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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법[막3:20-3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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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법[막3:20-35]

주하인 2024. 2. 15.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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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바쁘고

'하나님의 이름'을 명분으로 ^^; 

열심히 만 살면 

아주 아주 바쁘게 살기만 하면

 

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그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맞을까?

 

 그러한 열심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며 많은 칭송과

보람과 자부심으로 살아가지만

한편으로 다른 한쪽에서 누군가는

'미쳤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나는게

이 부족한 인생들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때로는

가장 가깝다는 'family',

가족 혹은 친족일 수 도 있을 ...

그래서 예견하지도 못했던 심리적 대충격이

모든 인생에는 있을 수 있지 않을까?ㅠ.ㅠ;

 

더더구나 그 어미인 '마리아'님은 

하나님의 임재로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셔서

10개월이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태중에 '임마누엘'하셨던 분이신데도

 '미쳤다시며 찾아와

걱정 근심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는

친족의 범주'에 들어갈 개연성이 많은 데.... 

 

그래서 '예수'께서 어떠한 이유이시든 

만나기를 거부하신 .. 

바로 그 '아주아주 번잡한게

이 인생의 꼬임'인데.. ㅠ.ㅠ

 

 

정말 ..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하게 믿고 나가는 인생길이

 '하나님의 뜻'이 맞는 길일까?

 난.. 혹시 '친족'  편인가?

'자아'의 편은 아닐까? 

그러기에 더욱 더 매일 말씀으로 날 돌아보지 않고는

'마리아의 왜곡'

'내 아는 주변인의 자아와 하나님 사이의 혼란'

'번잡함'사이에 빠지지 않고 있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는가?

 

 매일 말씀

매일 은혜

매일 기도

매일 성령......!!!  만이 

흔들리지 않고 고요한 평강 안에서 

옳게 인생 살아갈 기준일 뿐이다 ^^*

 

 

 어머니 '마리아'는

모..종교에서 ㅠ.ㅠ; 신성시 하는 분이신데

21절의 '친족'... NIV에서 family라 표현한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한

저 당시의 그 '가족'에 속해 있었을 개연성이 아주아주 많은데

한편으로 '인간'들의 

아니 더 정확히는 '인간들의 이성'이라는 것의 

정말 무지하고 어이없는 '착오'들을 

여지없이 볼수 있다.

 아.. 그 .. 모종교를 믿는 것도

저 어머니 마리아 친족..ㅠ.ㅠ.. 도 .. 

 

각설하고 

어떤 이유든..(밑에 여러 생각할 수 있는 논리들을 확인해주는 AI의 답을 긁어다 놓았다... AI가 어찌 묵상에?... 하면 여러 반론이 있겠지만 그냥 모든 도구 조차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이 땅에 존재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는 도구로.. 그렇다.. 단지 도구로 사용하면 장점이 될 거다.   굳이 dd이 무서워 피하지 않는 것 처럼.. )..

예수께서는 

'칼같이' 정리하셨다. 

박정하실 정도로............

 

 

 얼마전 소천하신 

가까이서 모시고 교류하던 P원장의 바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인간의 체력으로 .. 할 정도로 감탄 스러웠으며

그분의 그러함을 모본으로 얼마나 많은 분들이 '선한 영향'을 받았을지

심지어 내 .. 예수님 영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정말 강력한 드라이브와 세상의 변화를 근거로 들어간

전 직장, S안Y병원에서 뵌 

그 놀라운 분의 '분주함'은 

참으로 한마디로 '식사할 겨를도 없어뵈는' 

'하나님에 사로잡힌'......이었단 느낌이었고

그 분으로 인한 내 초기 불안정했던 '믿음'과

인생관이 오직 하나님쪽으로 굳히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것은

정말 부인할 수없이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부족한 결점.......

가끔 드러나 보이는 '자아의 발로'와 '하나님 이름'의 것의 fusion이 되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열정을 보이던 주변 분들의 시들거려짐과

인간적 실망은 어쩔 수 없었음을 

지금도 다양한 심정으로 

그 분과 '세상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열심'을 보이는 분들에 대한

여러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도 되긴 하였다. 

 

 그러한 관점에서

예수께서 '칼같이 정리'하신 

어제에 이은 '번잡함 안의 고요'의 

또 다른 모습에 대하여 말씀을 통해 보고 있다. 

 

 더 정확히는

'좁은 길과 넓은 길' 사이의 중심 잡기,

매정함과 오직 주님의 뜻 사이.......

대의 와 소의 사이.............

반드시 나타날 인생사의 꼬임의 정리............등

제목으로 정해질 수 있을 

수없이 많은 인간세상을 살아가며 겪어질 '선택'에 대하여 말씀하심이시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오늘도 또 살아가는 법에 대한 

더 깊은 묵상.......이라면

그게 답이 아닐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 자를까?

그게 옳은가?

내 특질에 따라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면서

아주 매정하고 심리적 왜곡까지 

하나님이 원하시니..라는 명분으로 잘라버릴까?

 아니면 '마리아'님 처럼

분명코 하나님을 태중에서 잉태하고 출산하시면서 

강력한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혈육'으로서의 '예수'님을 

인간적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걱정을 빌미로 

이해되지 않는 현상에 대하여

'미친 것'으로 두려워 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어찌 하셨는가?
그냥... 

하나님의 뜻에

'오늘 결심하고 하는 일' 이 장해가 되면

'단순하게 정리 하는 것이었다 .

 

 거기에는 '우선 고려해야할 대상'과 일이 선택되었으며

그러하기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하나님의 사명'을 준행해야하기 위하애서

이땅으로 '성육신 하나님 제 2위하나님'이심을 분명코 알아서

'이땅의 육신을 허락하신 어머니'와의 인간적 교분은 

조금 뒤로 미룬 것이며

당연히 사역 안에 생긴 '미친 자'로서의 오해는 

그 분에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이시다. 

 결국, 이땅에서 '십자가' 사역을 완성하는데 

잠시의 오해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음이며

그들을 위로함

매정하게 박대함이 

인간적으로는 걸리겠지만

사역에는 흔들림이 없음을 , 아무 장해를 주지 않음을

확실히 알고 계심이었다 .

 

오늘.

내게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잘 생각해볼 하루다. 

 

 

주님.

말씀대로 만 살려 합니다. 

제게는 여러 번잡한 생각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나이 들어가며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존재감'의 약화.. 

사회적으로 무슨 일을 해도 '가치감' 확인의 어려움.. 

거기에 개인 적으로 다가올

오늘 말씀 같은 '오해'에 대한 조금은 과민함..........등

다행히도 말씀을 근거로 아주 많이 약해졌지만

틈만 나면 혼란과 혼돈들이 

아주 아주 번잡히 제 관심을 사로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다행이도

정말 다행이도 

주님 말씀을 택하고 하루 만 살기로 결심하게 하심이 

제게는 너무도 다행입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저보다 조금더 연륜이 있으신 

믿으시는 어떤 분의 혼란어린 고백.. 

꼭 오늘의 번잡함을 대변하는

거의 대부분의 모든 '신앙인'들 조차의그러함이었습니다. 

 

다행이도 

하나님의 뜻대로..라는 목표를

오늘 하루의 삶에서 행할 수 있는 깨달음 주시니

진정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만 의탁하고 나갑니다. 

도우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왜 예수께서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박정하게 대하셨을까?

 

1. Gemini의 대답

마가복음 3장에서 예수께서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을 때 그렇게 대했던 이유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몇 가지 주요 해석과 함께 각 해석의 배경과 근거를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의 메시지 강조:

예수님은 당시 유대 사회의 가족 중심적인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예수님을 집으로 데려가려 했던 것은 예수님의 활동을 방해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행동을 통해 혈연 관계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영적인 가족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2. 예수님의 신성성 드러내기:

예수님은 자신이 단순한 인간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혈연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어머니와 형제들과의 관계를 거리 두었습니다.

3. 예수님의 사명에 대한 오해 해소:

예수님의 가족은 예수님의 활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4. 당시 사회적 상황 반영: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예언자나 랍비가 가족과 거리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예언자 혹은 랍비임을 드러내기 위해 당시 사회적 관습에 따라 가족과 거리를 두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5. 본문 해석의 다양성:

마가복음 3장의 해석은 학자마다 다양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예수님이 실제로 어머니와 형제들을 무시했다고 해석하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예수님의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결론:

마가복음 3장에서 예수님이 어머니와 형제들을 박정하게 대했던 이유는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며, 각 해석마다 근거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당시 사회적 상황과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참고자료:

 

 

2.Copilot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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