다.

 비록 생략이되어 있지만

어머니 아버지는 3개월의 밤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뜬 눈으로 보내며

자식을 버려야 하는 아픔에 시달렸을 것인가?

얼마나 많은 우울함이 그 가정을 지배했을 것인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바구니가 흘러가자 뒤따라 좇아가는 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구니가 끼우둥하면 그 심장은 덜컹하지는 않았을까?
물보라가 튀면

그 눈에서 눈물은 몇방울이나 쏟아 졌을까?

물길이 빠르기에 따라

달리는 속도에 숨은 얼마나 턱까지 차올랐을까?

 눈 길을 바구니에 두고 달려가기에

개중에 몇번은 걸려 넘어지지는 않았을까?

뜨거운 낮에 달리다 얼마나 탈진했을까?

하류로 내려가면서 강변에서 멀어질까 얼마나 초조했을까?

......................

 

 이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엄청난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되는 부분에서

포기하기를 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다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바로의 딸과 만나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자

누이는

기약없이 뛰어 달려오던 걸음을 멈추고

유모로서 엄마를 추천 해 드려

비록 신분을 숨겼지만

바로의 궁에서 정식으로

자식의 입에 젖을 물릴 수 있는

온전한 거둠을 받을수 있지 않았던가?

 

 이제

원리가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정말

이 세상은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살기에

점차로 힘이 들어간다.

권모와 술수가 승리를 하고

자신의 이익과 성공과 재물을 위하여

온전히 투자해야

성공한 삶이라 생각되는 수준에 오를 수 있기에

기독교인의 정서로는

세상의 원리 안에서

다시 한번 적응 시키는 과정이 쉽지 만은 않다.

불신자들이 성공하는 노력보다

두 배 이상의 영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정체감이 뚜렷해야 한다.

그리고는

기독교인으로서 겪어야 할 수 밖에 없는

고난과 고통의 원리에 대하여서도

온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

모든 일에

주님의 말씀이 우선하여야 한다는

확고 부동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원리가 준행이 되고나면

일상은

주님이 알아서 인도하신다는 확신도 있어야 한다.

 

 오늘 묵상에서 보이는

모세 일가의 자기 인식이 그렇다.

그들의 최고조에 달하는 역경의 대처가 그렇다.

그들이 움직일 수 없는

강력한 운명의 폭풍우 속에서도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아이의 부모로서,

아이의 누이로서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고

오히려 최악에서 최고로 대 반전을 보았다.

 

 주하인

어려운 산부인과 중년 남자 의사로서

나이든 찬양 아마츄어 사역자로서

세상 살이에 부적격 자로서

부정적인 세상관의 소유자로서

박봉에 늦은 퇴근의 격무이며

보람없을 일이라면

정상적으로 인내하고 있지 못할 자가

피곤하지만

오히려 기분좋은 나른함으로 인지를 하며

새벽의 출근과

늦은 퇴근이 반복되는 가운데서도

평강의 기쁨과

놀라운 은혜로

내 영혼을 채울 수 있음은

오직

심한 시련의 기간 중에서

날 큐티와 찬양으로

기도로 주님을 선택하고

주님 뜻이라면.. 이라는 결정을 함으로 써

내 속에 이루어진

하나의 확고 부동한 신념,

"난 주님의 기뻐하는 자다.

 난 주님을 기뻐하면 무엇이든 한다.

 내 기쁨을 돌려주고 싶다. "는 생각으로

내 마음이 채워지고 있기에 그렇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난 주님의 뜻대로

나머지는 이끌림 받을 것이란

믿음이 깊어지고 있다.

'의료 기술도'

' 감정적 안정도'

' 장래도'

..........

 

 감사하신 하나님

부활하신 하나님

 

 

 

적용

 

1. 난 주님을 사랑하는 자다.

 인식을 확실히 한다.

 

2. 난 아버지다.

 

3. 난 남편이다.

 

4. 난 의사다.

 

5. 난 아들이고 사위다.

 

6. 난 형제다.

 

7. 난 사회인이다.

 

8. 난 집사다.

 

9. 난 찬양을 통하여 내 기쁨을 나누는 자다.

 

10. 난 블로그를 통해

 주님을 아는 행운과 놀라운 기쁨을 알리는 자다.

 

11. 난 .................

 

12. 위 사실을 깊이 명심한다.

 

13. 성경 여섯 장 읽겠다.

 

 

 

기도

 

주님

오늘은

출애굽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 들에게 시작된 고난과

그에 따른 주님의 섭리를 보고 있습니다.

잘 아는 구절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주님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인식하고  

주님의 뜻안에서

자신의 것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모세의 성장을 이루게 하시는

주님의 섭리도 보게 됩니다.

일상에서

저도 그리 하게 하소서.

쉽지 않을 일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주님의 뜻을 잊지 않는 자가 되게 하소서.

몸은 피곤합니다.

마음은 평온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당신의 뜻이

온전히 이 땅에서

이 영혼 안에서 이루어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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