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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나에게 임하시는 하나님(렘 27:1-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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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나에게 임하시는 하나님(렘 27:1-11)

주하인 2010. 4. 8. 09:24

제 27 장 ( Chapter 27, Jeremiah )

  

고가 다리고

치렁한 전선 줄이고

뉘역해지는 늦은 오후고

지저분한 천변이지만

그들은 어울려

또 하나의

장면을 이루어 내고 있다

 

그 아름다움에는

그들의 어울림과

그 뒤를 받치는 하늘과

그 시간에 맞는 그림자가 있었다

 

인간들의 조악함 조차

주님의 배려가 깃들면

다른 분위기로 거듭난다

 

세상 무엇에도

주님의 뜻이

임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주님은

최소한

나에겐

말씀으로 임하신다

 

말씀이신

주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자

 

 


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즉위한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예레미야에게

    이르시니라 
 

 '말씀으로 '

'나'

'주하인에게 '

임하시는 하나님 .

 그 말씀이 비록

줄을 걸고 목에 멍에를 매야 하는

어려움이 없지 않을 수 있지만

말씀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내 영혼은 살아날 수 있다.

 

나.

주하인

월하랑(月下狼)이었던

그리고 , 월하인(月下人)이었던

주하인(主下人).

 늑대처럼 사납고 형편없고 외로웠던 내가

사람같이 되고

이제는 하나님의 '종'으로 온전히 바뀔 것을 예감하고

'주하인'으로 정체감이 바뀌었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하심 탓이었다.

비록 그 분이 아직 나에게 임하심은

이 분 예레미야 선지자님 처럼 다이렉트하게 '이리이리 해라'는 말씀은 아니셔도

느낌으로

감동으로

내 하루하루를 이끌어 오셨다.

그러기에 가끔은 그 감동이라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내 게으름이나 내 정욕 탓에 , 아니면 결점 탓에

잠시 왜곡이 되어 잘못 받아 들일 위험성이 있었었어도

난 그래도

그 잘못의 결과로 바닥에 넘어지고 쓰러져 있었다가도

지금까지 주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으려는

나름의 노력 탓에 여기까지 인도는 받았다 생각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나'

주하인이라는 이름처럼

좀더 주님의  정확한 말씀이 임하시고

그 말씀을 준행하는 자가 되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리 자신이 없다.

무서운 말씀을 들을 자신도 없고

순종함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없다.

자신이 없지만

주님의 말씀이라면 그냥 수긍해서

목에 줄을 매고 사람들 , 그것도 권위자들이 많은 곳에서

'너희들도 이렇게 해라.

주님이 말씀이다.' . ..이리 선언할 '담대함'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말씀으로 임하시는 하나님 !

저에게도 뚜렷한 말씀을 주시되

그것을 순종할 자격을 주소서.

그마져 허락하소서.

 

 

 

 

 

6.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부리게

    하였나니 
'   내 종' 바벨론 왕.

 

당연하게도 그 분은 바벨론 , 그 이국 땅 왕조차

당신의 피조물로서 '종'으로 부리시는 분이시다.

들짐승조차도 마음대로 부리시는 분이시다.

당연하지 않는가?

온 우주를 만드시고

그것조차 말씀으로 '있어라'하시니 '있게 하시는 '

그 어마어마한 분이

위의 저러한 자들을 '종'으로 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종을 내 삶의 대적자 내지 

내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서로 이익내지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면

그것 만은 주님과 영향을 미치시겠는가 하는 의혹이 들 수가 있다.

거기에 사로 잡혀

주위의 사로잡힌 어리석은 자들의 입이 더해지면

그것은 사실로 변해버리고

마치 바벨론 왕, 그이가

주님의 필요 때마다 '종'으로 삼겨진다는

그 단순한 사실을 언급하시기만 해도

마치 처음 듣는 일인양

마치 기적같은 일인양 꺄우둥 하고 감탄하는

정말 미련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를 세워서 열방의 왕이 되게 한다해도

그게 다 주님의 뜻인 것을 어쩌란 말이던가?

 주님은 목에 멍에를 걸고 줄을 달아

그것을 강제적으로라도 순종하길 명령하신다.

 

 어이없더라도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게

사실이다.

  마음에 맞지 않는 다고 그게 주님의 뜻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

이게 불신이지 뭔가?

 세상은 모두 주님에게 속해있다.

온 우주도 그렇다.

그게 너무 당연한 사실이다.

 


 북한의 '핵', '천안함 의혹', '금강산 피살'

불신의 나라 일본의 '독도' 망언, 위안부 .

이슬람의 급속 세력 확대.

이슬람 나라인 키르키츠스탄의 혼란.

............

세상의 사건들을 보면

주님의 손이 닿지 않는 나라 들이 움직임인 것 같고

의도적으로 생각지 않으려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더구나 , 그들의 움직임이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듯한 이해할 수 없는 경우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오늘 분명히 말씀하신다.

 모든 것은 주님의 뜻 안에 있다.

순종하라.

말씀에 더욱 민감하고 겸허하라.

 

 

말씀 앞에 바로 서지 못할 때

여지 없이 흔들린다.

괜한 걱정  , 고민,  이해할 수 없는 불안

남들의 반응에 민감함...

그러는 내 자신에 대한 속상함.

지나온 시간에 대한 헛되지 않았던가 하는 좌절감..등이

밀려 오려 한다.

거기에 세상 저쪽 끝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밀려오면

종말적 부담감까지 겹쳐져 사뭇 마음이 부담스럽다.

아침에 그렇다.

내 오래된 부정적인 눈은

어느 때인가

주님이 은혜를 주관적으로 낮추시던가

나의 주님 말씀 앞에 순종하지 못했던 생활의 방탕함과 게으름이

나로 하여금 그리 흔들리게 하는 것이다.

 

 말씀 앞에 겸허할 노력.

시간을 들여서 주님 앞에 회개함의 진중함.

주님이 그럼에도 날 버리시지 않으실 것인 말씀 앞에서의 의지.

그것을 통하여 다시 마음은 잔잔해 진다.

 

 예레미야님.

그 분

하나님께서 모습은 보이시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임하실 때

그 말씀의 내용이 주님께 죄송하지만 어이없어 보이는  

명령이실 때 어떠하셨을까?

무조건 순종하셨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말씀이 그처럼 직접적이고 강하게 임하시면

그 분의 마음에는 순종의 의지 와

순종했을 때 느껴지는 그 감동의 기쁨을 연상하는 것 이외는

아무런 느낌이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 외

그를 둘러 싸고 있던 의혹은

그에게 더이상은 의미없는

주님의 뜻 안에서의 운행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

주님을 믿는 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세상의 눈, 세상의 잣대로 보면

어이없는 버거움으로 느껴질 수 있기도 하지만

그 분의 말의 순종의 알고

그 분 말씀이 의미하는

말씀이 곧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때

세상의 어떤 흐름도 더 이상 그에게 흔들림을 줄 수 없는

완전한 '평강'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이 지구적 혼란의 시기.

기후.

인종적 쟁투.

자원고갈.

이슬람 및 힌두교의 준동

각종 질병의 지구적 유행

키르키츠스탄.. 등의 국지적 분쟁

세계적 금융대란

우울증 등 심리적 질병의 폭팔적 증가...

이 종말을 예고하는  재앙의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으로

주님의 뜻 가운데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죽도록 '말씀' 사모하는 일이다.

말씀 앞에 고착되고

그 말씀이 주시는 놀라운 체험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순종함으로 나가려는 결단이다.

 

 

 

 

적용

1. 성경 말씀 여덟장 읽겠다.

 

2. 순종에 대하여 다시금 묵상한다.

 나.

 주님이 원하시면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자신없다.

 하지만 순종하길 결심한다.

 성령으로 이끌어주시기 기도한다.

 

3. 세상의 재앙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자.

 키르키츠스탄의 혼란.

 아이티.

 칠레..........    

 회개해야 할지, 감사해야 할지, 중보해야 할지 .. 인도하시도록

 

4. 혼란.

 혼란을 허락하시는 주님의 뜻.

 그것마져 주님의 뜻이시다.

 주님의 뜻 가운데서 감사하자.

 약해짐을 감사하고

 그런 나를 통하여 주님 한번 더 기도할 수 있도록 하심을 감사하자.

 낮아진 나를 기뻐하자.

 주님의 뜻이시기에 기뻐하자.

  죄를 짓고 회개할 수 있는 내가 되도록 바뀌어 감을 감사하자.

 회개 먼저하자.

 

기도

 

주님.

말씀을 더 뚜렷이 듣길 원합니다.

오늘도 회개합니다.

주님

조금 늦게 일어나 

대충

말씀을 들여다 보곤

하루 종일 주님 말씀이 밀리다가 이제야 겨우

묵상을

마치 글 쓰기 같은 마음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매너리즘

그게 다름아닌 저 같습니다.

아마도 주님.

흔들리는 제 요즈음의 마음이

이런 엉터리 같은 변화없음 탓이고

주님 말씀 들음을 가벼히 한 탓인 듯 싶습니다.

주님 바라올 것은

주님 뜻 가운데서 중심을 잡도록 도우소서.

흔들리지 않도록 하소서.

조금은 더 겸손하게 하시고

조금은 더 인내하게 하시사

저로 은혜를 허락하시어서

제 원함과 바램에 맞지 않는

상황에서도 주님의 뜻은 여전함을 믿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시여.

절 강하게 붙드소서.

말씀으로 그리하소서.

예수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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