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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넓은 길 나의 좁은 길[막2:1-1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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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넓은 길 나의 좁은 길[막2:1-12]

주하인 2024. 2. 12. 10:09

부제) 그는  우정을 향하였고 나는 예수님의 도 안에 앉았다. 

(펌)

나는

이랬으면 좋겠다

 

어떤 이유와 어찌되었든

친구들의 절절한 우정으로

그래도 주님 앞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일어 났지만

심지어는 그 다복하던 

사람들 사이에서의 기쁨마져 잊혀진

 

오직 내 안에

나와 예수님 이외

그 어떤 것도 사라지고 

내 모든 관심이 

주께로만 향하여져

 

끝없이 

주님 앞에

주님 안에서 

앉아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주께서 원하신다면.......

 

아니시라시면

세상의

그 풍성한 듯한 관계의 그러했음은

그냥

털어져 나가도 상관없을 듯하다

 

지금의 나

외롭고 괴롭고 우울할 

아주 아주 약간의 자극은 있지만

그러함으로 인하여

더 커져가는 

주님 안의 기쁨으로 기뻐지는...

 

그런 내가 좋다 

 

다행이다

말씀으로 깨닫게 하심이...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1. 그가 ,  이 '한 중풍병자'가 부러운 면

 

1) 주변에 끝까지 도우는 사람이 많았음

  재산이 많았든 우정이 많았든 

  끝까지 고치고자하는 열정이 많은 사람이 주변에 많았음

 

칭찬하신 그들의 믿음 대상이

어쩌면 예수님의

'병고치시는 능력자'일 수도 있을 수 있기도 하고

예수님 자체,

예수님의 도, 복음에 대한

믿음이 발로인지는 확실치 않다 .

 

하지만...

주께서 칭찬하신 믿음은

그 대상이 어떻든

그 시대 그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정도의

 믿음 자체 임이다. 

어쨋든 믿었기에 주님 앞에 

어떠한 수를 써도 왔기에 말이다. 

그것이 믿음의 본질이라 하시는 거다. 

방향은 어떠한지 굳이 구분하지 않으셨지만... . 

 

2)완전히 나아서  걸어나갔음

 

. 

 그와 다르게 

#$%^&*()_ ........문제' 가 남아 있는 듯 ㅠ.ㅠ

어쩌면 그 마져 

예수님 말씀, 도를 떠나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철저하신 배려와 계산 덕일 것임이 

이제는 눈치채여지고 있음이 다행이긴 하지만

완전한 그의 회복이 부럽긴 하다 . 

 

 

2. 그가 부럽지 않은 점

. 그는 고침을 받자마자 곧 나가 버렸다. 

 예수님의 증거의 매개체는 되었을 것이고

나머지 삶의 편함은 있었겠지만

아예 아프지 않았던 자들에 다른 바가 무엇인가?

그냥.. 그랬던 자가 있었던 성경의 기록으로 남았지만

그는 이름 모르는 의미없는 기록일 뿐이었을 것이고

나아 들면 또 아프지 않았던 다른 자들과 다름없는 

'죽음'을 향한 쇠함으로 이어지다 영멸에 들었을 개연성..

 

 친구들과의 우정.

영원했을까?

과연?

 나이 들어 80넘어 끝없는 우정의 교분을 

난..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가정 파탄이지..ㅎㅎ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 앞의 영원이 아니고는 '의미가 없다. 

 

 

3. 내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

 내게 없는 것이 부럽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 '의미'가 유한하고 부럽지 않은 것들이다 .

하지만 그 둘러 쌓여 관심을 누리고 

보호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음 속에서 '안심'이 되지만

그 마져 '유한'하다 .

서로서로.. 끼리끼리...의 위안은 

모두 서로의 존재의 세워주는 눈앞의 유한한 '자기 욕구'와

그에 반영된 행동과 

잠시의 안심일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도'다.

주님 앞에 그냥 앉아서 끝까지 듣는 '도'.. 

그 도를 깨달음(복음.. 말이다. )

그리고 주님 앞에만 서 있음.. 

비록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고

3년 내 끝나고 말 이땅의 육신의 끝의 길이라하여도

영생이 보장되고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있음임이니

그것 만큼 중요한게 어디있을까?

 

 나.. 

중풍병자의 관심과 우정을 

지금도 부러워 하고 있음이다. 

 

 

 나.

주의 도 앞에 앉아 있다. 

아무도 날 관심을 안가져도

난 주님의 도 , 복음에 관심을 가진다. 

주님께서 날 관심을 가지고 

내 안에 임하신다. 

그게.........

그것으로 족하다. 

 

나.. 

옳은 길을 가고 있음이다. 

 

주님.

그는 

나는 .. 이라는 제목이 제 오늘 묵상을 채우고 있습니다. 

 

주여.

중풍병자.. 

인생의 절망적 상황에서 주님을 만나 회복을 받는

정말 드문 '행운'의 소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정'으로 .. 

아니면 '충성스러운 주변'으로 둘러 쌓여있는 자로서

주께서도 칭찬할 만한 '믿음'의 힘을 발휘하는 자들로서 둘러쌓인

제가 가지지 못한

제가 그리도 평생 그리워하는 

사람들 사이에 쌓인 '푸근함'........을 소유한 자입니다. 

 

하지만.. .

묵상하여 보면 

비록 그가 '회복'을 받고 일상으로 돌아가

다신 주님의 흔적을 가진 놀라운 삶을 영위 한다 하고 

그 우정의 헌신탑을 세울만한 

세상의 관계 속에서 가장 성공한 삶을 사는

풍성한 느낌을 주지만

그래서 제게 없는 

앞으로도 별 기대하지 못할 그러함에 대하여

참 부럽기도했지만

이제는 조금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잠시 흔들~했지만

아무런 질투나 아쉬움

내 그렇지 못함에 대한 깊은 흔들림..........

과거의 그러한  *&^%..........이런 것은 없어진 듯합니다. 

 

 저는 '도'를 듣는 자입니다 

복음... 

가장 아름다운 좋은 소리를 매일 듣고 있고

하나님 안, 

내 안의 하나님을 체험하는 자이오니

저들의 저 일시적 위안

서로서로 '위안'하며 

서로서로 다독이다가

하나님의 필요성이 그리 느껴지지 않는 

앞으로의 몇십년 살다가 

결국 힘빠져 영멸, 

어쩌면 구원을 받을 수도 있지만

부끄러운 구원의 가능성이 많을 

보통의 이 땅의 많은 사람과 

하나도 다를 거 없다는 것입니다. 

아.. 넓은 길.. 

 

그래서 저는 비록 현재 '외롭고 좁은 길'이지만

분명코 예수 그리스도의 도 앞에 서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인지요.

 

세상의 복작거림이 덜하고 

의지할 분은 오직 예수 님 뿐인 내 상황,

거기에 '부활'의 약속이 믿어지는 자이니

얼마나 기쁜지요..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감사합니다. 

주여.

깨닫게 하시고 

진실을 눈 앞에 환히 밝혀 보여주시니

오늘도 또 

살아계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뻐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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