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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이름을 의탁하고 하루를 산다는 것 (렘 26:16-24 ) 본문

구약 QT

주님의 이름을 의탁하고 하루를 산다는 것 (렘 26:16-24 )

주하인 2010. 4. 7. 09:52

제 26 장 ( Chapter 26, Jeremiah )

 

조금 작게 느껴진다해도

주님께 제 곁에  

늘 계시고

 

조금 부족해 보여도

주께서  변치 않고

사랑하심을

 

믿습니다  

아니

믿겠습니다

 

주여

부족한 믿음마져 도우셔서

주님의 뜻 제 안에서

이루어 지게 하소서 

 

주님의 이름

온전히 의탁해서 사는

그런 하루 하루 되게 하소서

 

 
16.  방백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고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음이 부당하니라  

20.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고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곧 기럇여아림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을 쳐서 예언하매 
23.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끌어내어 여호야김 왕께로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 시체를

      평민의 묘실에 던지게 하였다 하니라
24.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보호하여 예레미야를 백성의 손에 내어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의탁하여

목숨을 걸고

주님의 뜻을 전파할 때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막아주시고 인도하셔서

그 곳에 변화가 있게 하시고

좋은 결과 있게 하시기도 하고

오늘 우리야의 예처럼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어떤 분들은 선교할 때 대 부흥이 일어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순교'를 당하기도 한다.

 그 분들.

모두 '주님의 뜻'에 의탁하여 가는 분들이다.

주님 뜻에 의탁한다.

전적으로 주님께 모든 걸 맡긴다.

맡길 때는 주님이 반드시 날 살리실 것이다라는

강력한 믿음도 필요하겠지만

어쩌면 '순교'의 위험도 있을 것이란 것 조차

주님께 원망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주님의 뜻으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야님.

그 분은 '애굽'으로 도망을 했다.

도망갔다는 것은

양처럼 죽음을 기다렸다는 뜻 만도 아니다.

그럼에도 애굽까지 자객이 쫓아오고

도망다니다가 잡히는 '우리야'님의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오늘 예레미야님은 결국 '아히감'의 도움을 통한

하나님의 손길을 칭송하고 감사하며

'역시~'하며 기뻐했을 지도 모르지만

동일하게 하나님의 뜻을 의탁하여

죽음을 불사하고 말을 전하던

우리야의 그 타는 속은 또 어땠을까?

 

 만일 주님의 뜻대로..라고 하는 표현으로

주님께 의탁한다는 것은

어디까지 마음을 낮추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일을 거창하게 하다가

우리야님처럼 도망가는 일이 나에게도 벌어진다면

도망다니는 내 모습에

나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주님의 뜻'이시라면 단번에 순교자 되거나

아니면 멋진 역사가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혹시 이것은 내 치기어린 행동은 아니었을까?

혹시 선지자인양 한게 내 착각은 아니던가?'

이런 의혹들이 사로잡지는 않았을까?

 

 '주님 뜻을 의탁하다.'

선교사나 순교자의 그 대단한 결단을 쫓아갈

의지나 믿음이 없는 이 미약한 '주하인'.

그렇다면 오늘의 선교나 순교에 대하여

어찌 나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일상에서의 순교

일상에서의 선교

그리고

그 가운데서 주어지는 '의혹'들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따름.

이것이 나에게 적용할 부분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오늘 수요 예배 때

시온 성가대 '부활 절 칸타타 ' 때문에

엊 저녁 늦게 까지 마지막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던 중

핸폰이 울린다.

잘 아는 선배 형님.

제법 큰 교회의 안수 집사로

4월 25일 교회 주최 복음성가 경연대회의 대회장으로 선출 되었다한다.

그러면서 '특송' 참가자를 물색하기 위해 전화했다한다.

특별히 내 찬양의 폭을 아시는 분이지만

나름대로 나에게 '팀'을 결성하고 있는 가 넌지시 물어본다.

그런게 어디있는가?

프로도 아니고

찬양을 위해 목숨 건 것도 아니라서

단지 은혜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겠다는 개념 하나로

연습 조차 혹여 일년에 한두차례 요청이 있는 곳에만

홀로, 혹은 아내와 같이 가서 불러주고 오는 것이 다 인 것을...

형님은 이전 '전인치유'찬양 때

병원직원 들과 팀을 이루어 했던 그것을 기억하고

나름 '폼 + 은혜' 를 생각하고 전화했다가 실망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그런 분위기 자체를 기뻐하지 않아

다음으로 하자고 먼저 사양하고 전화를 끊고나서는

기분이 묘하다.

 늘 그렇다.

바램은 '열심히 연습해서 가서 잘난체 ' 해보고 싶고

또 다른 반대의 생각은 '은혜'가 없이 앞서 나가기 싫다는 게 있다.

그러다 보니

내 최근의 기도 제목 중 하나인

' 내 달란트를 어찌하든 써주세요.'가 헷갈린다.

.....

머리가 복잡하다.

 

집에 들어가서

운동하고 들어온 아내에게

매주 화요일 가족예배하자니

난색을 표명하며 이의를 제기한다.

그럴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래도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음이 언짢다.

 

 아들 방에는

불이 늦게까지 꺼지지 않는다.

나도 늦게까지 TV를 켜 놓고 있었다.

새벽 한시 넘어서까지 컴을 하는 모양이다.

'아휴.....'

 

잠을 잤다.

일어나고 나도 개운치 않다.

나.

하루하루 진다.

 짜증.

속상함.

곤란.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곁에 계신데

어찌 이리 난 이런가?

구약에는 '공의'와 '결단'과 일도양단의 결과가 자주 나온다.

마음이 무거우려 한다.

일찍 일어났다.

묵상을 했다.

마음 한구석에 아직도 무거운 마음이 또아리를 튼 듯하다.

그 생각 들이 날 붙들려 한다.

묵상구절에서 '우리야'의 상황이 들어온다.

하나님의 뜻대로 의탁하여 살았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순교하지도 못하고

도피하는 굴욕을 겪고

거기에 애굽까지 쫓아오는 '살인자'들의 추격 속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의탁하여 결단을 했지만

그 역시 두려움과 거기에 따르는 의혹들에서

매 순간 자유롭지는 못했을 것 이란 생각이 든다.

 

 나.

언젠가 부터 슬그머니

'의혹'들이 날 붙들려 한다.

열심히 기쁨 가운데 주님의 뜻 준행하는 노력으로

하루하루 살다가도

또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흔들린다.

 

 주님의 뜻에 의탁한다는 것.

주님의 뜻에 모든 것을 내려 놓기로 결심한다는 것.

그것은 대단한 결심을 필요로 한다.

죽음 마져 불사하는 것.

하지만 오늘 묵상으로 하나 더 깨달은 것이 있다.

그 이후의 결과에 조차

모든 것을 다 맡기는 것.

'우리야'님처럼 엉터리 같고 하찮아 보이고

살인자들에 쫓기는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고

결국은 죽임을 당하는게 흉해 보이고

실패자 같아 보여도

모든게 '주님의 뜻'에 의탁하였었던 결과물이란 것이다.

순교가 깨끗하고 폼이 나게 되어도 순교고

우리야처럼 저리 되어도 순교임에는

하등 차이가 없다.

 

나.

아직도 헷갈리는 부분 들이 많다.

결심하고 선택하고 매진하여 나가면 좋겠지만,

주님의 뜻에 의하여 인도 받길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도 좋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 주님의 말씀이라도 크게 들려

둘 중 하나로 내 마음을 정해서

도 아니면 모로 폼나게 결정을 나버리면 좋겠지만

나이 오십 넘어서 까지

아직도 흔들흔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휘청거리고

약간의 자극만 있어도 '짜증'이 올라오고...........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다.

무엇이 선교고

무엇이 순교고

......

 

 아침에 버스를 타고 오면서 갑자기

고틍학교때 '우리들 세계'라는 프로그램에

같이 출현 했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 중 하나는 기독교인이며 '갑부' 소리 들을 만큼 성공했다.

한 녀석은 아직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찬양 팀을 형성해서 오랫만에

'특송팀'으로 멋지게 한번 나가보자 유혹하면

어쩌면 그 놈도 예수님 영접할 기회를 줄 수도 있을 것 같구

몇 십년 만에 옛날로 돌아가 연습도 하고

재미있게 주님 뜻 안에서 놀아보면 좋을 것 같다.. 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하지만...

그것 마져 그리 내키지는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 마져 여쭈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선배형에게 전화해서 '결정했냐'고 물어 보아야 하고

먼저 우리 의중을 이야기 하고

친구들 시간을 맞추어 보고

......바쁘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금껏 다져놓은 내 삶의 흐름에 지장이 없지 않아 있을 거 같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주님의 뜻을 기다려 보자.

그게 정말 '주님의 뜻을 의탁하여 주님의 뜻 가운데

무엇인가 이루시려 하는 것'이면

상황이 그리 될 것이라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난 그리 하는 것을 바란다

원함이 그것이다.

주님의 뜻을 기다린다.

오늘 중에 전화가 와서

여건 조성이 되면

주님이 원하신다 생각하고 가보자 생각했다.

 

 

적용

 

1.  마음이 흔들린다.

 이럴 때도 주님의 뜻 가운데 있는 것임을 믿자.

 흔들릴 일은 없다.

 그냥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온유시니

 짜증이 올라와도 가만히 기다리자.

 한번 늦게 말하자.

 더 친절하게 하자.

 

 

2.  주님 전 친구들과 찬양팀 조성해서 특송하는 것 원합니다.

  주님 뜻이 조금이라도 있으시면 선배로 전화를 걸어 상황 조성하게 하소서.

 

3. 성경 여덟장 읽겠다.

 

4. 모든게 주님의 뜻이다.

 주님의 뜻에는 흔들리는 상황도 포함이 되어 있다.

 결국은 '선'이다.

 죽음마져 그렇다.

 

5.  주님 앞에 내려 놓음은 모든 것을 순응함을 의미한다.

 내 바램도

 그 바램이 이루어지 않음도 주님께 맡긴다.

 

 

 

기도

 

 하나님

제가 그렇습니다.

잘 나가다가 한번씩 바닥으로 푹 주져 앉을 때가 있습니다.

은혜가운데 열심히 나가다가

다시 옛 성품이 절 잡으려 하는 것처럼

안될 것 같고

잘못된 것 같고

그렇습니다.

그러함에도 우리야 님의 모습을 보며

힘을 냅니다.

저 분도 틀림없이 흔들릴 때가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주님의 뜻 가운데서 강인하게 자신을 붙들었을 것임을요.

그리고 그결과가 어떤 모양새과 어떠한 폼으로 나와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을 것도 알았습니다.

저.

흔들리지만

조금 주님의 뜻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비교하면 더... 요.

그것을 기뻐 받아 주시고

결과가 무엇이든

저로 하여금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을 자임을 믿게 하셔서

선을 이루게 하소서.

주님.

원하옵건데

가능타시면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바닥부터 요동치듯 흔들리는

이 어리석음을 가라앉히소서.

예수님 믿고 의지합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저 혼자 두시지 않을 줄 믿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시여.

저의 끝은 승리임을 믿게 하소서.

주님의 이름 의탁하는 삶...

그리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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