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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팡이 & 하나님의 지팡이( 출 4:18-31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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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팡이 & 하나님의 지팡이( 출 4:18-31 )

주하인 2008. 4. 2. 13:56

제 4 장 ( Chapter 4, Exodus )


18.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생존하였는지 보려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20.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지팡이.

친근한 도구.

모세 그로 인하여 

미디안 광야의 삶을 유지하게 했던 도구.

양을 칠 때 꼭 필요 했던...

그게 주님의 뜻에 의하여

뱀으로도

이적의 도구로도 변하더니만

이제

'하나님의 지팡이'로 변했다.

 

하나님의 지팡이로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상황을 완전히 변화하여

받아 들이는 게 모세의 장점이다.

 

 왕자 모세에서

미디안 광야 우물가로 도망와

순식간에 양치기의 일을 도와주며

십보라를 아내로 받아들여

완벽하게 양치기 모세로 변화하는데도

얼마 걸리지 않던 모세다.

 

그는

그의 지팡이를

하나님의 지팡이로 변케 하였다.

그의 능력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면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영혼에 인지하여 의미를 부여 해버리는

능력은 탁월하다.

영웅의 기질인가?

 

 지팡이가

우리에겐 어떤  의미인가?

삶을 유지하게 하는 익숙한 도구.

의사로서의 내 직분.

그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의사의 월급을 받아

의사의 경제적 지위를 누리고

적당한 정도의 여행과 교육 문화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생각없는 받아 들임은

내 지팡이지만

그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이는 도구가 된다면

내 삶의 방편이

주님의 영광을 위하는 도구가 된다면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게 되고

환자에게 주님의 영광

주님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내가 아는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찬양을 하고

그 기쁨을 나도 모르게 같이 나누는 내 삶의 하루하루가 된다면

그게 바로

하나님의 지팡이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위해

내가 참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고후12:10 " 예수님을 위하여 약한 것들과.."


  

 
24.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를 죽이려하시는지라  
25.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이해가 어려운 구절이었다.

'그'가 누굴까?

왜 갑자기 진행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가 불쑥 나올까?

'그'가 모세 '그'라면

왜 그 분을 죽이려 하실까?

그가 아들의 포경수술을 하지 않아서 그를 죽인다?

아니면 아들을 죽인다...?

 

설령 그가

그 이던

그 아들이 그이던

전혀 논리의 전개와 상관없는

그 대단히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그 세심한 하나님의

길의 숙소에서 그를 만나 죽인다는

말씀의 구절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침에 묵상을 했다.

 

어제 저녁

기도하면

나를 아직도 깊이 붙들고 있는

깊은 상념들

'나를 질책하는 자'들에 대한 민감함,

아직도

나의 기분이 중심이 되는 면......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십자가 앞에 털어 버리려 하는...

아직은 진득하지만

온전히 나의 심성에서 떨구어지지 않는..

부정적이고

두렵게 하고..

 

이게 혹시 '그'가 아닐까?

아니

피를 흘리게 싸워서라도

잘라버려여할

포피가 아닌가?

 

 

 

 주님의 지팡이.

일상의 삶이

주님을 위하는 삶이되고

내가 살아가는 삶이

주님 앞이 되는

코람데오의 신앙

 

늘 주님을 담고 사는

임마누엘 믿음..

그에 따라

성령이 내 온 전신을

내 혈관을 따라 운행함이

내가 원하든 원치않든 느껴져

삶의 외적인 상황에 상관없이

늘 평강이 날 주장하고

어느 순간

주님이 개입하셔서

삶의 외적인 상황까지 변화가 되어가고 있는

주님과 동행하는 그런 삶.

 

그게

하나님의 지팡이의 삶이고

그가

그의 영혼의 귀두 표피를 잘라내어

영적할례를 받아

온전히

주님을 피남편으로 삼아 살아가게 되는

우리 믿는 자들의 궁극적인 모습이 아닐까?

지금

복강경 자궁 근종 수술을 끝냈다.

무지하게 큰 자궁을 끄내려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몸이 피곤하다.

마음은 좋다.

아침에 깨달음이 있어서 좋았다.

힘이 들어도

도와주는 자들이 있어 좋다.

도와주는 자들을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 마음의 여유로움이 좋다.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믿기에

그냥 편안하다.

 

힘이 들지만

힘이 들지 않다.

피곤하지만 개운하다.

 

 

난.

내 삶의 지팡이가

주 하나님의 지팡이가 맞다고 고백할

지식적 차원까지는 도달했다.

 

감사하다.

 

 

 

주여.

감사합니다.

이제 방금 일과를 마치었나이다.

심히 힘들고 피곤하지만

전 행복합니다

어제

내일 할 악보를 다 만들었기에 더욱 더 행복합니다.

이제

전인치유에

새로운 반주자들이 협력한다고 해서

하루 더 빨리 만들어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그들이 주님께 성숙한 연주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선한 마음이여이다.

주님.

이것도

하나님의 지팡이로 삼아갈

제 삶의 태도의 변화이고

제 영혼 할례를 위한

한걸음 맞지요????

주님?

감사하여이다.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삶이 자유로와져서 감사하고

그럼에도

기쁨과 감동이 줄어들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주님.

당신은 자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동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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