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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낮추어( 렘27:12-22 )

주하인 2010. 4. 9. 12:06

제 27 장 ( Chapter 27, Jeremiah )

 

 

허리를 좀더 낮추고

마음의 높이를 낮추고

시선을 위로 향하자

 

그제야

하늘이 더 크고 높았음과

주위에 아름다운 것이 많았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주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잊지 않도록 

마음을 열어놓자 

 

 

  
17.  너희는 그들을 듣지 말고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으로 황무지가 되게

     하겠느냐
  듣기 싫은 소리.

'바벨론 왕을 섬기라'

-왜 내가 그래야 돼?

'아니면 이 성이 황무지가 된다는데?'

- 아니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

  아마도 저건 바벨론 왕편일 거야 .

   어찌 저런 하나님의 원리에 어긋나는 소리하는 자가 ......

  에라.. 될대로 되라..

 

- 표시의 글이 '내 스타일'의 평범하고 보통의

사람들의 대답이 아닐까?

난, 거기에 '배째라.' 정신까지 있다.

굴욕 당하기보다는 부딪혀 깨지는게 속시원하다는

막가파 정신이 나에게는 있다. ㅜ.ㅜ;;

 

 얼마나 미련한 일이던가?

어이없는 말씀처럼

내 좁은 소견에 들리더라도

이제 주님의 뜻이 맞다면

따라야 하지 않던가?
 문제는 이것이다.

'미련'한 것이야 혼내서라도 고치면 되지만

주님의 뜻을 어찌알겠는가?

지혜가 없는 진짜로 미련한 내가..

세상에 얼마나 이단들이 횡행 하는 가?

거기에서 '미련'과 '진실'을 어찌 구분하겠던가?

말씀을 아는 나는 가능하기는 하지만..

순간 혹할 때가 없지 않아 있다

 또한, 어쩌면 진실이고 진리일 수 있는

그 말씀에 진리에 대한 겸허한 자세로

어찌하면 들어볼 인격이 될 수 있는가?

 종교 개혁 때도

이단적인 '칼빈' 등의 이야기는

굉장한 거부반응이 있지 않았을까?

어디까지 중심을 잡아야 하는가

어디까지가 주님의 뜻이던가 어떻게 하면 알수 있던가?

 

 

 아침 출근할 때 버스에 타고

넉넉한 자리에 앉아 묵상집을 펴고 한참 진행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50대 부인이 앉으신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여호와'의 증인으로 의심되는

팜플렛을 내밀어 읽어보라하신다.

읽고 있던 '매일성경' 큐티집을 들추어 보이면서

'나 묵상하는 기독교인'임을 알렸다.

나름대로 제대로 나가고 있는.. .이라는 암시였을 듯 싶다.

내 속은 나도 잘 모르지만..ㅎ

하지만 그래도 막무가내다.

그래서 손으로 밀어 치웠다.

그러면서 ' 예수님 믿는 우리보다는

불신자 들에게 전도'할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회개하자고 했다.

모범이 되지 못하는 우리끼리의......

 생각이 돈다.

만일 '예레미야'님이 '바벨론'성의 포로가 되자는 논리로

외쳐댔으면 저 여인의 모습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여호와XX'은 정통 신앙적이 아니고

혹여 그렇다 해도 잘믿는 남의 믿음 방향에

아침부터 '너 잘못되었으니 방향수정을 해서 이쪽으로 와라'하고

팜플렛 건네는 행위는 '도덕적 예의 범절' 차원에서도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정말 예레미야 당시의 사람들도

자신들은 '내'가 생각하듯

잘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그럼 어디까지가 옳은 '선'인가?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가?

 최소한 아침의 난, 그 분이 주장하시는 바가

나와 달라도 그 분을 인정하고

그냥 난 기도만 하고 겸허 했어야 한다고 생각이 된다.

혹여 주님의 뜻이시면 어찌 하겠는가?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이 되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 아니던가?

그렇게 마음의 중심을 잡아야 옳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난 주일에 '영어예배' 찬양 팀에 서 달라는 부탁을 받고

요번 주에도 연달아 가기는 정말 싫어서

가지 않으려는 입장을 굳히고는 있지만

거기에 아내의 말에 의하면

어쩌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거부 반응을 가지는 것.

그것은 어쩌면 저런 '이스라엘인'의 태도는 아니지 않을까?

나하고 아무 상관없는 일인데 갑자기

외부적인 압력내지 강권에 의하여

내 스케쥴을 흐트려 가면서까지 '순종'하는 것.

그것.

혹시 주님의 뜻은 아니던가?

나.

내 터부를 깨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것에 대한 일련의 말씀조차 없으신 상황에서

나에게 '하나님의 뜻'으로 예레미야님처럼 강권하면

그것..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가?

 

 


 
18.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에게 있을진대 그들이 여호와의 집에와 유다 왕의 집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기구가 바벨론으로 옮겨가지 않도록 만군의 여호와께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 
 

 주님의 큰 뜻은 인정하되

그 안에서 남겨진 일들에 대하여 기도하는 것.

'기구'에 대한 것.

큰 일에 비해서는 정말~ 중요치 않지만

명분을 떠나 삶 속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

'기구'

그것에 대하여 구하길 '예레미야님'은 권고하신다.

 

 '영어 찬양예배' 참석하기가 주님의 뜻이시던가?

권고하시던 분이 '예레미야'님 같은 분은 아니시다.

그러기에 어디까지 준행할 지 헷갈리는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것마져 가능성으로 내려놓고

기구를 두고 기도하듯 기도해보아야 겠다.

 

그렇다.

주님의 뜻이신지 정말 알아 볼 수 있는 지혜와 영적 감수성이 중요하고

주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들면

그게 내 논리와 다르더라도 적극적으로 순종해야 하고

그 순종 가운데 정말 필요한 세세한 삶의 방법들은

간구하고 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주일 찬양...

참가하던 참가하지 않던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듯 싶다.

하지만, 주님 뜻 안에서 한번정도 다시한번 여과하는 과정이 정말 중요할 듯 싶다.

오늘 분명코 '예레미야님'의 선언을 통해

거기에 준행하고 하지 않고의 시발점은

그게 주님의 뜻일 수도 있겠다라고 전제하고

한번 정도 마음을 열어보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의 그 아주머니의 전도 뿐 아니라

안양 중심가를 걸어가다 보면

두사람이 팀이 이루어져 대뜸

' 인상이 평범하지 않네요.'

' 큰 자리 하겠어요.. ' 하며 접근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그 중 몇 사람은 자신들은 하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모르겠지만

난 몇 번씩이나 똑같은 멘트에 접하면서 어이 없어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들의 하는 태도나 접근 방식이 너무도 '이단'의 냄새가 나서

말도 하지 못하도록 자르고 얼른 피해 버렸었다.

아마도 생각에 'SGI'라고 그럴 듯하게 개명을 한

'남묘호랭갱교'  - 큰 건물이 비산동 쪽에 있다 - 요원 들일 것이라 추측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만날 때 그들처럼 너무도 미신적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야

당연하게도 이단으로 거부하고 이단은 이야기를 할 필요조차 없음을

스스로도 인정은 하지만

난 태도에 있어서 조금은 변화시킬 필요가 없지 않아 있음을 깨닫고 있다.

 연습이고 태도다.

사람들의 '어이없는 행동'에 너무나 간결하고 재빠르게 선을 긋는다.

개중에 일부,

내 어이없다 생각하는 레이더에 의해

정말 하나님의 소리인 '예레미야님' 같은 선지자의 소리를

놓치지 않을 수있을까?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시다.

좀더 겸허해야 한다.

한발 늦게 반응해야 한다.

가만히 들어주고 반응해도 늦지 않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이신가 늘 스스로 물어가며 대응해야 한다.

그게 인격적으로도 더욱 성숙한

주하인이 되는 지름길일 듯싶다.

 

 

적용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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