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맨발로 디디는 믿음의 땅[렘5:13-6:7] 본문
예레미야 5장
13.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때론,
두려움의 대상이
하나님의 때인지, 사단으로 인한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 때도 없지 않아 있을 수 있다.
괜히
긴장되고 불안한 것......
동일한 느낌...두려움..
그 무엇이든 하나님의 뜻이 아닐 때는 없었지만
어쩌면 하나님의 때 (그 때란 , 나의 변화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 가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내게 주시는 말씀이시다.
15.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그 때라는 것.
동일히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사단이든, 사단의 매개체이든 , 상관없는 세상의 관계든, 물질이든..
그 어떤 때이든 벌어지는 것이 맞지만
동일하신 베풂에도
그것이 '하나님의 때' 가 되어서
허락되어진 것일 것임은
'나의 성장', '나의 성장을 위하여 가장 바람직한 시기'... 등
나와 관여된게 아닐까 싶다 .
그것.
하나님의 때를 늦추는 것은
내 문제라는 이야기가 되고
이제 때가 되어
동일한 일, 동일한 문제, 동일한 상황도
내 문제를 들여다 보고
적용하는 시간, 순간 , 때가 되면
그게 '하나님의 때'가 됨이 아닐까 싶다.
그것.
그를 위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네 선곳이 거룩하다'
내 선 곳이 거룩함을
이제는 안다.
내가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의 인도를 놓치지 않는한
난 말씀의 하나님이신 로고스 하나님을 뵙는 것이고
(논리가 아니다... 실제다..^^*)
그러함은 내 서서 살고 운행하는
모든 시간과 공간이
다 주님과 함께 하는 곳이므로 (양자역학의 개념으로도 이해가 간다. 사실이다. . )
내 서있는 곳이 거룩하다.
(거룩할 수가 있음을
난
이제
넘어섰음을 느낀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그 거룩한 곳에서
'신을 벗어라'는 것은 어떤의미일까?
난.. 이리 느껴진다.
내 밟고 서 있는 땅을 제대로 느끼기 위하여
난 양말을 벗어야 한다.
그리고 신발을 벗어야 한다 .
땅의 위험, 날카로움... 으로 부터
날 보호하기 위한
그래서 땅을 밟고 다닌다고 느끼지만
진실하게 느끼지 못하게 하는ㄴ.. ..
즉,
하나님의 말씀하심
그 거룩한 땅을 제대로 알기 위하여
(거룩한 곳은 위험이 없는 땅이다..
신발을 벗는 것을 두려워할 뿐
두려운 것이 없는 곳이 거룩한 땅이다.^^*)
온전히 양말과 신발을 벗어야한다 .
그 양말,, 그 신발은 무엇이던가?
두려움.
찔림에 대한 두려움.
무엇에 대한 찔림이던가?
이전.. 조금 더 덜 성숙, 더 미성숙했을 때는
진짜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
찔릴까 두려워 하는
아니.. 찔릴까 두려워하는 나를 발견하는 두려움이다.
'믿음' 이다.
믿음이 부족한 나를 발견하는 것..
그래도 아플까 의심하는 나.. 를 발견하는 것...
바로 그것을 위해
아직 신발과 양말을
벗기 어려워 하게 되는 것 같다.
6장
3.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그렇다 .
입장을 바꾸어
지금
이들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내게 온다면.
난..
과연..
여리고 성 주변만 도는 것으로
전쟁이 끝날 것임을 믿을 수 있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그래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라는
아주 단순한 믿음이 전제가 되어야 하고
이 어이없을 명령 (죄송^^;;) 뒤에
무너지고야 말 여리고 성에 대한
정말 가슴두근거리는 기대감이 있어야 된다 .
이게..
맨발로 디디는 믿음의 땅이 아닐런가?
주님이
오늘
내게 말씀하시는 바이신듯하다.
난..
그 완전히 떨구어내지
잘 이겨나가고
벗어내놨다고 생각하는 부분의 어려움으로 (어찌 다 고백할런가? ㅠ.ㅠ;;)
한번 씩
괜히
고생할 때가 있다.
그 때.. 가장 큰 힘듦이
아.. 내 믿음이.. 라는
나도 모르는 '자괴'의 소리들이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되풀이 될
그 어려움에 대한 '좌절'.. 이다.ㅠ.ㅠ;
그런데
얼른 머리를 털고
주님의 말씀으로 (내 좋아하는 구절.. ) 되뇌이면서
겨우 .. 이지만
답답하려 한다 .
그런데
이제
주님이 '믿음'의 온전한 모습에 대하여
말씀으로 말씀하신다.
그렇다.
그거 훈련시키기 위해
또 다시 허락되어진 그러함인가 보다 .
내가 온전히 '믿음'의 땅을 밟지 못했나보다.
믿음이라고 생각했던 데에는
아직 내 속에 날 가로막는 '의심'이 있나보다.
내 서있는 곳이 거룩한 곳이다.
'의심'되어지고
좌절, 의혹들이 날 가로 막으려 해도
그냥 순종하고 나가보자 .
그러면
여리고 넘어지듯
곧 넘어지는 현상을 보리라.
보게 되리라 .
감사하다.
주님.
감사합니다.
내 오늘의 '양말'에 대하여
어리석은 '신발'에 대하여 깨닫습니다.
그냥.. 맨발로 디디는 믿음의 땅..의 믿음으로
오늘 하루 바라보겠나이다.
그 흔들림..
말씀 묵상하는 동안..
멀~어져 버렸습니다 .
평생.. 저를 괴롭히던,
그간 나에게서 옅어져서 너무도 기뻐하였었지만
또 다시 슬그머니 다가올
여리고 같은 그 것들.
여리고 무너뜨리시는 하나님을
진정히 만남으로
믿고 따라지려 한 증상 인듯하나이다.
내 주여.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 맨 발..그 믿음을 기억하고 살겠나이다 .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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